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Jan, 2026
마포구 원룸, 월세 65만원에서 꿈꾸는 것들
월세 빠진 통장 오늘 25일이다. 월세 나가는 날. 아침에 알림 떴다. "65만원 출금". 통장 잔액이 확 줄어든다. 세 자리에서 두 자리로. 5500만원. 내 연봉이다. 세금 떼면 실수령 400만원 정도. 월세 65만원, 관리비 8만원. 통신비 6만원, 교통비 10만원. 식비 40만원 잡아도 빠듯하다. 남는 돈? 270만원. 저축하면 100만원 빠진다. 데이트 비용, 옷, 화장품. 가끔 택시, 배달. 실제로 손에 쥐는 건 70만원 정도. 대기업 다니는 친구는 7천이다. "너 왜 거기 있어?" 대답 못 했다.9평짜리 우주 마포구 연남동. 9평 원룸이다. 방 하나, 화장실 하나. 부엌은 싱크대 하나가 전부다. 책상이 제일 큰 가구다. 27인치 모니터 두 개. 와콤 타블렛, 키보드, 마우스. 책상 위는 회사보다 넓다. 침대는 싱글이다. 남자친구 오면 좁다. 그래도 우리 공간이다. 옷장은 이케아 제품. 조립하는 데 3시간 걸렸다. 남자친구가 도와줬다. 둘이 싸우면서 완성했다. 화장실에 욕조는 없다. 샤워부스도 아니다. 그냥 바닥에 물 뿌린다. 배수구로 내려간다. 베란다는 없다. 창문은 하나. 빨래는 실내 건조대다. 제습기 없으면 곰팡이 핀다. 65만원이다. 이게 서울의 가격이다.부산에서 온 전화 엄마가 전화했다. "밥은 먹고 다니냐?" 먹는다고 했다. "집은 괜찮냐?" 괜찮다고 했다. "돈은 모으고 있냐?" 모은다고 했다. 다 거짓말은 아니다. 그냥 전부는 아닐 뿐. 부모님은 부산이다. 집은 25평이다. 아빠는 회사원, 엄마는 학원 강사. 평범한 중산층이다. 내가 서울 온다고 했을 때. 아빠가 반대했다. "부산에도 회사 많다." 엄마가 설득했다. "하고 싶은 거 하게 둬." 6년 됐다. 부산 갈 때마다 엄마가 말한다. "집이 좁다며. 보증금이라도 보탤까?" 괜찮다고 한다. 30살 됐는데. 아직 부모님 돈 받긴 싫다. 자존심은 아니다. 그냥 미안해서다. 전화 끊고 나면. 혼자 9평 방에 앉아 있다. 창문 너머로 서울이 보인다. 여기가 내가 선택한 곳이다.연봉 5500의 의미 신입 때 3500만원이었다. 2년 차에 4200만원. 4년 차에 4800만원. 지금 5500만원. 6년 동안 2000만원 올랐다. 연평균 330만원씩. 한 달에 27만원. 대기업 동기는 7000만원이다. 네이버 간 친구는 8000만원. 카카오 간 선배는 9000만원. 스타트업이 나쁜 건 아니다. 자율성은 더 있다. 성장도 빠르다. 포트폴리오는 화려하다. 근데 통장은 솔직하다. 친구들이랑 밥 먹을 때. 가격 보게 된다. "여기 비싼데 괜찮아?" 30살이 됐다. 결혼 생각도 한다. 남자친구도 5500 정도다. 둘이 합쳐도 1억 1000이다. 아파트는 꿈도 못 꾼다. 전세도 어렵다. 지금 월세가 최선이다. 리드 디자이너다. 수당은 없다. 호칭만 바뀌었다. 책임은 늘어났다. 이직을 생각한다. 포트폴리오 정리 중이다. 근데 시간이 없다. 야근하면 더 없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그래도 중요하다. 특히 서울에선. 꿈의 가격표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예쁜 걸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쓰는 제품. 내가 만든 UI로. 지금도 좋아한다. Figma 켤 때 설렌다. 컴포넌트 정리할 때 만족스럽다. 유저가 "이 앱 디자인 좋네요" 하면 기쁘다. 근데 월세는 안 깎아준다. 커피값도 안 내준다. 열정으로 배 안 찬다. 사이드 프로젝트 한다. 토요일 오후에. 카페 가서 노트북 펴고. 아이디어 스케치한다. 2시간 하면 집중 풀린다. 핸드폰 본다. 인스타 본다. Dribbble 본다. 다른 디자이너들 작품. 다들 멋지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근데 현실은 다르다. 회사에서 하는 건. 배너 수정. 버튼 색 바꾸기. "여백 좀 줄여주세요." 꿈이랑 현실 사이.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돈으로 메운다. 월세 65만원씩. 편의점 김밥 저녁 9시다. 편의점 간다. 김밥 하나, 2500원. 우유 하나, 2000원. 합계 4500원. 저녁 한 끼다. 주말엔 요리한다. 파스타 끓인다. 재료비 5000원이면 두 끼. 경제적이다. 친구들이랑 약속 있을 땐. 2만원 잡는다. 밥값 1만 5천원. 카페 5천원. 데이트는 주말에 한 번. 영화 보고 밥 먹으면 5만원. 한 달에 20만원. 남자친구도 안다. 우리 형편. "집에서 영화 볼까?" 고맙다. 가끔 외식한다. 월급날 다음 주. 통장이 제일 두둑할 때. 3만원짜리 파스타 먹는다. 맛있다. 이런 게 행복이다. 작은 사치. 지하철에서 보는 광고 출근길 지하철. 광고 본다. "월 300만원으로 여유로운 삶" 거짓말. "내 집 마련의 꿈" 웃긴다. "2030 재테크" 관심 있다. 근데 종잣돈이 없다. 점심시간에 유튜브 본다. "연봉 5000만원 재테크" 클릭한다. "저축 먼저 하세요" 안다. "고정비 줄이세요" 월세가 고정비다. 어떻게 줄여. "커피값 아끼세요" 하루 4500원. 한 달 13만원. 아껴봤자 월세 1/5. 현실적인 조언이 없다. 다들 이미 가진 사람들. 집 있는 사람들. 부모 찬스 쓴 사람들. 나한테 필요한 건. 월세 안 내는 방법. 아니면. 연봉 2배로 올리는 법. 둘 다 없다. 친구들과의 거리 대학 동기들이랑 모임. 한 달에 한 번. 홍대 어딘가. 한 친구는 네이버. 연봉 8000. 강남 오피스텔 전세. 부모님이 보증금 냈대. 한 친구는 삼성. 연봉 7500. 회사 기숙사 산다. 저축 많이 한대. 한 친구는 프리랜서. 버는 건 잘 모르겠다. 근데 여행 많이 간다. 인스타 보면 부럽다. 나는 스타트업. 연봉 5500. 월세 산다. 저축 조금. 밥 먹으면서 얘기한다. "요즘 어때?" "바빠, 야근 많아." 다들 비슷하다. 근데 다르다. 그들의 바쁨이랑. 내 바쁨은. 그들은 미래를 산다. 나는 현재를 산다. 질투는 아니다. 그냥 부럽다. 조금. 헤어질 때. "담달에 또 보자." 웃으면서 손 흔든다. 집 가는 지하철. 창문에 내 얼굴 비친다. 30살. 디자이너. 월세 65만원. 나쁘지 않다. 그냥 생각보다 힘들 뿐. 남자친구의 제안 남자친구가 말했다. "같이 살까?" 3년 됐다. 개발자다. 연봉 비슷하다. 5800 정도. 같이 살면. 월세를 반으로 나눈다. 32만 5천원씩. 한 달에 32만원 아낀다. 좋은 제안이다. 경제적이다. 현명하다. 근데 고민된다. 혼자 사는 게 좋다. 자유롭다. 9평이지만 내 공간. 내 규칙. 같이 살면 타협한다. 작은 것들. 샴푸, 휴지, 설거지. 그리고 무섭다. "같이 살다가 헤어지면?" 친구가 그랬다. 동거하다 헤어졌다. 보증금 나눴다. 법적으로 복잡했다. 남자친구는 좋은 사람이다. 믿는다. 근데 미래는 모른다. "생각해볼게." 그렇게 답했다. 2주 됐다. 아직 답 못 했다. 혼자 방에 앉아서. 계산기 두드린다. 32만원 곱하기 12개월. 384만원. 큰돈이다. 여행 한 번 갈 수 있다. 저축하면 종잣돈 된다. 근데 이 9평이. 내 마지막 성이다. 창문 너머 서울 밤 11시. 불 끈다. 침대에 눕는다. 창문 너머로. 서울이 보인다. 불빛들. 건물들. 6년 전에 왔다. 캐리어 하나. 꿈 가득. 지금도 있다. 캐리어는 옷장 위. 꿈은 조금 줄었다. 현실적이 됐다. 연봉 7000 받고 싶다. 전세 살고 싶다. 여행 자주 가고 싶다. 큰 꿈은 아니다. 그냥 보통. 근데 여기선 쉽지 않다. 서울은 비싸다. 꿈도 비싸다. 월세 65만원. 매달 나간다. 집주인 통장으로. 내 통장은 줄어든다. 꿈도 줄어든다. 조금씩. 그래도 괜찮다. 아직 있다. 꿈이. 조금이라도. 내일 또 출근한다. Figma 켠다. 디자인한다. 월세 번다. 이게 30살. 디자이너. 서울. 2024년. 창밖에 비가 온다. 빗소리 듣는다. 잠든다.월세는 매달 나가지만, 꿈은 아직 남아 있다.
- 28 Dec, 2025
개발자 남자친구랑 밥 먹으면서도 일 얘기를 하게 되는 이유
저녁 7시, 홍대 파스타집민규가 포크를 돌리다가 말했다. "오늘 API 응답 시간이 3초 넘어가서 난리였어." 나는 파스타를 입에 넣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앱도 로딩 느리다고 리뷰 달렸어. 그거 때문에 오늘 회의했고." 둘 다 웃었다. 또 시작이다. 원래 안 그러려고 했다. 저녁 먹을 땐 일 얘기 안 하기로 했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다짐했다. "우리 연애할 때는 개발자, 디자이너 없어. 그냥 최지우, 김민규야." 근데 안 된다. 같은 언어, 다른 세계민규는 백엔드 개발자다. 나는 UI/UX 디자이너다. 같은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근데 보는 세상이 다르다. "이 버튼 4dp만 더 올리면 안 돼?" "4픽셀? 그거 CSS 한 줄인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 중요하다. 나한테는. "이거 구현하는 데 3일 걸려." "3일? 버튼 하나인데?" 버튼 하나가 아니다. 민규한테는. 우리는 서로의 일을 70% 정도 이해한다. 나머지 30%는 평생 모를 것 같다. 그 30% 때문에 싸우기도 한다. 그 70% 때문에 계속 얘기한다. 공감의 형태 오늘 민규가 먼저 물어봤다. "너희 팀장이 또 피드백 바꿨어?" 바꿨다. 세 번. "빨간색이 너무 강렬하대. 어제는 임팩트 있게 하래서 채도 올렸는데." 민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팀장도 그래. 어제 코드리뷰에서 OK 했는데 오늘 다시 보더니 로직 바꾸래." 이게 좋다. 설명 안 해도 된다. '팀장'이라는 단어만으로 통한다. '일정'이라는 말만 해도 서로 한숨 쉰다. '갑자기'라는 말 뒤에 무슨 일이 올지 둘 다 안다. "피곤하지?" "응. 너도?" 이게 위로다. 오해의 지점근데 가끔은 안 통한다. "이 인터랙션 좀 봐봐. 버튼 누르면 이렇게 확장되면서 카드가 올라오는 거야." 민규가 내 피그마 화면을 봤다. "이거... 구현 가능은 한데..." 그 말투 안다. '가능은 한데' 뒤에는 항상 '근데'가 온다. "근데 애니메이션 duration이랑 easing 커브 맞추는 거 시간 걸려. 그리고 성능도..." "그냥 부드럽게만 되면 돼. CSS transition 몇 줄 아니야?" 민규가 웃었다. 짜증 섞인 웃음. "너도 그렇게 말하네. '그냥' 디자인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그냥'을 모른다. 내가 4시간 고민한 8dp. 민규가 하루 걸린 '간단한' API 연동. 겉에서 보면 다 '그냥'이다. 밥 먹으면서 일 얘기 하는 이유 저녁을 다 먹었다. 민규가 카드를 내밀었다. 번갈아 내기로 했는데 이번은 민규 차례다. "다음엔 일 얘기 좀 그만하자." 나도 그렇게 말했다. 근데 우리 둘 다 안다. 또 할 거다. 왜냐면. 회사 동료들한테는 할 수 없는 얘기를 민규한테 한다. "우리 팀장 진짜 모르는 것 같아. 디자인을." 회사에서는 못 한다. 민규한테는 한다. 민규도 나한테만 한다. "시니어 개발자가 코드 못 짠다는 걸 어떻게 말해." 회사에서는 못 한다. 나한테는 한다. 그리고. 민규는 내 고민을 이해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는 민규 고민을 이해한다. 70%는 이해한다. 이게 크다. "이 컴포넌트 시스템 봐봐. 한 달 걸렸어." "오. 변수 관리 이렇게 했구나. 깔끔한데?" 민규는 컴포넌트가 뭔지 안다. 나는 변수가 뭔지 안다. 친구들한테 보여주면. "응 예쁘다." 끝이다. 민규는 다르다. "이거 반응형은 어떻게 처리했어?" 물어본다. 우리가 만드는 것들 집에 가는 길에 민규가 말했다. "너희 회사 앱 업데이트했더라. UI 바뀐 거 네가 한 거지?" 했다. 3주 걸렸다. "좋던데. 특히 온보딩 플로우." 그 말 한마디에 3주가 보상받는다. 민규는 내가 무슨 고민을 했을지 안다. 저 화면 뒤에 몇 개의 시안이 있었는지. 몇 번의 회의가 있었는지. "고생했어." 이 말이 다르게 들린다. 나도 민규 회사 서비스를 쓴다. 로딩이 빨라졌다. 오류가 없어졌다. "API 개선한 거지? 체감돼." 민규가 웃는다. 우리는 서로가 만든 것들을 쓴다. 그리고 안다. 저 화면 뒤에 누군가의 야근이 있다는 걸. 내일도 또 할 거다 내일 저녁에도 약속이 있다. 이태원 멕시칸 레스토랑. 분명히 또 일 얘기를 할 것이다. "오늘 디자인 시스템 발표했어." "어땠어?" "오늘 배포했는데 버그 떴어." "심각해?" 이런 대화를 할 것이다. 안 하려고 해도 된다. 근데 하게 된다. 왜냐면 우리 인생의 8시간이 거기 있으니까. 하루의 절반이 그 일을 하니까. 그 고민이 진짜 고민이니까. 그리고 민규는 이해하니까.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70%는 이해하니까. 나머지 30%는. "나는 잘 모르겠는데 너가 힘들어하는 건 알겠어." 이렇게 말해주니까. 그거면 된다. 같은 배, 다른 노 우리는 같은 배를 탄다. IT라는 배. 스타트업이라는 배. 근데 다른 노를 젓는다. 민규는 코드로. 나는 픽셀로. 가끔 박자가 안 맞는다. "이거 왜 이렇게 디자인했어?" "이거 왜 이렇게 구현했어?" 싸우기도 한다. "개발자들은 몰라. 1픽셀이 얼마나 중요한지." "디자이너들은 몰라. 성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근데 결국 같은 방향이다. 좋은 프로덕트. 사용자가 편한 서비스. 우리가 자랑스러운 결과물. 목적지는 같다. 그래서 밥 먹으면서도 얘기한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협업이 잘될까. "디자이너 관점에서는 이게 중요해." "개발자 입장에서는 이게 어려워." 서로 배운다. 민규는 내 덕분에 UI를 보는 눈이 생겼다. 나는 민규 덕분에 구현 가능성을 고민한다. 더 나은 사람들이 된다. 조금씩. 직장인 커플의 데이트 친구가 물어봤다. "남자친구랑 만나면 뭐 해?" 밥 먹는다. 영화 본다. 산책한다. 그리고 일 얘기한다. "그게 재밌어?" 재밌다는 아니고. 필요하다. 하루를 공유하는 거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 "나도 비슷한 거 겪었어." 연애의 형태는 다양하다. 누구는 일과 연애를 완전히 분리한다. 퇴근하면 직장인 탈출. 주말엔 회사 얘기 금지. 우리는 섞는다. 민규의 일은 내 관심사다. 내 일은 민규의 관심사다. "오늘 코드리뷰 어땠어?" "오늘 디자인 피드백 어땠어?" 이게 우리의 안부다. 같이 성장하는 법 작년에 민규가 이직을 고민했다. 연봉 천만원 올려준다는 회사가 있었다. "근데 SI야. 고민돼." 나는 SI가 뭔지 안다. 서비스 개발자한테 SI가 뭔지 안다. "네가 하고 싶은 개발 할 수 있어?" "글쎄. 레거시 유지보수가 많을 것 같아." "그럼 돈이 문제야, 커리어가 문제야?" 민규는 한참 생각했다. 결국 안 갔다. 내가 도와줬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결정을 같이 고민했다.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에이전시에서 인하우스로 갈지. 민규가 물어봤다. "네가 하고 싶은 디자인이 뭔데?"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 한 프로젝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럼 답 나온 거 아냐?" 그래서 스타트업에 왔다. 우리는 서로의 커리어 코치다. 전문가는 아니어도. 옆에서 보는 사람이다. "네 강점은 이거야." "너 이거 잘하잖아." 객관적으로 봐준다. 밤 11시, 각자의 방 영상통화 중이다. 각자의 집에서. 민규는 사이드 프로젝트 코딩 중. 나는 포트폴리오 업데이트 중. 말은 별로 안 한다. 그냥 켜놓는다. "나 컴포넌트 네이밍 고민되는데." "뭔데?" "버튼 사이즈를 sm, md, lg로 할지 아니면 숫자로 할지." 민규가 생각하다가 말한다. "시맨틱하게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나중에 사이즈 추가되면 숫자는 헷갈려." 맞는 말이다. "너 그 API 에러 해결했어?" "아직. 로그 찍어보는 중." 이게 우리의 밤이다. 같이 있지는 않아도. 같은 시간을 보낸다. 일하면서 연애하는 게 아니라. 연애하면서 일한다. 미묘하게 다르다. 이해받는다는 것 어제 대표님이 말했다. "이 디자인 감각적으로 좀 더 세련되게 해주세요." 감각적으로. 세련되게. 뭔지 모르겠다. 민규한테 털어놨다. "감각이 뭔데. 내가 감각 선택권자야?" 민규가 웃었다. "우리 대표도 그래. '직관적으로 만들어주세요' 그래. 직관이 뭔데." 둘이 한참 욕했다. "감각적인 디자인 = 대표 취향" "직관적인 기능 = 대표가 이해하는 거" 정리했다. 이게 위로다. 혼자였으면 되게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내가 못하는 건가?' '내 감각이 이상한 건가?' 근데 민규도 비슷한 얘기를 듣는다. 그럼 내 문제가 아니다. 그냥 스타트업이 그렇다. 혼자 싸우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하지 않는 것 일 얘기를 많이 한다. 근데 하지 않는 게 있다. 회사 기밀은 안 한다. "이번 분기 매출이..." 이런 얘기는 안 한다. 동료 험담도 최소화한다. "우리 팀 OO가..." 시작하면 민규가 끊는다. "그 사람 나도 모르는데 얘기해도 돼?" 맞는 말이다. 그리고 서로 조언 강요 안 한다. "이럴 땐 이렇게 해." 이런 거 안 한다. 그냥 듣는다. "힘들었겠다." "나도 그럴 것 같아." 해결책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 공감이 필요한 거니까. 가끔 민규가 물어본다. "조언 필요해? 아니면 그냥 들어주면 돼?" 이 질문이 좋다. 명확하다. 주말 오후, 카페 나는 사이드 프로젝트 와이어프레임 그린다. 민규는 알고리즘 문제 푼다. 같이 있지만 각자 논다. 가끔. "이거 좀 봐봐." "응." 서로의 화면을 본다. "오 괜찮은데?" "이 부분은 이렇게 하면 어때?" 다시 각자 한다. 이게 편하다. 누가 보면 심심한 연애다. 같이 있는데 대화도 별로 없다. 근데 우리는 안다. 이게 편하다는 걸. 서로의 집중을 존중한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한다. 같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처럼. 혼자 있어도 같이 있는 것처럼. 이게 우리 방식이다. 일 얘기 하는 커플 친구들이 말한다. "너희 데이트 때도 일 얘기 해? 지루하지 않아?" 지루하지 않다. 왜냐면 우리한테 일은. 인생의 큰 부분이니까. 하루 8시간. 출퇴근 2시간. 고민하는 시간까지 하면 12시간. 이걸 빼고 연애하면. 하루에 몇 시간 남는데. 그리고. 민규의 고민을 나만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내 고민을 민규만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이게 특별하다. "오늘 배포했어." 이 말이 얼마나 떨리는 일인지. "디자인 리뉴얼 끝났어." 이 말이 얼마나 안도되는 일인지. 서로 안다. 결국 우리가 만드는 것 우리는 각자 무언가를 만든다. 민규는 코드를 만든다. 나는 화면을 만든다. 근데 같이 만드는 것도 있다. 서로에 대한 이해. 서로의 일에 대한 존중. 같이 성장하는 관계. 민규는 나 때문에 UI를 더 신경 쓴다. "이 버튼 위치 디자이너가 고민했을 거야." 나는 민규 때문에 구현을 더 고려한다. "이 애니메이션 개발자가 힘들 수도 있겠다." 서로를 더 나은 실무자로 만든다. 그리고. 힘들 때 옆에 있다. "오늘 힘들었지?" "응." "고생했어." 이게 크다. 다음 주 화요일 민규 회사에서 앱을 런칭한다. 3개월 준비했다. 나는 그 과정을 다 봤다. 야근하던 날들. 버그 잡느라 주말 출근하던 날. 테스트 시나리오 짜느라 스트레스받던 날. 다 안다. 런칭하면 나는 제일 먼저 다운받을 것이다. 하나하나 써볼 것이다. 리뷰도 쓸 것이다. "잘 만들었어." 민규도 우리 서비스 업데이트 때마다 그랬다. 우리는 서로의 첫 유저다. 가장 관심 있는 유저다. 이게 일 얘기를 하는 이유다.밥 먹으면서 일 얘기. 우리의 방식이다.
- 27 Dec, 2025
부산에 계신 부모님께 일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
부산에 계신 부모님께 일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 전화가 왔다 어제 저녁 부모님한테 전화 왔다. "요즘 일은 잘하고 있어?" "네, 잘하고 있어요." "근데 정확히 무슨 일 하는 거야? 친척들이 물어보는데 엄마가 잘 모르겠더라."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UI/UX 디자이너. 6년차. 월급 받는다. 그런데 설명을 못 하겠다. "음... 앱 화면 디자인하는 거예요." "아, 그림 그리는 거?" "비슷한데 좀 달라요." "그럼 뭐가 달라?" 대답하지 못했다.보여줄 게 없다 명절 때 집에 갔었다. 친척 동생이 물었다. "누나 회사에서 뭐 만들어?" 핸드폰 꺼내서 우리 앱 보여줬다. "이거." "이게 뭔데?" "이 화면들이랑 버튼들 다 내가 디자인한 거야." "아... 그냥 앱이네?" 말문이 막혔다. 건축가 사촌오빠는 건물 사진 보여주면 된다. "저기 내가 설계했어." 요리하는 고모는 음식 사진 올리면 된다. "오늘 만든 케이크." 나는? 화면 캡처? 피그마 링크 보여줘봤자 모른다. 컴포넌트 시스템? 디자인 토큰? 반응형 레이아웃? 그냥 "예쁜 거 만드는구나" 로 끝난다.시간이 보이지 않는다 3주 걸린 작업이 있다. 사용자 플로우 분석. 15번의 수정. 개발자랑 10번 미팅. 접근성 체크. 인터랙션 디테일. 결과물: 버튼 위치 5픽셀 이동. 아빠한테 설명했다. "이번 달에 이거 작업했어요." "겨우 이거? 3주나 걸려?" 할 말이 없었다. 보이는 건 버튼 하나다. 보이지 않는 건 120시간의 고민이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요즘은 컴퓨터로 하니까 편하겠다." 편하다고? 손으로 그리던 시대가 더 쉬웠을 수도 있다. 최소한 그림은 보였으니까. 지금은 레이어 300개, 컴포넌트 50개, 프로토타입 링크 20개. 화면으로는 똑같아 보인다. 돈이 설명되지 않는다 연봉 5500만원. 부산 기준으로 적지 않다. 서울 원룸에 월세 65만원 내지만. 아빠가 물었다. "그 돈 받으려면 뭘 해야 돼?" "디자인이요." "디자인이 뭔데?" "화면 만드는 거요." "화면 하나에 얼마 받아?" 대답 못 했다. 화면 하나? 단가로 계산하는 게 아니다. 사용자 경험. 비즈니스 목표. 기술적 제약. 브랜드 아이덴티티. 이걸 어떻게 설명해? 엄마는 이렇게 정리했다. "그러니까 그림쟁이구나." 틀렸는데 맞다.성취가 번역되지 않는다 지난달에 디자인 시스템 구축했다. 3개월 걸렸다. 컴포넌트 라이브러리, 토큰 정의, 개발자 핸드오프 프로세스. 회사에서 칭찬받았다. CTO가 "생산성 30% 올랐다"고 했다. 엄마한테 말했다. "이번에 큰 프로젝트 끝냈어요. 칭찬받았어요." "잘했네. 그래서 월급 올라?" "아뇨." "보너스는?" "그것도 아니고..." "그럼 뭐가 좋아진 거야?" 설명할 수 없었다. 개발 속도 향상. 디자인 일관성. 유지보수 편의성. 이게 내 성취다. 근데 엄마는 모른다. 가시적인 게 없다. 상장도 없다. 작품집도 없다. 그냥 "수고했어" 한마디. 야근이 이해되지 않는다 어젯밤 10시까지 일했다. 개발 일정 밀려서. QA에서 UI 버그 나와서. 밤 11시에 엄마한테 전화했다. "이제 퇴근했어요." "왜 이렇게 늦어? 아파." "일이 좀 밀렸어요." "무슨 일이 그렇게 밀려? 컴퓨터로 하는 건데." 컴퓨터로 한다고 빠른 게 아니다. 기획 변경 3번. 디자인 수정 8번. 개발 제약사항 협의 5번. 실제 디자인 작업 시간: 2시간. 나머지: 커뮤니케이션. 이걸 어떻게 말해? "힘들면 그만둬. 건강이 우선이지." 그만둘 수도 없다. 이 일이 좋다. 근데 설명은 못 하겠다. 고민이 공유되지 않는다 요즘 고민이 있다. 커리어 방향성. 계속 실무만 할 건가, 매니저로 갈 건가. 대기업 동기는 7천 받는다. 나는 5500. 포트폴리오 업데이트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계속 미룬다. 번아웃 올 것 같다. 엄마한테 말했다. "요즘 고민이 좀 있어요." "무슨 고민?" "일 얘기인데..." "회사 그만둬?" "아니요, 그게 아니라..." 설명하다가 포기했다. 디자이너의 고민. 실무자의 딜레마. 크리에이티브 번아웃. 이게 엄마한테는 "그냥 직장 스트레스" 로 들린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근데 전부는 아니다. 자부심이 전달되지 않는다 나는 이 일이 좋다. 사용자가 내 디자인 쓸 때. 인터랙션이 자연스러울 때. 개발자가 "이거 구현하기 좋네요" 할 때. 그게 좋다. DAU 10만명. 내 화면을 매일 10만명이 본다. 서비스 리뷰에 "UI 예쁘다" 댓글 달리면 캡처한다. 이게 내 자부심이다. 엄마한테 보여줬다. "이거 봐요. 사람들이 좋아해요." "그래? 잘했네." 그리고 끝.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건축가는 건물 앞에서 사진 찍는다. "내가 만들었어." 나는? 앱스토어 리뷰 캡처? 실체가 없다. 만질 수 없다. 거리가 멀어진다 통화할 때마다 느낀다. 우리는 다른 세계에 산다. 엄마는 부산 아파트에서 김치 담근다. 시장 간다. 친구들 만난다. 나는 서울 원룸에서 피그마 켠다. 슬랙 확인한다. 개발자랑 회의한다. 교집합이 없다. "오늘 뭐 했어?" "디자인 시스템 컴포넌트 리팩토링했어요." "...그래." 대화가 끊긴다. 억지로 이어간다. "엄마는 오늘 뭐 했어요?" "미용실 갔다 왔다. 친구 만났고." "아." 또 끊긴다. 명절 때 친척들이 물어본다. "요즘 무슨 일 해?" 엄마가 대신 대답한다. "컴퓨터로 뭐 하는데, 잘 모르겠어." 나도 덧붙일 말이 없다. 죄책감이 생긴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선생님이었으면. 의사였으면. 공무원이었으면. 설명하기 쉬웠을 텐데. "학생들 가르쳐요." "환자 치료해요." "민원 처리해요." 간단하다. 명확하다. UI/UX 디자이너?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합니다." "...?" 부모님이 이해 못 하는 게 당연하다. 나도 6년 전엔 몰랐다. 근데 왜 죄책감이 들까. 부모님께 자랑하고 싶다. 내 일을. 내 성취를. 근데 방법을 모르겠다. 화면 캡처 보여드리는 게 다다. 그래도 통화한다 어제도 전화했다. "잘 지내요?" "응, 너는?" "저도 잘 지내요." "일은?" "그냥 해요." "힘들어?" "괜찮아요." 거짓말이다. 요즘 힘들다. 기획 또 바뀌었다. 디자인 엎었다. 야근 3일째다. 근데 말 안 한다. 어차피 설명 못 한다. 이해 못 하신다. "그래, 건강 챙겨." "네. 엄마도." 끊는다. 매번 이렇다. 표면적인 대화. 깊이 없는 안부. 서로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른다. 엄마는 내 일을 모른다. 나는 엄마의 하루를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멀어진다.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계속 시도한다. 이번 설에는 포트폴리오 출력해 갈까. 아니면 디자인 프로세스 PPT 만들까. 유튜브에 UX 디자인 설명 영상 있다. 같이 볼까. 매번 실패한다. "나중에 봐." "바빠." "괜찮아." 포기하고 싶다. 근데 포기하고 싶지 않다. 부모님이 내 일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우리 딸 멋진 일 하네." 한 번만 들어봤으면. 근데 방법을 모르겠다. 디자인은 무형이다. 과정은 보이지 않는다. 성취는 번역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설명이 서툴다.내일도 부모님께 전화할 것이다. 여전히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 26 Dec, 2025
Adobe CC 구독료를 내면서 느끼는 디자이너의 현실
Adobe CC 구독료를 내면서 느끼는 디자이너의 현실 매달 22일, 결제 알림 오늘도 왔다. Adobe Creative Cloud 결제 완료 메일. 월 6만 5천원. 1년이면 78만원이다.카드 문자 보고 한숨 나왔다. 작년에는 5만 9천원이었는데. 매년 오른다. 환율 핑계로. 근데 안 끊는다. 못 끊는다. 포토샵 없이 어떻게 일해. 일러스트레이터 없이 로고를 어떻게 만들어. 애프터이펙트 없으면 모션은 누가 하고. 회사는 안 내준다 입사할 때 물었다. "회사에서 툴 라이선스 지원해주시나요?" "음... 피그마는 회사 계정 있고요. 어도비는 개인이..." 알았다는 표정 지었다. 속으로는 욕했다.직원 40명 회사다. 디자이너 3명한테 월 20만원 못 내주나. 개발자들은 IntelliJ, WebStorm 다 회사 돈으로 쓴다. 우리만 개인 카드 긁는다. "디자이너는 원래 자기 툴 자기가 사는 거 아니야?" 팀장 말이다. 아니다. 원래가 아니다. 그냥 관행이다. 나쁜 관행. 학생 때는 불법이었다 대학교 때 생각난다. 토렌트로 받았다. CS6 크랙 버전. 친구들 다 그랬다. 교수님도 아셨다. 모른 척하셨다. "나중에 취업하면 정품 쓰세요."그때는 몰랐다. 취업하면 회사가 내주는 줄 알았다. 첫 월급 받고 정품 결제했다. 초봉 240만원에서 6만원. 2.5% 나갔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다. 일 하려고 내 돈 쓴다. 택시 기사가 기름값 자비로 넣나. 선생님이 분필값 자기 돈으로 사나. 우리만 그런다. 대안은 있다는데 친구가 말했다. "Affinity 써봐. 한 번 사면 끝이야." 알아봤다. 7만원이면 평생 쓴다. 근데 못 바꾼다. 6년 동안 포토샵 썼다. 단축키가 손에 배었다. Ctrl+J, Ctrl+Shift+Alt+E, Ctrl+T. 생각 안 하고 누른다. 새 툴 배울 시간 없다. 일은 매일 쏟아진다. 익숙한 게 빠르다. 효율이 곧 돈이다. 그래서 계속 낸다. Adobe가 그걸 안다. 구독 경제의 덫 옛날에는 샀다. CS6 패키지, 150만원. 비쌌지만 내 거였다. 10년 써도 됐다. 지금은 빌린다. 월 6만 5천원, 영원히. 한 달 안 내면 작업 파일도 못 연다. PSD 파일이 인질이다. 7년 썼다. 546만원 낸 거다. 계속 쓰면 1천만원 넘는다. 평생 내야 한다. 그만두는 순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Netflix 끊으면 영화 못 본다. 당연하다. 콘텐츠 소비니까. 근데 Adobe는 다르다. 생산 도구다. 일하는 연장이다. 이걸 구독으로 파는 게 맞나. 동료들의 선택 막내는 크랙 쓴다. "제 돈으로 왜 사요." 위험하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안 사주잖아요." 할 말 없었다. 시니어는 회사 법인카드로 산다. "경비 처리하면 돼요." 부럽다. 우리 회사는 안 된다. 대표가 까다롭다. "개인 툴은 개인이 사는 거죠." 그러면서 회식비는 50만원 쓴다. 중견 디자이너 선배 만났다. "나 이제 안 내." 놀랐다. "대안 찾았어요?" "아니, 프리랜서 됐어. 클라이언트한테 청구해." 견적서에 툴 비용 넣는다고 했다. "Adobe CC 라이선스 1개월분: 6만 5천원" 당당하게 받는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그럴까. 다른 구독들과 비교 Netflix: 월 1만 3천원 Spotify: 월 1만원 iCloud: 월 1천원 Adobe CC: 월 6만 5천원 다 합쳐도 Adobe보다 싸다. Netflix는 안 봐도 그만이다. Spotify 없어도 유튜브 있다. 근데 Adobe는 필수다. 선택이 아니다. 직업 유지비다. 간호사 면허 갱신비 같은 거다. 세금 같은 거다. 근데 정부도 아니고 기업한테 낸다. 이상하다. 디자인 시스템 만들 때 회사에서 디자인 시스템 만들었다. 아이콘 200개 필요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열고 그렸다. 3주 걸렸다. 개발자가 물었다. "이거 SVG로 export 되죠?" "당연하지. 일러로 만들었는데." 고마워하지 않았다. 당연한 거였다. 근데 그 일러스트레이터. 내 돈으로 썼다. 회사는 아이콘 200개 얻었다. 나는 그 달 카드값 걱정했다. 뭔가 잘못됐다. 사이드 프로젝트의 아이러니 주말에 개인 작업 한다. 포트폴리오용 목업 만들었다. 포토샵으로 합성하고 일러로 정리했다. 잘 나왔다. Behance에 올렸다. 조회수 3천, 좋아요 200. 뿌듯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웃겼다. 회사 일도 내 툴로 했다. 개인 작업도 내 툴로 했다. 결국 나만 손해다. Adobe만 이득이다. 월 6만 5천원으로 두 곳에서 수익 창출했다. 효율적이다. Adobe 입장에서는. 이직할 때마다 이력서 쓸 때 항상 넣는다. "보유 스킬: Adobe Photoshop, Illustrator, After Effects" 당연히 쓴다. 필수 요건이다. 면접에서 물어본다. "포토샵 능숙하시죠?" "네, 6년 썼습니다." 붙는다. 그 회사도 라이선스 안 내준다. "개인 계정으로 쓰시면 돼요." 또 내 돈이다. Adobe 스킬 덕분에 취업했다. 근데 Adobe 비용은 내가 낸다. 모순이다. 회사는 내 스킬로 돈 번다. 나는 그 스킬 유지하려고 돈 쓴다. 연봉 협상 때 넣고 싶은 말 "희망 연봉이 어떻게 되세요?" "5800만원입니다." "근거가 있을까요?" 속으로 계산한다. 원래 희망: 5500만원 Adobe CC: 78만원 Figma Pro: 24만원 폰트 라이선스: 30만원 각종 플러그인: 20만원 합계: 152만원 세전으로 환산하면 200만원. 그래서 5800만원 불렀다. 근데 말 안 한다. 이상하게 들릴까 봐. "툴 값 때문에 연봉 올려달라고요?" 비웃을 것 같다. 그래서 조용히 감수한다. 프리랜서 선배의 조언 선배가 말했다. "너 견적에 툴 비용 넣어." "클라이언트가 이상하게 안 볼까요?" "당연한 건데 뭐가 이상해." 맞는 말이다. 인테리어 업체는 자재비 받는다. 운송업체는 유류비 받는다. 디자이너는 툴 비용 못 받나. "디자인 작업비: 300만원"이 아니라 "디자인 작업비: 280만원,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20만원" 명확하게 분리한다. 투명하다. 정당하다. 근데 회사 다니면 못 한다. 월급쟁이는 선택권 없다.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후배가 물었다. "선배, 디자이너 전망 어때요?" 좋다고 했다. "준비할 거 있나요?" 망설였다. "포트폴리오 잘 만들어." "네." "툴 많이 써봐." "네." 하고 싶었던 말은 다르다. "Adobe 정품 살 돈 모아둬." "회사가 안 사줄 거야." "평생 내야 해." 근데 못 했다. 꿈 깨고 싶지 않았다. 나도 학생 때는 몰랐으니까. 일하면 회사가 다 해주는 줄 알았으니까. 대표님은 모르신다 회식 자리에서 대표가 물었다. "요즘 디자이너들은 뭐가 필요해요?" 기회다 싶었다. "툴 라이선스 지원해주시면..." "아 피그마? 우리 회사 계정 있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어도비..." "그거 요즘도 써요? 피그마면 되는 거 아니야?" 설명했다. 이미지 보정, 아이콘 제작, 인쇄물, 상세페이지. 피그마로 안 되는 것들. "음... 그래도 그건 개인 역량 아니야?" 역량을 유지하려면 돈이 든다고 말하고 싶었다. 참았다. 연봉 협상 때 불리할까 봐. 환율이 오를 때마다 작년에 5만 9천원이었다. 올해 6만 5천원 됐다. 내년엔 또 오를 거다. 달러 기준이니까. 환율 뉴스 볼 때마다 한숨 나온다. 1400원 넘으면 7만원 될 거다. 1년에 84만원. 신입 디자이너 월급이 250만원이다. 3%가 넘는다. 경력자인 나도 부담되는데. 신입들은 얼마나 힘들까. 포기하고 크랙 쓸까. 아니면 디자이너 그만둘까. 정말 필요한 기능은 20% 솔직히 말하면. 포토샵 기능의 20%만 쓴다. 레이어, 마스크, 블렌딩 모드, 필터 몇 개. 나머지 80%는 본 적도 없다. 3D 기능? 안 써. Neural Filters? 한 번 써봤다. Puppet Warp? 가끔. 그런데 full package 값 낸다. 선택권이 없다. 포토샵만 따로 못 산다. CC 전체를 사야 한다. 쓰지도 않는 Premiere, Audition, Animate. 다 내 구독료에 포함됐다. 억울하다. 경쟁사는 없다 독점이다. 디자인 업계는 Adobe 아니면 답이 없다. 클라이언트가 PSD 달라고 한다. PDF 주면 안 받는다. "PSD 파일로 주세요." 업계 표준이 됐다. PSD, AI, PDF. 모두 Adobe 포맷이다. 다른 툴로 열면 깨진다. 호환은 되는데 완벽하지 않다. 결국 Adobe로 돌아온다. 경쟁이 없으니 가격도 마음대로다. 올해 올리고 내년 또 올린다. 항의해봤자 소용없다. 대안이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해 못 한다 남자친구가 물었다. "그거 매달 내는 거야?" "응." "왜? 한 번 사면 안 돼?" "요즘은 구독이야." "비싸다. 넷플릭스보다 비싸네." 설명했다. 일하려면 필요하다고. "회사에서 안 사줘?" "안 사줘." "그럼 바꿔." "뭘로?" "무료 거." 한숨 나왔다. 개발자는 모른다. IntelliJ는 회사가 사준다. VSCode는 무료다. 디자이너는 다르다. 동기들과의 격차 대학 동기 모임. 다들 디자이너다. 대기업 간 친구 말했다. "우리는 회사에서 다 사줘. 당연한 거 아니야?" 스타트업 간 우리는 조용했다. 프리랜서 친구는 웃었다. "나는 클라이언트한테 받아." 에이전시 다니는 친구는 한숨 쉬었다. "우리는 개인이 사는데 회사가 일부 지원해줘." 각자 다르다. 복불복이다. 실력이나 연차 차이가 아니다. 어느 회사 들어갔냐의 차이다. 운이다. 이럴 때 후회된다 새벽 2시. 마감 작업 중이다. 포토샵이 꺼졌다. 저장 안 한 파일. 2시간 날렸다. 욕 나왔다. 다시 켰다. 로그인하라고 한다. 인터넷 끊겼나 확인했다. Adobe 서버 문제였다. 10분 기다렸다. 그 10분이 1시간 같았다. 월 6만 5천원 내는데. 서버도 불안정하다. 구독료는 꼬박꼬박 받으면서. 은퇴하는 날까지 계산해봤다. 지금 30살이다. 60살까지 일한다고 치자. 30년이다. 월 6만 5천원 × 12개월 × 30년 2340만원이다. 이천삼백만원. 작은 차 한 대 값이다. 전세 보증금 일부다. 그걸 툴 쓰는 데 쓴다. 평생. 가격 인상 계산 안 하고. 실제로는 3천만원 넘을 거다. 숨이 막힌다. 그래도 계속 낸다 다음 달 22일. 또 빠져나갈 거다. 6만 5천원. 항의 안 한다. 해지 안 한다. 디자이너니까. 이게 내 운명이다. 선택한 직업의 비용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합리화한다. 근데 가끔 생각한다. 정말 좋아서 하는 건가. 아니면 익숙해서 못 그만두는 건가. Adobe도 그렇고. 디자이너란 직업도 그렇고.오늘도 카드 명세서가 왔다. Adobe 6만 5천원, 어김없이 박혀 있다. 이게 프로의 삶이라고, 스스로 타협한다.
- 25 Dec, 2025
리드디자이너인데, 왜 나도 모르는 결정을 혼자 해야 할까
리드인데 왜 나만 모르지 오늘 아침 슬랙 DM이 세 개 떴다. "최디자님, 이 버튼 색상 어떻게 할까요?" "최디자님, 이 플로우 이대로 진행해도 될까요?" "최디자님, 디자인 시스템 컬러 토큰 수정해도 돼요?" 나도 모르겠는데. 리드 된 지 8개월. 월급은 그대로인데 질문은 두 배로 늘었다. 웃긴 건, 다들 내가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나도 매일 고민하는데.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어제까지만 해도 이 방향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또 아닌 것 같고. 답장은 30분 뒤에 했다. "일단 A안으로 가보자. 테스트해보고 피드백 받으면 수정하면 돼." 확신 없는 문장. 근데 확신 있는 척 보내야 한다. 그게 리드니까.회의실에서 혼자 결정하는 시간 오후 3시. 기획자, 개발자, PM이 모였다. 새 기능 디자인 리뷰. "이 카드 레이아웃, 어떤 게 좋을까요?" 기획자는 A안. 개발자는 B안. PM은 "둘 다 괜찮은데요?" 시선이 나한테 온다. 결정을 기다린다. A안은 심미적으로 더 낫다. 여백이 좋고, 타이포그래피가 깔끔하다. 근데 개발 공수가 3일 더 걸린다. B안은 기존 컴포넌트 재활용이라 1일이면 된다. 근데 디자인적으로는 타협이다. "B안으로 가죠. 일정이 더 중요하니까." 내 입에서 나왔다. 기획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개발자가 좋아한다. 회의는 끝났다. 혼자 남았다. 피그마 파일 앞에서 B안을 다시 본다. 맞는 결정일까. 포트폴리오에 넣고 싶지 않은 디자인을 내가 골랐다. 리드니까. 일정을 지켜야 하니까. 팀을 생각해야 하니까. 근데 이게 맞나.정답 없는 질문들 리드가 되고 나서 깨달은 것. 정답이 있는 질문은 애초에 나한테 안 온다. "이 아이콘 사이즈 몇 px이 좋아요?" 같은 건 주니어가 스스로 정한다. 24px, 20px, 결정하고 진행한다. 디자인 시스템에 있으니까. 나한테 오는 건 이런 거다. "전체 UI 톤앤매너를 바꿔야 할까요? 지금 트렌드는 더 미니멀한데." "개발 리소스가 없어요. 디자인을 단순화할까요, 일정을 밀까요?" "대표님이 이 컬러가 별로래요. 설득할까요, 바꿀까요?" 정답이 없다. 아니, 정답이 여러 개다. 각자의 관점에서는 다 맞는 말이다. 근데 누군가는 정해야 한다. 그게 나다. 어제는 개발팀 리드한테 DM을 보냈다. "형, 이런 거 고민될 때 어떻게 해요?" 답장이 왔다. "그냥 정해. 틀려도 돼. 안 정하는 게 제일 나쁨." 맞는 말이다. 근데 쉽지 않다. 혼자 결정하고 혼자 책임지기 지난달에 메인 화면 리뉴얼을 결정했다. 사용자 피드백도 좋았고, 데이터도 긍정적이었다. 팀원들한테도 컨펌 받았다. "좋아요, 최디자님!" 다들 동의했다. 2주 뒤 A/B 테스트 결과. CVR이 1.2% 떨어졌다. 대표님이 물었다. "왜 떨어진 거죠?" 기획자가 말했다. "디자인이 바뀌어서 그런가요?" 개발자가 말했다. "원래 디자인이 더 나았나 봐요." 그 순간 알았다. 결정은 같이 했어도, 책임은 내가 지는 거구나. "제가 다시 분석해볼게요." 회의실을 나왔다. 복도에서 잠깐 멈췄다. 심호흡 세 번. 화장실 가서 물 마셨다. 거울을 봤다. 피곤해 보인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피그마를 켰다. 원래 버전을 다시 봤다. 리뉴얼 버전을 다시 봤다. 히트맵 데이터를 다시 봤다. 혼자 원인을 찾았다. 결국 찾았다. CTA 버튼의 위치가 문제였다. 스크롤 없이 보이는 영역에서 10px 벗어났다. 작은 차이. 근데 모바일에서는 큰 차이. 수정했다. 재배포했다. 1주일 뒤 CVR 회복. 아무도 칭찬 안 한다. 당연한 거니까.리드인데 누구한테 물어봐 제일 힘든 건 이거다. 내가 모를 때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것. 주니어 때는 좋았다. 막히면 선배한테 물어봤다. "언니, 이거 어떻게 하면 좋아요?" 답을 받았다. 배웠다. 성장했다. 지금은 내가 선배다. 다들 나한테 물어본다. 근데 나도 모르겠을 때는? 외부 커뮤니티에 물어볼까. "저 리드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근데 너무 구체적이면 회사 일 유출이고, 너무 추상적이면 도움이 안 된다. 남자친구한테 물어볼까. 개발자니까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근데 회사가 달라서 맥락을 다 설명해야 한다. 설명하다 보면 "아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하게 된다. 동기한테 물어볼까. 대기업 다니는 친구. 근데 걔네는 시스템이 있다.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있다. 우리 회사랑 다르다. 결국 혼자 생각한다. 침대에 누워서. 샤워하면서. 출근길 지하철에서. 답을 찾는다. 아니, 답을 만든다. 그게 리드구나.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어제 디자이너 모임에 갔다. 친구 넷이서 만났다. 다들 경력 비슷하다. "요즘 어때?" 한 친구가 말했다. "나 다음 달에 시니어로 올라가. 근데 뭐가 달라지는지 모르겠어." 다른 친구가 말했다. "나는 아직 주니어 일만 해. 배울 게 많아." 내가 말했다. "나는... 매일 결정만 하는 것 같아. 근데 뭐가 맞는지 모르겠어." 다들 공감했다. "리드 힘들지?" "책임만 늘어나지?" "월급은 안 오르는데?" 맞다. 다들 안다. 근데 해결책은 없다. 집에 와서 생각했다. 왜 이렇게 힘들까. 왜 나만 이런 것 같을까. 검색했다. "리드 디자이너 힘든 점" "디자인 리더십 외로움" 영어로도 검색했다. "Lead designer loneliness" "Design leadership stress" 글들이 나왔다. 다 비슷한 얘기였다. 정답 없는 결정. 혼자 떠안는 책임. 물어볼 사람 없는 외로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들 그렇다. 리드는 다 그렇다. 조금 위로가 됐다. 아주 조금. 그래도 정하는 사람 오늘 아침 또 슬랙이 왔다. "최디자님, 이 인터랙션 어떻게 할까요?" 커피를 마셨다. 피그마를 켰다. 파일을 봤다. 10분 생각했다. "이렇게 해보자. 프로토타입 만들어서 내일 리뷰하자." 확신은 70%다. 나머지 30%는 불안이다. 근데 보냈다. 안 정하는 것보다 낫다. 리드라는 게 이런 거구나. 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답을 정하는 사람. 틀릴 수 있어도 정하는 사람. 책임지는 사람. 월급이 안 오른 게 좀 억울하긴 하다. 리드 수당이라도 줬으면 좋겠다. 근데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이거다. 내가 정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 정한다. 프로젝트가 멈춘다. 팀이 헤맨다. 그래서 오늘도 정한다. 확신 없어도. 외로워도. 정답 모르겠어도. 피그마 파일 이름을 바꿨다. "Final_v8" → "Final_v9" 어차피 v10도 나올 거다. 완벽한 건 없으니까. 외로움의 무게 점심 먹고 돌아왔다. 팀원 둘이랑 같이 먹었다. 파스타 맛있었다. 대화 중에 한 명이 물었다. "언니는 고민 없어 보여요. 결정할 때 확신 있어 보이던데." 웃었다. "그럴 리가. 매일 고민해." "진짜요? 전혀 몰랐어요." 그렇게 보이는구나. 확신 있는 척이 통하는구나.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이게 리드의 일인가. 불안해도 불안한 척 안 하기. 모르겠어도 아는 척 하기. 아니, 아는 척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기. 책상에 앉았다. 모니터를 켰다. 오늘 결정해야 할 게 세 개 더 있다. 하나씩 본다. 하나씩 판단한다. 하나씩 결정한다. 외롭다. 맞다. 근데 이게 내 일이다.정답은 모르겠지만, 오늘도 정해야 한다. 그게 리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