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 원룸, 월세 65만원에서 꿈꾸는 것들

마포구 원룸, 월세 65만원에서 꿈꾸는 것들

월세 빠진 통장

오늘 25일이다. 월세 나가는 날. 아침에 알림 떴다. “65만원 출금”. 통장 잔액이 확 줄어든다. 세 자리에서 두 자리로.

5500만원. 내 연봉이다. 세금 떼면 실수령 400만원 정도. 월세 65만원, 관리비 8만원. 통신비 6만원, 교통비 10만원. 식비 40만원 잡아도 빠듯하다.

남는 돈? 270만원. 저축하면 100만원 빠진다. 데이트 비용, 옷, 화장품. 가끔 택시, 배달. 실제로 손에 쥐는 건 70만원 정도.

대기업 다니는 친구는 7천이다. “너 왜 거기 있어?” 대답 못 했다.

9평짜리 우주

마포구 연남동. 9평 원룸이다. 방 하나, 화장실 하나. 부엌은 싱크대 하나가 전부다.

책상이 제일 큰 가구다. 27인치 모니터 두 개. 와콤 타블렛, 키보드, 마우스. 책상 위는 회사보다 넓다.

침대는 싱글이다. 남자친구 오면 좁다. 그래도 우리 공간이다.

옷장은 이케아 제품. 조립하는 데 3시간 걸렸다. 남자친구가 도와줬다. 둘이 싸우면서 완성했다.

화장실에 욕조는 없다. 샤워부스도 아니다. 그냥 바닥에 물 뿌린다. 배수구로 내려간다.

베란다는 없다. 창문은 하나. 빨래는 실내 건조대다. 제습기 없으면 곰팡이 핀다.

65만원이다. 이게 서울의 가격이다.

부산에서 온 전화

엄마가 전화했다. “밥은 먹고 다니냐?” 먹는다고 했다.

“집은 괜찮냐?” 괜찮다고 했다.

“돈은 모으고 있냐?” 모은다고 했다.

다 거짓말은 아니다. 그냥 전부는 아닐 뿐.

부모님은 부산이다. 집은 25평이다. 아빠는 회사원, 엄마는 학원 강사. 평범한 중산층이다.

내가 서울 온다고 했을 때. 아빠가 반대했다. “부산에도 회사 많다.” 엄마가 설득했다. “하고 싶은 거 하게 둬.”

6년 됐다. 부산 갈 때마다 엄마가 말한다. “집이 좁다며. 보증금이라도 보탤까?” 괜찮다고 한다.

30살 됐는데. 아직 부모님 돈 받긴 싫다. 자존심은 아니다. 그냥 미안해서다.

전화 끊고 나면. 혼자 9평 방에 앉아 있다. 창문 너머로 서울이 보인다. 여기가 내가 선택한 곳이다.

연봉 5500의 의미

신입 때 3500만원이었다. 2년 차에 4200만원. 4년 차에 4800만원. 지금 5500만원.

6년 동안 2000만원 올랐다. 연평균 330만원씩. 한 달에 27만원.

대기업 동기는 7000만원이다. 네이버 간 친구는 8000만원. 카카오 간 선배는 9000만원.

스타트업이 나쁜 건 아니다. 자율성은 더 있다. 성장도 빠르다. 포트폴리오는 화려하다.

근데 통장은 솔직하다. 친구들이랑 밥 먹을 때. 가격 보게 된다. “여기 비싼데 괜찮아?”

30살이 됐다. 결혼 생각도 한다. 남자친구도 5500 정도다. 둘이 합쳐도 1억 1000이다.

아파트는 꿈도 못 꾼다. 전세도 어렵다. 지금 월세가 최선이다.

리드 디자이너다. 수당은 없다. 호칭만 바뀌었다. 책임은 늘어났다.

이직을 생각한다. 포트폴리오 정리 중이다. 근데 시간이 없다. 야근하면 더 없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그래도 중요하다. 특히 서울에선.

꿈의 가격표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예쁜 걸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쓰는 제품. 내가 만든 UI로.

지금도 좋아한다. Figma 켤 때 설렌다. 컴포넌트 정리할 때 만족스럽다. 유저가 “이 앱 디자인 좋네요” 하면 기쁘다.

근데 월세는 안 깎아준다. 커피값도 안 내준다. 열정으로 배 안 찬다.

사이드 프로젝트 한다. 토요일 오후에. 카페 가서 노트북 펴고. 아이디어 스케치한다.

2시간 하면 집중 풀린다. 핸드폰 본다. 인스타 본다. Dribbble 본다.

다른 디자이너들 작품. 다들 멋지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근데 현실은 다르다.

회사에서 하는 건. 배너 수정. 버튼 색 바꾸기. “여백 좀 줄여주세요.”

꿈이랑 현실 사이.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돈으로 메운다. 월세 65만원씩.

편의점 김밥

저녁 9시다. 편의점 간다. 김밥 하나, 2500원. 우유 하나, 2000원.

합계 4500원. 저녁 한 끼다.

주말엔 요리한다. 파스타 끓인다. 재료비 5000원이면 두 끼. 경제적이다.

친구들이랑 약속 있을 땐. 2만원 잡는다. 밥값 1만 5천원. 카페 5천원.

데이트는 주말에 한 번. 영화 보고 밥 먹으면 5만원. 한 달에 20만원.

남자친구도 안다. 우리 형편. “집에서 영화 볼까?” 고맙다.

가끔 외식한다. 월급날 다음 주. 통장이 제일 두둑할 때. 3만원짜리 파스타 먹는다.

맛있다. 이런 게 행복이다. 작은 사치.

지하철에서 보는 광고

출근길 지하철. 광고 본다. “월 300만원으로 여유로운 삶” 거짓말.

“내 집 마련의 꿈” 웃긴다.

“2030 재테크” 관심 있다. 근데 종잣돈이 없다.

점심시간에 유튜브 본다. “연봉 5000만원 재테크” 클릭한다.

“저축 먼저 하세요” 안다.

“고정비 줄이세요” 월세가 고정비다. 어떻게 줄여.

“커피값 아끼세요” 하루 4500원. 한 달 13만원. 아껴봤자 월세 1/5.

현실적인 조언이 없다. 다들 이미 가진 사람들. 집 있는 사람들. 부모 찬스 쓴 사람들.

나한테 필요한 건. 월세 안 내는 방법. 아니면. 연봉 2배로 올리는 법.

둘 다 없다.

친구들과의 거리

대학 동기들이랑 모임. 한 달에 한 번. 홍대 어딘가.

한 친구는 네이버. 연봉 8000. 강남 오피스텔 전세. 부모님이 보증금 냈대.

한 친구는 삼성. 연봉 7500. 회사 기숙사 산다. 저축 많이 한대.

한 친구는 프리랜서. 버는 건 잘 모르겠다. 근데 여행 많이 간다. 인스타 보면 부럽다.

나는 스타트업. 연봉 5500. 월세 산다. 저축 조금.

밥 먹으면서 얘기한다. “요즘 어때?” “바빠, 야근 많아.” 다들 비슷하다.

근데 다르다. 그들의 바쁨이랑. 내 바쁨은.

그들은 미래를 산다. 나는 현재를 산다.

질투는 아니다. 그냥 부럽다. 조금.

헤어질 때. “담달에 또 보자.” 웃으면서 손 흔든다.

집 가는 지하철. 창문에 내 얼굴 비친다. 30살. 디자이너. 월세 65만원.

나쁘지 않다. 그냥 생각보다 힘들 뿐.

남자친구의 제안

남자친구가 말했다. “같이 살까?”

3년 됐다. 개발자다. 연봉 비슷하다. 5800 정도.

같이 살면. 월세를 반으로 나눈다. 32만 5천원씩. 한 달에 32만원 아낀다.

좋은 제안이다. 경제적이다. 현명하다.

근데 고민된다.

혼자 사는 게 좋다. 자유롭다. 9평이지만 내 공간. 내 규칙.

같이 살면 타협한다. 작은 것들. 샴푸, 휴지, 설거지.

그리고 무섭다. “같이 살다가 헤어지면?”

친구가 그랬다. 동거하다 헤어졌다. 보증금 나눴다. 법적으로 복잡했다.

남자친구는 좋은 사람이다. 믿는다. 근데 미래는 모른다.

“생각해볼게.” 그렇게 답했다.

2주 됐다. 아직 답 못 했다.

혼자 방에 앉아서. 계산기 두드린다. 32만원 곱하기 12개월. 384만원.

큰돈이다. 여행 한 번 갈 수 있다. 저축하면 종잣돈 된다.

근데 이 9평이. 내 마지막 성이다.

창문 너머 서울

밤 11시. 불 끈다. 침대에 눕는다.

창문 너머로. 서울이 보인다. 불빛들. 건물들.

6년 전에 왔다. 캐리어 하나. 꿈 가득.

지금도 있다. 캐리어는 옷장 위. 꿈은 조금 줄었다.

현실적이 됐다. 연봉 7000 받고 싶다. 전세 살고 싶다. 여행 자주 가고 싶다.

큰 꿈은 아니다. 그냥 보통.

근데 여기선 쉽지 않다. 서울은 비싸다. 꿈도 비싸다.

월세 65만원. 매달 나간다. 집주인 통장으로.

내 통장은 줄어든다. 꿈도 줄어든다. 조금씩.

그래도 괜찮다. 아직 있다. 꿈이. 조금이라도.

내일 또 출근한다. Figma 켠다. 디자인한다. 월세 번다.

이게 30살. 디자이너. 서울. 2024년.

창밖에 비가 온다. 빗소리 듣는다. 잠든다.


월세는 매달 나가지만, 꿈은 아직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