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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이
- 04 Dec, 2025
여백이 좀... 이 말 한마디로 시작된 3시간의 피그마 여정
여백이 좀... 이 말 한마디로 시작된 3시간의 피그마 여전 오후 3시 27분, 그 한마디 "최디자님, 이거 여백이 좀..." 슬랙 메시지 하나가 떴다. 기획자 김과장이다. '좀' 이 단어가 문제다. 얼마나 좀인데. 4px인지 8px인지 말을 해야지. 피그마 켰다. 방금 올린 홈 화면 시안이다. 어제 밤 11시까지 잡은 레이아웃이다. "어느 부분이요?" "전체적으로요. 답답한 느낌?" 전체적으로. 답답한 느낌. 가장 추상적인 피드백 온다. 월요일 오후의 저주다.16px가 아니라 20px였던 거야 일단 측정부터 했다. 헤더 아래 여백: 24px 카드 사이 간격: 16px좌우 마진: 20px 디자인 시스템 기준이다. 8의 배수 원칙 지켰다. 뭐가 문제지. 개발자 이태리한테 물어봤다. "태리야, 이거 여백 이상해?"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도움 안 된다. 태리는 1px 차이 못 본다. 그래도 착하니까 괜찮다. 대표님한테 올린 버전이랑 비교했다. 지난주 금요일 거다. 아. 찾았다. 카드 내부 패딩을 16px에서 12px로 줄였었다. 콘텐츠 많이 보이라고. 그게 문제였다. 12px는 너무 빡빡하다. 숨을 못 쉰다. 16px로 되돌렸다. 근데 이러면 카드 높이가 늘어난다. 그럼 한 화면에 3개밖에 안 보인다. 기획에서 4개 보이길 원했다. 망했다.타협의 기술, 아니 타협의 지옥 4시 15분. 48분 지났다. 카드 높이 줄이려면 내부 요소를 건드려야 한다. 제목 폰트: 18px → 16px 하면? 아니다. 제목은 위계상 타협 못 한다. 썸네일 이미지: 180px → 160px? 이것도 아니다. 썸네일 작아지면 임팩트 없다. 부제목을 한 줄로 제한? 말리는 문제 생긴다. 기획이 반대할 거다. 좌우 패딩만 줄일까. 16px → 12px. 아니다. 그럼 모바일에서 너무 답답하다. 다시 16px. 커피 마시러 갔다. 세 번째다. 정수기 앞에서 생각했다. 카드 상하 간격을 12px로 줄이면? 원래 16px인데. 4px 차이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쌓이면 크다. 12px... 좀 빡빡한데. 근데 해볼 만하다. 돌아와서 적용했다. 오. 괜찮다. 4개 들어간다. 근데 뭔가 억지로 구겨 넣은 느낌이다. 5분 봤다. 익숙해진다. 10분 봤다. 아니다. 이거 아니다. 되돌렸다. 디자인 시스템이 날 가둔다 4시 53분. 문제를 다시 정의했다. 카드 하나의 높이: 240px 화면 높이(헤더 제외): 1080px - 60px = 1020px 여백 포함하면 카드 3.5개 보인다. 기획은 4개 원한다. 그럼 카드 높이를 줄여야 한다. 240px → 220px면? 20px 줄이면 된다. 어디서 줄이지. 내부 패딩: 16px (위아래 32px) 썸네일: 160px 텍스트 영역: 48px 32px 중에 8px 빼면? 위아래 각 4px씩. 12px 패딩. 또 12px다. 12px는 디자인 시스템에 없다. 8, 16, 24, 32 이렇게 간다. 규칙을 깨야 하나. 아니면 규칙을 바꿔야 하나. 슬랙에 디자인팀 채널 있다. 팀장 박실장한테 물어봤다. "실장님, 12px 패딩 써도 될까요?" "왜요?" "카드 높이 때문에요." "8의 배수 원칙 있잖아요." "네. 근데 이러면 4개 안 들어가서요." "4개가 꼭 필요해요?" 모르겠다. 기획이 원한다. 난 3개가 낫다고 본다. "일단 기획이랑 다시 얘기해보세요." 맞다. 기획이랑 얘기해야 한다.기획자는 신이 아니다 김과장한테 허들 잡았다. "과장님, 카드 4개 꼭 보여야 해요?" "네. 사용자가 선택지 많이 보는 게 좋잖아요." "근데 너무 빽빽하면 오히려 안 보지 않을까요?" "음... 그렇게 빽빽해요?" 피그마 공유했다. 4개 버전이랑 3개 버전. "이게 4개고, 이게 3개예요." 10초 침묵. "3개가 낫네요." 뭐야. "처음부터 3개 하면 안 됐어요?" "아니 4개 보여야 할 것 같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3개가 낫네요." 1시간 30분 날렸다. 근데 화는 안 난다. 이게 일이다. 보기 전엔 모른다. "그럼 3개로 할게요. 근데 답답한 느낌은 뭐였어요?" "아, 그거요. 모르겠어요. 그냥 뭔가 꽉 찬 느낌?" 꽉 찬 느낌. 카드가 4개 들어가서 그런 거였다. 억지로 넣으니까. 3개로 하면 해결된다. 근데 확인해봐야 한다. 완벽의 늪 5시 40분. 3개 버전 완성했다. 카드 간격 16px 유지. 카드 높이 240px 유지. 패딩 16px 유지. 디자인 시스템 안 깼다. 기분 좋다. 근데 또 보니까 뭔가 이상하다. 하단 여백이 너무 많다. 카드 3개 끝나고 밑에 공간이 남는다. 저기 CTA 버튼 넣을까? 아니다. 기획서에 없다. 그냥 둘까? 여백도 디자인이다. 꼭 채울 필요 없다. 근데 허전하다. 스크롤 인디케이터 넣을까? 점 3개로. 해봤다. 좀 낫다. 근데 과한가? 뺐다. 다시 넣었다. 또 뺐다. 태리한테 물어봤다. "태리야, 이거 점 있는 게 나아? 없는 게 나아?" "둘 다 괜찮은데요." 이럴 줄 알았다. 남친한테 카톡했다. 남친도 개발자다. "오빠 이거 봐봐. 점 있는 거 vs 없는 거." 3분 뒤. "없는 게 깔끔한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뺐다. 근데 5분 뒤 다시 보니까 있는 게 낫다. 다시 넣었다. 언제 멈춰야 하는가 6시 20분. 점 넣었다 뺐다를 7번 했다. 이제 진짜 모르겠다. 둘 다 괜찮다. 둘 다 이상하다. 이게 디자이너의 저주다. 디테일이 보인다. 1px 차이가 보인다. 그게 강점이다. 근데 그게 약점이다. 멈출 줄 모른다. 80%에서 멈추면 된다. 근데 난 95%를 원한다. 95%에서 100%까지 가는 게 전체 시간의 50%다. 비효율적이다. 알고 있다. 근데 못 멈춘다. 완벽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내일 아침에 보면 또 고치고 싶을 거다. 그럼 언제 끝나나. 대표님 말이 생각났다. 지난달 1on1 때. "디자이너는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거예요." 작품은 완벽을 추구한다. 제품은 타이밍을 지킨다. 맞는 말이다. 근데 제품도 완벽하면 안 되나. 애플 보라고. 1px까지 신경 쓴다. 우린 애플이 아니다. 스타트업이다.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검증하고, 빠르게 바꾼다. 내 완벽주의는 사치다. 알고 있다. 결국 점은 뺐다 6시 35분. 점 뺐다. 최종 결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다. 7시 퇴근이다. 25분 남았다. 개발자한테 핸드오프 해야 한다. 내일 아침 스프린트 시작이다. "태리야, 핸드오프 할게. 5분 줘." "네." 피그마 링크 공유했다. 컴포넌트 설명했다. "카드 간격 16px, 패딩 16px, 이거 토큰으로 이미 있어." "네." "하단 여백은 40px. 이것도 토큰 있어." "스크롤 인디케이터는요?" "없어. 뺐어." "아 네." "애니메이션은 ease-out, 0.3초." "알겠습니다." 끝났다. 3시간 27분 걸렸다. 실제 작업 시간은 30분이다. 나머지는 고민이다. 고민이 나쁜 건 아니다. 고민해야 좋은 디자인 나온다. 근데 과한 고민은 독이다. 디테일 강박증 환자의 자가 진단 퇴근길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나는 디테일에 예민하다. 그게 내 정체성이다. "여백 좀 이상한데요?" 이 말 듣는 게 제일 싫다. 그래서 미리 100번 본다. 혹시 이상한 거 없나. 이게 강점이다. 내 디자인은 완성도 높다. 근데 약점이기도 하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균형을 못 찾겠다. 완벽주의를 버리면 평범한 디자이너가 될까 봐 무섭다. 완벽주의를 유지하면 효율 없는 디자이너가 될까 봐 무섭다. 어디서 타협해야 하나. 선배 디자이너한테 물어본 적 있다. 작년에. "언제 멈춰야 해요?" "마감 1시간 전에." 농담 같았는데 진담이었다. "디자인은 끝이 없어. 시간이 끝낼 뿐이야." 맞다. 시간이 끝낸다. 내가 끝내는 게 아니라. 마감이 없으면 영원히 못 끝낸다. 내일의 나에게 집 도착했다. 8시 10분. 피그마 켰다. 습관이다. 오늘 한 작업 다시 봤다. 점 넣는 게 나았을 것 같다. 넣을까. 아니다. 그만하자. 이미 개발자한테 넘겼다. 끝난 거다. 다음 작업 들어가야 한다. 프로필 페이지 리뉴얼. 근데 오늘 한 거 한 번만 더 보자. 카드 모서리 라운드. 12px인데 16px가 나을까? 해봤다. 16px가 좀 더 부드럽다. 근데 너무 둥글다. 12px가 맞다. 되돌렸다. 아. 또 시작이다. 컴퓨터 껐다. 강제 종료다.디테일은 축복이자 저주다. 오늘도 그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다. 내일은 좀 빨리 나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