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From

피그마

마포구 원룸, 월세 65만원에서 꿈꾸는 것들

마포구 원룸, 월세 65만원에서 꿈꾸는 것들

월세 빠진 통장 오늘 25일이다. 월세 나가는 날. 아침에 알림 떴다. "65만원 출금". 통장 잔액이 확 줄어든다. 세 자리에서 두 자리로. 5500만원. 내 연봉이다. 세금 떼면 실수령 400만원 정도. 월세 65만원, 관리비 8만원. 통신비 6만원, 교통비 10만원. 식비 40만원 잡아도 빠듯하다. 남는 돈? 270만원. 저축하면 100만원 빠진다. 데이트 비용, 옷, 화장품. 가끔 택시, 배달. 실제로 손에 쥐는 건 70만원 정도. 대기업 다니는 친구는 7천이다. "너 왜 거기 있어?" 대답 못 했다.9평짜리 우주 마포구 연남동. 9평 원룸이다. 방 하나, 화장실 하나. 부엌은 싱크대 하나가 전부다. 책상이 제일 큰 가구다. 27인치 모니터 두 개. 와콤 타블렛, 키보드, 마우스. 책상 위는 회사보다 넓다. 침대는 싱글이다. 남자친구 오면 좁다. 그래도 우리 공간이다. 옷장은 이케아 제품. 조립하는 데 3시간 걸렸다. 남자친구가 도와줬다. 둘이 싸우면서 완성했다. 화장실에 욕조는 없다. 샤워부스도 아니다. 그냥 바닥에 물 뿌린다. 배수구로 내려간다. 베란다는 없다. 창문은 하나. 빨래는 실내 건조대다. 제습기 없으면 곰팡이 핀다. 65만원이다. 이게 서울의 가격이다.부산에서 온 전화 엄마가 전화했다. "밥은 먹고 다니냐?" 먹는다고 했다. "집은 괜찮냐?" 괜찮다고 했다. "돈은 모으고 있냐?" 모은다고 했다. 다 거짓말은 아니다. 그냥 전부는 아닐 뿐. 부모님은 부산이다. 집은 25평이다. 아빠는 회사원, 엄마는 학원 강사. 평범한 중산층이다. 내가 서울 온다고 했을 때. 아빠가 반대했다. "부산에도 회사 많다." 엄마가 설득했다. "하고 싶은 거 하게 둬." 6년 됐다. 부산 갈 때마다 엄마가 말한다. "집이 좁다며. 보증금이라도 보탤까?" 괜찮다고 한다. 30살 됐는데. 아직 부모님 돈 받긴 싫다. 자존심은 아니다. 그냥 미안해서다. 전화 끊고 나면. 혼자 9평 방에 앉아 있다. 창문 너머로 서울이 보인다. 여기가 내가 선택한 곳이다.연봉 5500의 의미 신입 때 3500만원이었다. 2년 차에 4200만원. 4년 차에 4800만원. 지금 5500만원. 6년 동안 2000만원 올랐다. 연평균 330만원씩. 한 달에 27만원. 대기업 동기는 7000만원이다. 네이버 간 친구는 8000만원. 카카오 간 선배는 9000만원. 스타트업이 나쁜 건 아니다. 자율성은 더 있다. 성장도 빠르다. 포트폴리오는 화려하다. 근데 통장은 솔직하다. 친구들이랑 밥 먹을 때. 가격 보게 된다. "여기 비싼데 괜찮아?" 30살이 됐다. 결혼 생각도 한다. 남자친구도 5500 정도다. 둘이 합쳐도 1억 1000이다. 아파트는 꿈도 못 꾼다. 전세도 어렵다. 지금 월세가 최선이다. 리드 디자이너다. 수당은 없다. 호칭만 바뀌었다. 책임은 늘어났다. 이직을 생각한다. 포트폴리오 정리 중이다. 근데 시간이 없다. 야근하면 더 없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그래도 중요하다. 특히 서울에선. 꿈의 가격표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예쁜 걸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쓰는 제품. 내가 만든 UI로. 지금도 좋아한다. Figma 켤 때 설렌다. 컴포넌트 정리할 때 만족스럽다. 유저가 "이 앱 디자인 좋네요" 하면 기쁘다. 근데 월세는 안 깎아준다. 커피값도 안 내준다. 열정으로 배 안 찬다. 사이드 프로젝트 한다. 토요일 오후에. 카페 가서 노트북 펴고. 아이디어 스케치한다. 2시간 하면 집중 풀린다. 핸드폰 본다. 인스타 본다. Dribbble 본다. 다른 디자이너들 작품. 다들 멋지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근데 현실은 다르다. 회사에서 하는 건. 배너 수정. 버튼 색 바꾸기. "여백 좀 줄여주세요." 꿈이랑 현실 사이.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돈으로 메운다. 월세 65만원씩. 편의점 김밥 저녁 9시다. 편의점 간다. 김밥 하나, 2500원. 우유 하나, 2000원. 합계 4500원. 저녁 한 끼다. 주말엔 요리한다. 파스타 끓인다. 재료비 5000원이면 두 끼. 경제적이다. 친구들이랑 약속 있을 땐. 2만원 잡는다. 밥값 1만 5천원. 카페 5천원. 데이트는 주말에 한 번. 영화 보고 밥 먹으면 5만원. 한 달에 20만원. 남자친구도 안다. 우리 형편. "집에서 영화 볼까?" 고맙다. 가끔 외식한다. 월급날 다음 주. 통장이 제일 두둑할 때. 3만원짜리 파스타 먹는다. 맛있다. 이런 게 행복이다. 작은 사치. 지하철에서 보는 광고 출근길 지하철. 광고 본다. "월 300만원으로 여유로운 삶" 거짓말. "내 집 마련의 꿈" 웃긴다. "2030 재테크" 관심 있다. 근데 종잣돈이 없다. 점심시간에 유튜브 본다. "연봉 5000만원 재테크" 클릭한다. "저축 먼저 하세요" 안다. "고정비 줄이세요" 월세가 고정비다. 어떻게 줄여. "커피값 아끼세요" 하루 4500원. 한 달 13만원. 아껴봤자 월세 1/5. 현실적인 조언이 없다. 다들 이미 가진 사람들. 집 있는 사람들. 부모 찬스 쓴 사람들. 나한테 필요한 건. 월세 안 내는 방법. 아니면. 연봉 2배로 올리는 법. 둘 다 없다. 친구들과의 거리 대학 동기들이랑 모임. 한 달에 한 번. 홍대 어딘가. 한 친구는 네이버. 연봉 8000. 강남 오피스텔 전세. 부모님이 보증금 냈대. 한 친구는 삼성. 연봉 7500. 회사 기숙사 산다. 저축 많이 한대. 한 친구는 프리랜서. 버는 건 잘 모르겠다. 근데 여행 많이 간다. 인스타 보면 부럽다. 나는 스타트업. 연봉 5500. 월세 산다. 저축 조금. 밥 먹으면서 얘기한다. "요즘 어때?" "바빠, 야근 많아." 다들 비슷하다. 근데 다르다. 그들의 바쁨이랑. 내 바쁨은. 그들은 미래를 산다. 나는 현재를 산다. 질투는 아니다. 그냥 부럽다. 조금. 헤어질 때. "담달에 또 보자." 웃으면서 손 흔든다. 집 가는 지하철. 창문에 내 얼굴 비친다. 30살. 디자이너. 월세 65만원. 나쁘지 않다. 그냥 생각보다 힘들 뿐. 남자친구의 제안 남자친구가 말했다. "같이 살까?" 3년 됐다. 개발자다. 연봉 비슷하다. 5800 정도. 같이 살면. 월세를 반으로 나눈다. 32만 5천원씩. 한 달에 32만원 아낀다. 좋은 제안이다. 경제적이다. 현명하다. 근데 고민된다. 혼자 사는 게 좋다. 자유롭다. 9평이지만 내 공간. 내 규칙. 같이 살면 타협한다. 작은 것들. 샴푸, 휴지, 설거지. 그리고 무섭다. "같이 살다가 헤어지면?" 친구가 그랬다. 동거하다 헤어졌다. 보증금 나눴다. 법적으로 복잡했다. 남자친구는 좋은 사람이다. 믿는다. 근데 미래는 모른다. "생각해볼게." 그렇게 답했다. 2주 됐다. 아직 답 못 했다. 혼자 방에 앉아서. 계산기 두드린다. 32만원 곱하기 12개월. 384만원. 큰돈이다. 여행 한 번 갈 수 있다. 저축하면 종잣돈 된다. 근데 이 9평이. 내 마지막 성이다. 창문 너머 서울 밤 11시. 불 끈다. 침대에 눕는다. 창문 너머로. 서울이 보인다. 불빛들. 건물들. 6년 전에 왔다. 캐리어 하나. 꿈 가득. 지금도 있다. 캐리어는 옷장 위. 꿈은 조금 줄었다. 현실적이 됐다. 연봉 7000 받고 싶다. 전세 살고 싶다. 여행 자주 가고 싶다. 큰 꿈은 아니다. 그냥 보통. 근데 여기선 쉽지 않다. 서울은 비싸다. 꿈도 비싸다. 월세 65만원. 매달 나간다. 집주인 통장으로. 내 통장은 줄어든다. 꿈도 줄어든다. 조금씩. 그래도 괜찮다. 아직 있다. 꿈이. 조금이라도. 내일 또 출근한다. Figma 켠다. 디자인한다. 월세 번다. 이게 30살. 디자이너. 서울. 2024년. 창밖에 비가 온다. 빗소리 듣는다. 잠든다.월세는 매달 나가지만, 꿈은 아직 남아 있다.

개발자 남자친구랑 밥 먹으면서도 일 얘기를 하게 되는 이유

개발자 남자친구랑 밥 먹으면서도 일 얘기를 하게 되는 이유

저녁 7시, 홍대 파스타집민규가 포크를 돌리다가 말했다. "오늘 API 응답 시간이 3초 넘어가서 난리였어." 나는 파스타를 입에 넣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앱도 로딩 느리다고 리뷰 달렸어. 그거 때문에 오늘 회의했고." 둘 다 웃었다. 또 시작이다. 원래 안 그러려고 했다. 저녁 먹을 땐 일 얘기 안 하기로 했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다짐했다. "우리 연애할 때는 개발자, 디자이너 없어. 그냥 최지우, 김민규야." 근데 안 된다. 같은 언어, 다른 세계민규는 백엔드 개발자다. 나는 UI/UX 디자이너다. 같은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근데 보는 세상이 다르다. "이 버튼 4dp만 더 올리면 안 돼?" "4픽셀? 그거 CSS 한 줄인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 중요하다. 나한테는. "이거 구현하는 데 3일 걸려." "3일? 버튼 하나인데?" 버튼 하나가 아니다. 민규한테는. 우리는 서로의 일을 70% 정도 이해한다. 나머지 30%는 평생 모를 것 같다. 그 30% 때문에 싸우기도 한다. 그 70% 때문에 계속 얘기한다. 공감의 형태 오늘 민규가 먼저 물어봤다. "너희 팀장이 또 피드백 바꿨어?" 바꿨다. 세 번. "빨간색이 너무 강렬하대. 어제는 임팩트 있게 하래서 채도 올렸는데." 민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팀장도 그래. 어제 코드리뷰에서 OK 했는데 오늘 다시 보더니 로직 바꾸래." 이게 좋다. 설명 안 해도 된다. '팀장'이라는 단어만으로 통한다. '일정'이라는 말만 해도 서로 한숨 쉰다. '갑자기'라는 말 뒤에 무슨 일이 올지 둘 다 안다. "피곤하지?" "응. 너도?" 이게 위로다. 오해의 지점근데 가끔은 안 통한다. "이 인터랙션 좀 봐봐. 버튼 누르면 이렇게 확장되면서 카드가 올라오는 거야." 민규가 내 피그마 화면을 봤다. "이거... 구현 가능은 한데..." 그 말투 안다. '가능은 한데' 뒤에는 항상 '근데'가 온다. "근데 애니메이션 duration이랑 easing 커브 맞추는 거 시간 걸려. 그리고 성능도..." "그냥 부드럽게만 되면 돼. CSS transition 몇 줄 아니야?" 민규가 웃었다. 짜증 섞인 웃음. "너도 그렇게 말하네. '그냥' 디자인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그냥'을 모른다. 내가 4시간 고민한 8dp. 민규가 하루 걸린 '간단한' API 연동. 겉에서 보면 다 '그냥'이다. 밥 먹으면서 일 얘기 하는 이유 저녁을 다 먹었다. 민규가 카드를 내밀었다. 번갈아 내기로 했는데 이번은 민규 차례다. "다음엔 일 얘기 좀 그만하자." 나도 그렇게 말했다. 근데 우리 둘 다 안다. 또 할 거다. 왜냐면. 회사 동료들한테는 할 수 없는 얘기를 민규한테 한다. "우리 팀장 진짜 모르는 것 같아. 디자인을." 회사에서는 못 한다. 민규한테는 한다. 민규도 나한테만 한다. "시니어 개발자가 코드 못 짠다는 걸 어떻게 말해." 회사에서는 못 한다. 나한테는 한다. 그리고. 민규는 내 고민을 이해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는 민규 고민을 이해한다. 70%는 이해한다. 이게 크다. "이 컴포넌트 시스템 봐봐. 한 달 걸렸어." "오. 변수 관리 이렇게 했구나. 깔끔한데?" 민규는 컴포넌트가 뭔지 안다. 나는 변수가 뭔지 안다. 친구들한테 보여주면. "응 예쁘다." 끝이다. 민규는 다르다. "이거 반응형은 어떻게 처리했어?" 물어본다. 우리가 만드는 것들 집에 가는 길에 민규가 말했다. "너희 회사 앱 업데이트했더라. UI 바뀐 거 네가 한 거지?" 했다. 3주 걸렸다. "좋던데. 특히 온보딩 플로우." 그 말 한마디에 3주가 보상받는다. 민규는 내가 무슨 고민을 했을지 안다. 저 화면 뒤에 몇 개의 시안이 있었는지. 몇 번의 회의가 있었는지. "고생했어." 이 말이 다르게 들린다. 나도 민규 회사 서비스를 쓴다. 로딩이 빨라졌다. 오류가 없어졌다. "API 개선한 거지? 체감돼." 민규가 웃는다. 우리는 서로가 만든 것들을 쓴다. 그리고 안다. 저 화면 뒤에 누군가의 야근이 있다는 걸. 내일도 또 할 거다 내일 저녁에도 약속이 있다. 이태원 멕시칸 레스토랑. 분명히 또 일 얘기를 할 것이다. "오늘 디자인 시스템 발표했어." "어땠어?" "오늘 배포했는데 버그 떴어." "심각해?" 이런 대화를 할 것이다. 안 하려고 해도 된다. 근데 하게 된다. 왜냐면 우리 인생의 8시간이 거기 있으니까. 하루의 절반이 그 일을 하니까. 그 고민이 진짜 고민이니까. 그리고 민규는 이해하니까.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70%는 이해하니까. 나머지 30%는. "나는 잘 모르겠는데 너가 힘들어하는 건 알겠어." 이렇게 말해주니까. 그거면 된다. 같은 배, 다른 노 우리는 같은 배를 탄다. IT라는 배. 스타트업이라는 배. 근데 다른 노를 젓는다. 민규는 코드로. 나는 픽셀로. 가끔 박자가 안 맞는다. "이거 왜 이렇게 디자인했어?" "이거 왜 이렇게 구현했어?" 싸우기도 한다. "개발자들은 몰라. 1픽셀이 얼마나 중요한지." "디자이너들은 몰라. 성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근데 결국 같은 방향이다. 좋은 프로덕트. 사용자가 편한 서비스. 우리가 자랑스러운 결과물. 목적지는 같다. 그래서 밥 먹으면서도 얘기한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협업이 잘될까. "디자이너 관점에서는 이게 중요해." "개발자 입장에서는 이게 어려워." 서로 배운다. 민규는 내 덕분에 UI를 보는 눈이 생겼다. 나는 민규 덕분에 구현 가능성을 고민한다. 더 나은 사람들이 된다. 조금씩. 직장인 커플의 데이트 친구가 물어봤다. "남자친구랑 만나면 뭐 해?" 밥 먹는다. 영화 본다. 산책한다. 그리고 일 얘기한다. "그게 재밌어?" 재밌다는 아니고. 필요하다. 하루를 공유하는 거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 "나도 비슷한 거 겪었어." 연애의 형태는 다양하다. 누구는 일과 연애를 완전히 분리한다. 퇴근하면 직장인 탈출. 주말엔 회사 얘기 금지. 우리는 섞는다. 민규의 일은 내 관심사다. 내 일은 민규의 관심사다. "오늘 코드리뷰 어땠어?" "오늘 디자인 피드백 어땠어?" 이게 우리의 안부다. 같이 성장하는 법 작년에 민규가 이직을 고민했다. 연봉 천만원 올려준다는 회사가 있었다. "근데 SI야. 고민돼." 나는 SI가 뭔지 안다. 서비스 개발자한테 SI가 뭔지 안다. "네가 하고 싶은 개발 할 수 있어?" "글쎄. 레거시 유지보수가 많을 것 같아." "그럼 돈이 문제야, 커리어가 문제야?" 민규는 한참 생각했다. 결국 안 갔다. 내가 도와줬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결정을 같이 고민했다.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에이전시에서 인하우스로 갈지. 민규가 물어봤다. "네가 하고 싶은 디자인이 뭔데?"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 한 프로젝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럼 답 나온 거 아냐?" 그래서 스타트업에 왔다. 우리는 서로의 커리어 코치다. 전문가는 아니어도. 옆에서 보는 사람이다. "네 강점은 이거야." "너 이거 잘하잖아." 객관적으로 봐준다. 밤 11시, 각자의 방 영상통화 중이다. 각자의 집에서. 민규는 사이드 프로젝트 코딩 중. 나는 포트폴리오 업데이트 중. 말은 별로 안 한다. 그냥 켜놓는다. "나 컴포넌트 네이밍 고민되는데." "뭔데?" "버튼 사이즈를 sm, md, lg로 할지 아니면 숫자로 할지." 민규가 생각하다가 말한다. "시맨틱하게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나중에 사이즈 추가되면 숫자는 헷갈려." 맞는 말이다. "너 그 API 에러 해결했어?" "아직. 로그 찍어보는 중." 이게 우리의 밤이다. 같이 있지는 않아도. 같은 시간을 보낸다. 일하면서 연애하는 게 아니라. 연애하면서 일한다. 미묘하게 다르다. 이해받는다는 것 어제 대표님이 말했다. "이 디자인 감각적으로 좀 더 세련되게 해주세요." 감각적으로. 세련되게. 뭔지 모르겠다. 민규한테 털어놨다. "감각이 뭔데. 내가 감각 선택권자야?" 민규가 웃었다. "우리 대표도 그래. '직관적으로 만들어주세요' 그래. 직관이 뭔데." 둘이 한참 욕했다. "감각적인 디자인 = 대표 취향" "직관적인 기능 = 대표가 이해하는 거" 정리했다. 이게 위로다. 혼자였으면 되게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내가 못하는 건가?' '내 감각이 이상한 건가?' 근데 민규도 비슷한 얘기를 듣는다. 그럼 내 문제가 아니다. 그냥 스타트업이 그렇다. 혼자 싸우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하지 않는 것 일 얘기를 많이 한다. 근데 하지 않는 게 있다. 회사 기밀은 안 한다. "이번 분기 매출이..." 이런 얘기는 안 한다. 동료 험담도 최소화한다. "우리 팀 OO가..." 시작하면 민규가 끊는다. "그 사람 나도 모르는데 얘기해도 돼?" 맞는 말이다. 그리고 서로 조언 강요 안 한다. "이럴 땐 이렇게 해." 이런 거 안 한다. 그냥 듣는다. "힘들었겠다." "나도 그럴 것 같아." 해결책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 공감이 필요한 거니까. 가끔 민규가 물어본다. "조언 필요해? 아니면 그냥 들어주면 돼?" 이 질문이 좋다. 명확하다. 주말 오후, 카페 나는 사이드 프로젝트 와이어프레임 그린다. 민규는 알고리즘 문제 푼다. 같이 있지만 각자 논다. 가끔. "이거 좀 봐봐." "응." 서로의 화면을 본다. "오 괜찮은데?" "이 부분은 이렇게 하면 어때?" 다시 각자 한다. 이게 편하다. 누가 보면 심심한 연애다. 같이 있는데 대화도 별로 없다. 근데 우리는 안다. 이게 편하다는 걸. 서로의 집중을 존중한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한다. 같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처럼. 혼자 있어도 같이 있는 것처럼. 이게 우리 방식이다. 일 얘기 하는 커플 친구들이 말한다. "너희 데이트 때도 일 얘기 해? 지루하지 않아?" 지루하지 않다. 왜냐면 우리한테 일은. 인생의 큰 부분이니까. 하루 8시간. 출퇴근 2시간. 고민하는 시간까지 하면 12시간. 이걸 빼고 연애하면. 하루에 몇 시간 남는데. 그리고. 민규의 고민을 나만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내 고민을 민규만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이게 특별하다. "오늘 배포했어." 이 말이 얼마나 떨리는 일인지. "디자인 리뉴얼 끝났어." 이 말이 얼마나 안도되는 일인지. 서로 안다. 결국 우리가 만드는 것 우리는 각자 무언가를 만든다. 민규는 코드를 만든다. 나는 화면을 만든다. 근데 같이 만드는 것도 있다. 서로에 대한 이해. 서로의 일에 대한 존중. 같이 성장하는 관계. 민규는 나 때문에 UI를 더 신경 쓴다. "이 버튼 위치 디자이너가 고민했을 거야." 나는 민규 때문에 구현을 더 고려한다. "이 애니메이션 개발자가 힘들 수도 있겠다." 서로를 더 나은 실무자로 만든다. 그리고. 힘들 때 옆에 있다. "오늘 힘들었지?" "응." "고생했어." 이게 크다. 다음 주 화요일 민규 회사에서 앱을 런칭한다. 3개월 준비했다. 나는 그 과정을 다 봤다. 야근하던 날들. 버그 잡느라 주말 출근하던 날. 테스트 시나리오 짜느라 스트레스받던 날. 다 안다. 런칭하면 나는 제일 먼저 다운받을 것이다. 하나하나 써볼 것이다. 리뷰도 쓸 것이다. "잘 만들었어." 민규도 우리 서비스 업데이트 때마다 그랬다. 우리는 서로의 첫 유저다. 가장 관심 있는 유저다. 이게 일 얘기를 하는 이유다.밥 먹으면서 일 얘기. 우리의 방식이다.

요구사항이 계속 바뀌는데 일정은 그대로인 이상한 일정표

요구사항이 계속 바뀌는데 일정은 그대로인 이상한 일정표

월요일 아침의 일정표 일정표를 펼쳤다. 2주. 메인 화면 리뉴얼. 가능하다고 했다. 월요일 오전, 대표님이 슬랙에 메시지를 보냈다. "온보딩 플로우도 같이 갈까요?" 물음표가 붙어있지만 질문이 아니다. 일정은 그대로다. 2주. 화요일, 기획자가 왔다. "여기에 튜토리얼 추가하면 어떨까요?" 눈이 반짝인다. 좋은 아이디어인 건 맞다. 일정은? 그대로다. 2주. 수요일, 개발팀장이 말했다. "결제 플로우도 이번에 정리하죠." 어차피 만지는 거. 2주는 여전히 2주다.목요일 오후, 나는 지라 티켓을 세고 있었다. 12개에서 23개가 됐다. 스프린트는 하나다. 스코프 크리프라는 괴물 이게 스코프 크리프다. Scope Creep. 범위가 슬금슬금 기어간다. 처음엔 작았다. "메인 화면만 바꾸자." 깔끔하다. 할 만하다. 그런데 회의를 할 때마다 뭔가 붙는다. "여기 마이크로인터랙션 넣으면 좋겠어요." "이왕이면 다크모드도." "최디자님, 이건 금방이죠?" 금방인 건 없다. 디자인에 금방인 건 없다. 컴포넌트 하나 바꾸면 12개 화면이 영향받는다. 인터랙션 하나 추가하면 프로토타입 다시 만든다. 다크모드는 컬러 토큰 전체를 재정의하는 거다.기획자는 악의가 없다. 대표님도 마찬가지다. 개발팀장도. 다들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은 거다. 이해한다. 하지만 일정표는 그걸 이해하지 않는다. 금요일 아침, 나는 타임라인을 다시 그렸다. 리얼한 걸로. 메인 화면 리뉴얼: 3일 온보딩 플로우: 2일 튜토리얼 디자인: 1.5일 결제 플로우 정리: 2일 마이크로인터랙션: 1일 다크모드: 3일 12.5일. 2주는 10일이다. 나는 이 표를 보여주지 않았다. 어차피 일정은 안 늘어난다. 스타트업에서 일정 지키는 법 6년 하면서 배운 것들이 있다. 첫째, 버퍼를 숨긴다. 2주면 3주로 잡는다. 속으로. 말은 2주라고 한다. 그래야 실제로 2주 반에 끝낸다. 처음엔 정직하게 말했다. "이건 3주 걸립니다." 그러면 "2주 안에 안 될까요?"가 돌아온다. 결국 2주로 잡힌다. 지금은 다르다. "2주요." 하고 3주 일정으로 일한다. 마지막 3일은 숨겨둔 카드다. 둘째, 스코프를 문서화한다. 월요일에 노션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번 스프린트 스코프"라고.메인 화면 리뉴얼 (5개 화면) 기존 디자인 시스템 활용 다크모드 제외 애니메이션 최소화대표님이 "온보딩도?"라고 물었을 때 이 페이지를 공유했다. "네, 가능합니다. 대신 이 중에 뭘 빼드릴까요?" 침묵. 10초. "아, 그럼 다음 스프린트에." 문서의 힘이다. 말로 하면 흐릿하다. 글로 쓰면 명확해진다. 셋째, 단계를 나눈다. 전부 다 한 번에 하려고 하면 망한다. 쪼갠다. v1: 핵심 기능만 v1.5: 인터랙션 추가 v2: 다크모드 이렇게 말하면 거부감이 덜하다. "안 돼요"가 아니라 "나중에요"니까. 기획자가 "튜토리얼은요?"라고 물었다. "좋아요. v1.5에 넣죠. 지금은 v1 집중하고요." 됐다. 다음 스프린트로 밀렸다. 넷째, 개발자를 편으로 만든다. 수요일 오후, 개발자 준혁이랑 커피 마셨다. "형, 결제 플로우도 이번에 하자는데." "에이, 우리 일정도 빡빡한데." "그쵸?" 개발자가 "일정 빡빡해요"라고 하면 무게가 다르다. 디자이너가 말하면 "디자인은 빠르잖아요"라는 말을 듣는다. 개발자가 말하면? 다들 끄덕인다. 준혁이는 회의에서 말해줬다. "결제는 다음 스프린트가 나을 것 같은데요. 이번 건 QA만 2일 걸립니다." 감사합니다 준혁 형. 다섯째, 진짜 중요한 건 양보 안 한다. 목요일, 대표님이 말했다. "메인 컬러 좀 더 밝게 할까요?" "지금 테스트한 거랑 접근성 기준 통과한 건데, 바꾸면 다시 검증해야 해요. 일정 3일 더 필요합니다." 안 바뀌었다. 디자이너는 착하면 안 된다. 전부 다 "네" 하면 일정은 지옥이 되고 결과물은 망한다. 중요한 건 지킨다. 나머지는 협상한다. 금요일 오후의 일정표 금요일 오후, 일정표는 이렇게 정리됐다. 이번 스프린트 (2주):메인 화면 리뉴얼 (5개 화면) 기존 컴포넌트 활용 라이트모드만다음 스프린트 (2주):온보딩 플로우 신규 제작 튜토리얼 추가 마이크로인터랙션3차 스프린트:다크모드 결제 플로우 개선깔끔하다. 현실적이다. 할 수 있다. 대표님이 물었다. "이렇게 나누면 언제 다 끝나요?" "6주요. 한 번에 하면 8주 걸립니다." "왜요?" "일정 밀리고, 다시 하고, 버그 나고, 고치고. 그러면 8주예요." 대표님이 끄덕였다. "오케이, 단계별로 가죠." 승리. 이게 스타트업이다. 완벽한 일정표는 없다. 있는 건 협상 가능한 일정표다. 요구사항은 계속 바뀐다. 그건 못 막는다. 하지만 일정을 지킬 순 있다. 스코프를 관리하면 된다. 월요일 아침, 새 스프린트가 시작됐다. 일정표는 깔끔하다. 화요일에 뭐가 추가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은 디자인이나 하자. 피그마 켰다. 컴포넌트 정리부터.일정은 지키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다.

감각적으로 해주세요, 이 한 문장으로 시작된 전쟁

감각적으로 해주세요, 이 한 문장으로 시작된 전쟁

오전 10시 27분, 슬랙 알림 "최디자님, 어제 보내주신 랜딩페이지 시안 봤어요. 전체적으로 좋은데, 좀 더 감각적으로 해주실 수 있을까요?" 키보드 두드리던 손이 멈췄다. 감각적으로. 이 세 글자가 오늘도 왔다. 커피 한 모금 마시고 답장했다. "넵, 어떤 방향으로요?" 물어봐야 한다. 안 물어보면 3번 수정한다. "음... 그냥 좀 더 세련되고 감각적인 느낌이요. 아시잖아요 ㅎㅎ" 모른다. 진짜 모른다.감각이라는 블랙홀 6년 동안 받은 피드백을 정리해봤다. 취미는 아니고 생존 본능이다."감각적으로" 27번 "세련되게" 19번 "고급스럽게" 15번 "트렌디하게" 12번 "힙하게" 8번합계 81번. 이걸 언어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시도해봤다. "감각적으로"를 해석하는 5단계: 1단계: 일단 받아적는다. "네 알겠습니다." 2단계: 레퍼런스를 요청한다. "어떤 느낌이신가요?" 3단계: 구체적 질문을 던진다. "컬러 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4단계: 3개 방향을 제시한다. A, B, C 중 고르세요. 5단계: 선택받은 방향으로 간다. 그리고 다시 "감각적으로" 듣는다. 무한루프다. 개발자 승우가 옆에서 웃었다. "또야?" "응. 감각적으로래." "그거 우리한테는 '알아서 잘 해주세요'거든." 맞다. 디자이너한테는 "당신 감각 믿어요, 근데 제 마음에 안 들면 다시요"다.번역 작업의 시작 감각을 언어로 바꾸는 건 번역이다. 한국어를 디자인으로, 디자인을 시각으로, 시각을 감정으로. 그리고 그걸 다시 Figma 레이어로. 오늘 전략은 이랬다. 1차: 레퍼런스 수집 "혹시 레퍼런스 있으세요?" 10분 뒤 답장. "음 딱히 없는데, 그냥 요즘 트렌드 있잖아요." 트렌드. 좋아. Pinterest 켰다. "modern landing page 2024" 검색. 100개 봤다.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Sans-serif 볼드체 여백 많이 그라데이션 살짝 3D 오브젝트 포인트 다크모드 기반이걸 "감각적"이라고 부르는 구나. 2차: 구체화 시도 슬랙 다시 켰다. "감각적인 방향으로 3가지 제안드릴게요. A. 미니멀 + 타이포 강조 (애플 스타일) B. 그라데이션 + 글래스모피즘 (요즘 트렌드) C. 다크모드 + 네온 포인트 (테크 감성) 어떤 게 가까우세요?" 5분 뒤. "음 B랑 C 섞은 느낌?" 합격이다. 방향이 나왔다.전쟁의 본질 문제는 여기서 시작이다. "B랑 C 섞은 느낌"을 만들었다. 4시간 걸렸다. 다크 배경에 그라데이션 카드. 네온 블루 포인트. 글래스모피즘 버튼. 자신 있었다. 이번엔 한 번에 간다. 슬랙에 링크 올렸다. "확인 부탁드려요." 30분 뒤. "오 좋아요! 근데 좀 더 감각적으로 다듬어주실 수 있을까요?" 키보드를 덮었다. 잠깐 화장실 갔다. 거울 봤다. "진정해." 혼잣말. 돌아와서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아쉬우신가요?" "음 전체적인 느낌이요. 뭔가 조금 더?" 조금 더. 이게 답이다. "조금 더"는 디자이너가 채워야 할 빈칸이다. 감각의 번역법 6년 하면서 배운 거. 감각은 숫자가 아니다. 감각은:8px을 12px로 바꾸는 게 아니다 #000000을 #1A1A1A로 바꾸는 게 아니다 폰트 사이즈를 2pt 키우는 게 아니다감각은 공기다. 요소와 요소 사이, 색과 색 사이, 글자와 여백 사이. 그 사이를 채우는 호흡. 구체적으로 하면 이렇다. 공간감 조정섹션 간 여백: 120px → 160px 숨 쉴 공간 만들기컬러 온도차가운 블루: #0066FF → 따뜻한 블루: #0052FF 1도 차이가 느낌을 바꾼다타이포 리듬제목: 48px/1.2 본문: 16px/1.6 행간이 리듬이다디테일 레이어버튼에 미세한 그림자: 0 2px 8px rgba(0,0,0,0.08) 안 보여도 느껴진다3시간 더 걸렸다. 수치상으론 미세하다. 8px 차이, 색상 코드 한 자리 차이. 근데 화면은 완전히 달라졌다. 오후 7시 13분, 승인 "오 이거다! 딱 이 느낌이에요!" 허탈하게 웃었다. 뭐가 달라졌는지 설명할 수 있을까. 못 한다. 나도 정확히 뭘 바꿨는지 설명 못 한다. 그냥 손이 움직였다. 6년 동안 쌓인 감각이 손을 움직인 거다. 이게 디자이너다. 말로 안 되는 걸 시각으로 만드는 사람. 추상을 구체로 바꾸는 번역가. "감각적으로"라는 주문을 받으면, 100개의 레퍼런스를 보고, 10개의 시안을 만들고, 3번을 수정하고, 1개를 완성한다. 그 과정에서:Pinterest 100장 Dribbble 50개 Figma 레이어 237개 커피 4잔 한숨 12번이게 쌓여서 "감각"이 된다. 밤 10시, 퇴근길 지하철에서 인스타그램 봤다. 광고가 뜬다. 어떤 쇼핑몰. 랜딩페이지가 별로다. 여백이 없다. 컬러가 시끄럽다. 타이포가 답답하다. 스크린샷 찍었다. 내일 팀원들한테 보여줄 거다. "이렇게 하지 말자"고. 직업병이다. 세상 모든 화면이 레이어로 보인다. 모든 디자인이 분석 대상이다. "감각적으로"라는 말이 어려운 이유. 감각은 학습이 아니라 축적이기 때문이다. 100개를 보고 나서야 101번째가 보인다. 책으로 배울 수 없다. 강의로 얻을 수 없다. 그냥 만들어야 한다. 매일. 수백 번.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아, 이 정도면 감각적이다"가 손끝에 온다.내일도 누군가 말할 거다. "감각적으로 해주세요." 그럼 또 번역하겠지. 81번째 전쟁.

Pinterest에서 2시간을 보내다가 침대에 누운 후 '내일 할 일' 생각하며 잠드는 밤

Pinterest에서 2시간을 보내다가 침대에 누운 후 '내일 할 일' 생각하며 잠드는 밤

영감인지 회피인지 퇴근하고 집에 왔다. 7시 반. 샤워하고 배달음식 시켰다. 8시. 이제 좀 쉬어야 하는데 자동으로 Pinterest를 켰다. "오늘만 30분만 볼게." 거짓말이다. 매일 이런다. 검색창에 'dashboard UI dark mode'를 쳤다. 핀 하나를 저장하면 알고리즘이 비슷한 걸 20개 더 보여준다. 저장, 스크롤, 저장, 스크롤. 손가락이 기계처럼 움직인다. 어느새 'minimalist portfolio design'을 검색하고 있다. 회사 프로젝트랑 관계없다. 그냥 예쁘다. 그냥 보고 싶다.시계를 봤다. 10시 반. 2시간이 사라졌다. 보드에는 핀이 347개 저장되어 있다. '프로젝트 레퍼런스' 폴더다. 이 중에 실제로 써먹은 건 5개도 안 된다. 나머지는 '언젠가'를 위한 수집이다.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래도 저장한다. 수집이라는 안전감 디자이너한테 레퍼런스는 마약이다. 회사에서 기획서를 받으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레퍼런스 찾기다. 백지에서 시작하는 건 무섭다. '비슷한 거' 있으면 일단 마음이 편하다. Pinterest, Dribbble, Behance, Mobbin. 탭을 10개 열어놓고 스크롤한다. "이 톤 괜찮네", "이 레이아웃 참고할까", "이 인터랙션 좋은데". 저장하고, 정리하고, 폴더를 만든다. 이 과정이 실제 디자인보다 더 오래 걸린다. 왜냐면 이건 '일하는 척'이기 때문이다. 레퍼런스를 모으는 동안은 실패하지 않는다. 아직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으니까. 평가받을 것도 없다. 안전하다.문제는 이게 중독이 된다는 거다. 저녁 9시, 내일 회의 자료 만들어야 하는데 레퍼런스를 또 찾는다. "하나만 더." 11시가 된다. 주말, 사이드 프로젝트 시작하려고 했는데 3시간 동안 핀만 저장한다. 정작 Figma는 안 켰다. 수집은 쉽다. 생산은 어렵다. 그래서 수집만 반복한다. 완벽한 레퍼런스는 없다 Pinterest를 2시간 보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세상의 모든 디자이너가 나보다 잘하는 것 같다. 핀마다 완벽하다. 여백 완벽, 컬러 완벽, 타이포 완벽. 내가 만드는 건 왜 이렇게 별로일까. 그런데 알고 있다. 저 핀들도 실제로는 다르다는 걸.클라이언트 피드백 30번 받아서 망가진 버전은 안 올라온다 개발 제약 때문에 타협한 결과는 안 보인다 실제 데이터 들어가면 깨지는 레이아웃은 숨겨져 있다Pinterest에 올라오는 건 '결과물'이 아니라 '포장'이다. 가장 예쁜 화면 하나만 캡처해서 올린다. 실제 서비스는 저것보다 못하다. 근데 새벽에 보면 이걸 잊는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하지." 자괴감만 쌓인다.레퍼런스는 도구다. 목적이 아니다. 근데 나는 종종 목적을 잊는다. '좋은 디자인'을 보는 게 목표가 된다. 정작 '내 디자인'은 안 한다. 이게 회피다. 진짜 일을 피하는 거다. 저장만 하고 안 쓰는 이유 폴더를 열어봤다. '대시보드 레퍼런스' 83개. 작년에 모았다. 프로젝트는 끝났다. 이 중에 5개 정도만 실제로 참고했다. '온보딩 플로우' 62개. 3개월 전 수집. 온보딩은 기획이 바뀌어서 엎어졌다. '컬러 팔레트' 124개. 이건 취미로 모은다. 쓸 일 없다. 저장할 때는 다 필요할 것 같다. "이거 나중에 써먹어야지." 근데 나중은 오지 않는다. 왜냐면 레퍼런스는 '상황'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멋진 대시보드 디자인을 찾았다. 근데 우리 서비스는 데이터가 20배 더 많다. 그 레이아웃은 안 맞는다. 감각적인 컬러 조합을 발견했다. 근데 우리는 기업용 B2B 서비스다. 저 톤은 너무 캐주얼하다. 레퍼런스는 '영감'이지 '답'이 아니다. 근데 수집할 때는 답처럼 느껴진다. 착각이다. 진짜 필요한 건 10개면 된다. 나머지 337개는 안심용이다. 내일 할 일이 머릿속을 채운다 침대에 누웠다. 11시. 내일 회의가 있다. 온보딩 플로우 개선안 발표. 준비는 70% 했다. 근데 마음이 불안하다. "스플래시 화면 애니메이션 디테일 좀 더 만들까." "튜토리얼 단계 4개가 맞나, 3개로 줄일까." "버튼 컬러 테스트 한 번 더 해볼까." 눈을 감았다. 근데 머릿속에서 Figma 화면이 떠오른다. 아트보드가 3개 있고, 컴포넌트가 정리 안 된 채로 있다. 폰을 다시 켰다. Pinterest를 열었다. 'onboarding UI'를 검색했다. 12시가 됐다. 이게 문제다. 영감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불안을 회피하는 거다. '더 좋은 레퍼런스'를 찾으면 내일 발표가 잘될 것 같은 착각. 안 그렇다. 지금 필요한 건 잠이다. 레퍼런스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규칙을 만들었다. 지키려고 노력 중이다. 1. 타이머 20분 레퍼런스 찾을 때 타이머를 켠다. 20분 후 알람. 그때 멈춘다. 더 찾고 싶어도 참는다. 완벽한 레퍼런스는 없다. 20분이면 충분하다. 2시간은 과하다. 2. 저장 개수 제한 10개 프로젝트당 레퍼런스 10개만 저장한다. 11번째부터는 기존 걸 지우고 저장한다. 진짜 좋은 것만 남긴다. 100개 모아봤자 안 본다. 3. 저장 후 바로 정리 핀 저장하면 바로 메모를 단다. "이 그리드 레이아웃 참고", "이 컬러 톤 테스트". 왜 저장했는지 안 쓰면 나중에 기억 안 난다. 쓸모없는 수집이 된다. 4. 주말에는 Pinterest 안 본다 주말은 영감이 아니라 휴식. 레퍼런스 보는 건 일이다. 일은 주중에만. 이거 지키기 제일 어렵다. 습관이 무섭다. 5. 수집보다 생산 레퍼런스 10분 봤으면, 디자인 30분은 한다. 비율을 정했다. 수집이 더 재밌다. 근데 생산해야 성장한다. 이걸 자꾸 상기시킨다. 영감은 도구다 Pinterest가 나쁜 건 아니다. Dribbble도, Behance도. 문제는 내가 거기에 중독된다는 거다. 수집이 목적이 되는 거다. 레퍼런스는 시작점이어야 한다. 도착점이 아니라.좋은 디자인을 보고 내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실제로 만들어본다이 과정이 완성되어야 의미가 있다. 1단계에서 멈추면 소비일 뿐이다. 347개의 핀을 저장했다. 근데 내 포트폴리오에는 3개가 추가됐다. 이 비율이 문제다. 내일부터는 덜 모으고, 더 만들어야겠다.저장은 쉽고, 만드는 건 어렵다. 그래서 오늘도 핀을 모았다.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선언 월요일 오전 회의에서 말했다. "디자인 시스템 만들겠습니다." 준비했다. 노션 문서 3장. 레퍼런스 10개. 설득 논리까지. 대표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최디자님. 근데 언제까지요?" "한 달 정도면..." "그럼 일단 다음 스프린트 끝나고 시작하시죠. 지금은 신규 기능이 급해서요." 다음 스프린트. 2주 뒤. 그때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기획자는 관심 없었다. "그거 만들면 제가 뭐가 편해지는데요?" 개발자는 피곤해했다. "지금도 컴포넌트 있잖아요. 그걸로 충분한데." 마케터는 몰랐다. "디자인 시스템이 뭐예요?" 혼자였다. 왜 필요한지 설명하기 디자인 시스템. 말이 어렵다. 개발자한테는 "컴포넌트 라이브러리요. 재사용 가능한 UI 모음." 기획자한테는 "스타일 가이드요. 일관성 있는 UX." 대표님한테는 "작업 속도가 2배 빨라집니다." 다 틀린 건 아니다. 근데 와닿지 않는다. 진짜 이유를 말했어야 했다. "지금 버튼이 10개 버전으로 있어요. 컬러도 5가지. 패딩도 다 달라요. 새 기능 만들 때마다 '이 버튼 맞나?' 물어봐야 하고, 개발자분도 '어느 버튼이요?' 다시 물어보잖아요. 이거 시간 낭비예요." 구체적으로 말했어야 했다. "지난주에 랜딩페이지 만드는데 3일 걸렸죠? 디자인 시스템 있으면 1일이면 돼요. 개발도 2일 짧아져요. 그럼 다음 스프린트에 기능 하나 더 넣을 수 있어요." 숫자로 말했어야 했다. 근데 그때는 몰랐다. 설득이 이렇게 어려운 줄.혼자 시작한 시스템 아무도 관심 없으면 혼자 한다. 퇴근하고 집에서 시작했다. 피그마 새 파일. 이름은 "Design System v1.0". 기본부터 정리했다. 컬러 토큰 8개. Primary, Secondary, Neutral, Success, Warning, Error. 각각 5단계씩. 타이포그래피 6개. H1부터 Body Small까지. 스페이싱 규칙. 4px 기반. 4, 8, 12, 16, 24, 32, 48, 64. 버튼 컴포넌트. Primary, Secondary, Tertiary, Ghost. 각각 Large, Medium, Small. 인풋 컴포넌트. Default, Focused, Error, Disabled. 2주 걸렸다. 매일 밤 2시간씩. 완성하고 슬랙에 올렸다. "디자인 시스템 초안 완성했습니다. 피드백 주세요." 좋아요 3개. 댓글 0개. 다음 날 개발 리드가 DM 보냈다. "수고하셨어요. 근데 지금 당장 적용은 어려울 것 같아요. 레거시 코드가 너무 많아서요." 기획자는 말했다. "멋지네요! 근데 이거 쓰려면 제가 뭘 해야 하나요?" 대표님은 본 척도 안 했다. 허무했다. 조직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 밤에 남자친구랑 통화했다. 걔도 개발자다. "왜 아무도 관심 없는 것 같냐." "글쎄. 회사가 바빠서 그런 거 아니야?" "바쁜 건 알아. 근데 이게 장기적으로 시간 아껴주는 건데." "장기적으로는 다들 알지. 근데 지금 당장 급한 게 있으면..." 맞는 말이다. 근데 화난다. 생각해봤다. 왜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지. 첫째, 급하지 않아 보인다. 디자인 시스템 없어도 일은 돌아간다. 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불편한 거랑 급한 건 다르다. 둘째, 내 일이 아니다. 기획자는 기능 기획이 급하다. 개발자는 버그 수정이 급하다. 디자인 시스템은 디자이너 일처럼 보인다. 셋째, 리소스가 없다. 스타트업은 항상 바쁘다. '좋은데 나중에'가 기본값이다. 넷째, 가치가 안 보인다. 숫자로 증명 안 하면 믿지 않는다. '작업 속도 2배'도 체감 안 되면 의미 없다.다섯째, 변화가 무섭다. 익숙한 게 편하다. 새로운 시스템 배우는 게 귀찮다. 이해는 간다. 근데 답답하다. 작게 시작하기 디자인 커뮤니티에 물었다. "디자인 시스템 어떻게 설득하셨어요?" 답변 10개 읽었다. 공통점이 있었다. "한 번에 다 만들려고 하지 마세요." "작은 거부터 적용해서 효과를 보여주세요." "설득보다 증명이요." 방향을 바꿨다. 전체 시스템 대신 버튼부터 시작했다. 10개 버전을 4개로 정리. Primary, Secondary, Tertiary, Ghost. 기획자한테 물었다. "다음 기능에서 이 버튼만 써보면 안 될까요? 디자인 시간 30% 줄일 수 있어요." "어차피 버튼은 써야 하니까요. 좋아요." 개발자한테도 물었다. "버튼 컴포넌트만 리팩토링해보면 어떨까요? 이거 재사용하면 코드 줄어들 텐데." "흠... 버튼은 자주 쓰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요." 스프린트에 넣었다. 기획 1일, 디자인 2일, 개발 3일. 2주 뒤에 배포했다. 결과가 나왔다. 버튼 디자인 시간이 진짜 줄었다. 복붙하고 텍스트만 바꾸면 끝. 개발도 props만 바꾸면 끝. 회의에서 말했다. "버튼 시스템 덕분에 이번 스프린트 2일 일찍 끝났어요. 다음엔 인풋도 정리해볼까요?" 대표님이 관심 보였다. "2일이나요? 좋네요. 계속 해보세요." 작은 성공이었다. 동료 만들기 혼자는 안 된다. 동료가 필요하다. 제일 먼저 설득한 건 신입 개발자였다. 경력 2년차. 레거시 코드에 짜증 내던 애. "디자인 시스템 같이 만들어볼래요? 컴포넌트 구조 잡는 거 도와주시면..." "오, 좋아요. 저도 코드 정리하고 싶었어요." 같이 작업했다. 내가 디자인하면 걔가 구현했다. 핸드오프 시간이 반으로 줄었다. 다음은 기획자였다. 제일 어려웠다. 기획자는 디자인 시스템의 혜택을 바로 못 느낀다. 다르게 접근했다. "기획서 템플릿 만들어드릴까요? 이 컴포넌트 쓰시면 화면 구성이 일관성 있어서 사용자 테스트 때 편해요." "오, 템플릿 있으면 편하긴 하겠네요." 피그마 템플릿 만들어줬다. 드래그 앤 드롭으로 화면 구성 가능하게. 걔도 쓰기 시작했다. 마케터는 쉬웠다. "랜딩페이지 만들 때 이 템플릿 쓰시면 20분이면 돼요." "진짜요? 지난번엔 2시간 걸렸는데." "네. 컴포넌트 조합만 하시면 돼요." 한 명씩 늘었다. 3개월 뒤엔 팀 절반이 쓰고 있었다. 측정 가능하게 만들기 대표님을 설득하려면 숫자가 필요했다. 스프레드시트 만들었다. "디자인 시스템 효과 측정". 비교했다. 시스템 도입 전/후. 화면 디자인 시간:전: 평균 4시간 후: 평균 2.5시간 절감: 37.5%개발 시간:전: 평균 1.5일 후: 평균 1일 절감: 33%디자인-개발 커뮤니케이션:전: 회당 평균 30분 후: 회당 평균 15분 절감: 50%버그:UI 불일치 버그: 월 평균 8건 → 2건 절감: 75%스프린트 회고 때 공유했다. "디자인 시스템 덕분에 이번 분기 개발 속도가 20% 빨라졌어요." 숫자는 강했다. 대표님이 물었다. "이거 계속 확대하면 더 빨라지나요?" "네. 지금은 버튼이랑 인풋만 있는데, 카드랑 모달까지 만들면 50%는 가능할 것 같아요." "좋네요. 다음 분기 OKR에 넣읍시다." 드디어 공식 프로젝트가 됐다. 문서화의 중요성 시스템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게 있다. 쓰게 만드는 것. 아무리 좋아도 어떻게 쓰는지 모르면 안 쓴다. 노션에 문서 만들었다. "디자인 시스템 가이드". 각 컴포넌트마다:언제 쓰는지 (Use case) 어떻게 쓰는지 (How to use) 쓰면 안 되는 경우 (Don't) 예시 (Examples)버튼 하나만 해도 3페이지였다. 개발자용 문서도 따로 만들었다. Props, States, Variants. 코드 예시까지. Storybook도 올렸다. 모든 컴포넌트를 인터랙티브하게 볼 수 있게. 온보딩 세션도 했다. 30분짜리. 신입 올 때마다. "이게 우리 디자인 시스템이에요. 여기 들어가서 복붙하시면 돼요. 모르면 저한테 물어보세요." 문서가 많아지니까 쓰는 사람도 늘었다. 실패와 수정 모든 게 완벽하진 않았다. 첫 버전 버튼은 너무 딱딱했다. 개발자가 말했다. "이거 브랜드 느낌이 안 나는데요." 맞는 말이었다. 너무 시스템에만 집중하다가 브랜드를 잊었다. 다시 만들었다. 모서리를 둥글게. 컬러를 좀 더 따뜻하게. 호버 애니메이션 추가. 두 번째 버전은 너무 복잡했다. Variant가 30개. 개발자가 포기했다. "이거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다시 정리했다. Variant 10개로 줄이고, 나머지는 조합으로 해결. 세 번째 버전은 퍼포먼스 문제가 있었다. 컴포넌트가 너무 무거워서 로딩이 느렸다. 최적화했다. Auto Layout 줄이고, 필요 없는 레이어 정리. 계속 고쳤다. 피드백 받고, 테스트하고, 수정하고.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계속 진화하는 시스템만 있다. 6개월 후 지금은 다르다. 디자인 시스템이 당연해졌다. 신규 기능 기획할 때 기획자가 먼저 물어본다. "이거 어느 컴포넌트 쓸까요?" 개발자는 내가 말하기 전에 Storybook 확인한다. 대표님은 투자자한테 자랑한다. "우리 개발 속도가 빠른 이유요? 디자인 시스템이 잘 돼 있어서요." 성과도 나왔다. 분기별 출시 기능: 12개 → 18개. 50% 증가. 디자인 일관성 점수 (사용자 테스트): 6.2점 → 8.7점. 디자인-개발 핸드오프 시간: 주당 10시간 → 4시간. UI 버그: 월 15건 → 3건. 숫자로 증명됐다. 팀도 커졌다. 디자이너 1명 더 뽑았다. 그 친구 온보딩 첫날, 디자인 시스템 가이드 보여줬다. "와, 이거 다 있어요? 대박." 뿌듯했다. 배운 것들 디자인 시스템은 디자인 작업이 아니다. 조직 설득 작업이다. 혼자는 안 된다. 동료가 필요하다. 특히 개발자. 한 번에 다 하려고 하지 마라. 작게 시작해서 성공을 보여줘라. 말보다 숫자다. '좋아요'보다 '30% 빨라졌어요'. 완벽하게 만들고 공개하지 마라. 70% 만들고 피드백 받아라. 문서는 필수다. 문서 없으면 아무도 안 쓴다. 설득은 한 번이 아니다. 계속해야 한다. 매주, 매달, 매 스프린트. 인내가 필요하다. 3개월은 기본이다. 가장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 지금도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레거시 화면은 아직 옛날 스타일이다. 리뉴얼 계획은 있는데 우선순위가 낮다. 모바일 대응이 부족하다. 반응형 컴포넌트 만드는 중. 다크모드는 아직 못 만들었다. 내년 목표. 새 기능 만들 때마다 '이거 시스템에 추가해야 하나?' 고민된다. 시스템 유지보수도 일이다. 업데이트, 버전 관리, 문서 수정. 근데 괜찮다. 처음보다 훨씬 낫다. 그때는 버튼도 통일 안 됐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게 중요하다. 마무리 월요일 아침 출근했다. 슬랙에 메시지가 와 있다. 신입 기획자다. "디자인 시스템 너무 좋아요! 기획서 만드는데 30분밖에 안 걸렸어요. 감사합니다!" 웃었다. 6개월 전 나를 생각했다. '아무도 관심 없는데...' 하던. 지금은 다르다. 관심 없던 게 아니다. 가치를 못 봤던 것뿐. 보여주면 된다. 작게, 구체적으로, 꾸준히. 그럼 언젠가는 당연해진다. 디자인 시스템처럼.혼자 시작했지만, 결국 함께 만들었다. 그게 전부다.

오후 3시, 예정 없던 긴급 미팅이 잡혔을 때

오후 3시, 예정 없던 긴급 미팅이 잡혔을 때

오전 10시 30분 출근했다. 슬랙 확인. 지라 티켓 14개. 한숨. 오늘은 집중할 수 있는 날이다. 미팅이 하나도 없다. 캘린더를 세 번 확인했다. 비어있다. 완벽하다. 어제부터 시작한 신규 기능 UI. 버튼 배치, 컬러 톤, 타이포그래피 위계. 머릿속에 다 그려져 있다. 오늘 안에 끝낼 수 있다. 피그마를 켰다. 파일을 열었다. 손이 가벼웠다. 컴포넌트 정리부터. 버튼 사이즈 8px씩 증가. 16, 24, 32, 40. 리듬이 있어야 한다. 패딩은 좌우 16, 상하 12. 아니다. 상하도 16으로 맞추자. 정사각형에 가까운 게 안정적이다. 프라이머리 컬러. #4A90E2. 너무 흔하다. 채도를 10 올렸다. #4A9AFF. 좀 낫다. 명도는 그대로. 접근성 확인. WCAG AA 통과. 좋다.타이포그래피. 헤드라인은 Pretendard Bold 24px. 본문은 Regular 16px. 행간은 1.6. 자간은 -0.02em. 숨쉬는 느낌. 30분이 지났다. 몰입이다. 이때가 제일 좋다. 오후 2시 47분 슬랙 알림. "@최디자 3시에 긴급 미팅 잡았습니다. 대표님이 봐야 한다고 하셔서요." 손이 멈췄다. 캘린더를 봤다. 13분 전에 추가된 이벤트. "신규 기능 방향 논의 (긴급)". 참석자 7명. 한숨이 나왔다. 지금 정리하던 컴포넌트. 레이아웃 그리드. 타이포그래피 스케일. 머릿속에 있던 맥락. 다 날아갈 예정이다. 저장했다. 파일명 끝에 "_진행중_0247" 붙였다. 나중에 돌아왔을 때 어디까지 했는지 알아야 한다. 물 한 잔 마셨다. 화장실 다녀왔다. 10분 남았다. 노션 페이지 열었다. 오늘 했던 작업 정리. 버튼 컴포넌트 4가지 사이즈 정리 프라이머리 컬러 조정 (#4A9AFF) 타이포그래피 스케일 1차 완료 다음: 카드 컴포넌트, 인풋 필드메모 안 해두면 까먹는다. 미팅 끝나고 돌아왔을 때 "내가 뭐 하고 있었지?" 이게 제일 답답하다.오후 3시 2분 회의실 입장했다. 7명 중 4명 도착. 노트북 열었다. 피그마 켜뒀다. 뭘 보여달라고 할지 모른다. 대표님이 들어왔다. 기획자 민수가 화면 공유 시작했다. "이번에 새로 들어간 기능인데요. 대표님이 어제 경쟁사 앱 보시고 우리도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화면에 뜬 건 경쟁사 앱 캡처본. 3개. 다 다른 스타일. "이 느낌으로 가면 좋겠어요. 근데 우리만의 색깔도 있어야 하고." 우리만의 색깔. 이 단어 나오면 회의 30분 추가다. 대표님이 말했다. "디자인적으로 어때요? 최디자님." 준비 안 된 질문이다. 3분 전에 처음 본 화면이다. "일단... 세 개가 다 다른 방향인데, 저희가 가져갈 건 어떤 쪽일까요?" "다 섞어서요. A는 레이아웃이 좋고, B는 컬러가 괜찮고, C는 애니메이션이 마음에 들어서." 다 섞기. 불가능하다. 안 어울린다. 입 밖으로 나온 말. "넵. 한번 작업해보겠습니다." 오후 3시 51분 회의 끝났다. 49분 걸렸다. 결론: 세 가지 스타일 섞은 목업 3개 내일까지. 내일까지. 오늘 하던 작업은 언제 끝내지. 자리 돌아왔다. 노션 메모 봤다. "다음: 카드 컴포넌트, 인풋 필드" 기억이 안 난다. 50분 전 나는 뭘 생각하고 있었나. 피그마 파일 열었다. "_진행중_0247". 버튼이 놓여있다. 4가지 사이즈. 그렇지. 이거 하고 있었다. 근데 왜 하고 있었지. 다음 스텝이 뭐였지. 노션 다시 봤다. "카드 컴포넌트". 아. 버튼 끝나고 카드 할 예정이었다. 버튼은 끝난 건가. 아니다. 호버 상태 아직이다. 디스에이블 상태도. 마우스 올렸다. 손이 안 움직인다.오후 4시 20분 다시 시작했다. 버튼 호버 상태. 배경 어둡게. 10% 더 어둡게. 아니다. 5%. 자연스러워야 한다. 트랜지션 0.2초. 부드럽게. 10분 걸렸다. 오전 같았으면 3분이다. 머리가 회의실에 있다. 경쟁사 A, B, C. 섞어야 한다는 것. 내일까지. 집중이 안 된다. 슬랙 알림. 개발자 준호. "디자님 저번에 주신 버튼 패딩이요. 16px 맞죠?" "네. 상하좌우 다 16이요." "근데 이전 버튼은 좌우 12였는데, 바뀐 건가요?" "아... 오늘 수정한 거예요. 컴포넌트 통일하려고요." "아 그럼 이미 개발 들어간 부분도 다 수정해야 하나요?" 멈췄다. 이미 개발 들어갔다. 모르고 수정했다. "...제가 확인하고 다시 드릴게요." 창 닫았다. 한숨. 오전에 수정한 버튼. 개발 확인 안 하고 했다. 이제 되돌려야 하나. 아니면 개발자한테 수정 부탁해야 하나. 머리 아프다. 오후 5시 15분 컨텍스트 스위칭. 대학 때 배운 용어다. 컴퓨터가 여러 프로세스 동시에 처리할 때. 프로세스 전환하면서 생기는 오버헤드. 사람도 똑같다. 오전에 하던 작업. 머릿속 맥락. 다음에 뭐 할지, 왜 이렇게 만들고 있는지, 어떤 문제를 풀고 있는지. 다 있었다. 미팅 하나로 날아갔다. 돌아와서 복구하는 시간. 30분. 1시간. 그 시간도 생산성이다. 미팅 49분 + 복구 30분 = 79분. 1시간 19분 손해. 오늘 미팅 하나. 어제는 세 개였다. 평균 두 개씩이면 하루 2시간 반. 일주일이면 12시간 반. 한 달이면 50시간. 50시간이면 프로젝트 하나 끝낸다. 계산하니까 더 우울하다. 오후 6시 30분 오늘 한 일 정리. 완료:버튼 컴포넌트 4가지 사이즈 프라이머리 컬러 조정 타이포그래피 스케일 1차미완료:카드 컴포넌트 인풋 필드 호버/디스에이블 상태들추가된 일:경쟁사 벤치마킹 목업 3종 (내일까지) 개발 들어간 버튼 패딩 이슈 해결오전에 생각했던 "오늘 안에 끝낼 수 있다." 틀렸다. 50% 달성. 그나마도 급한 일 생겨서 내일 아침부터 다른 거 해야 한다. 남자친구한테 톡 왔다. "오늘 저녁 약속 7시 맞지?" 잊고 있었다. 완전히. "미안 오늘 야근해야 할 것 같아. 내일은 어때?" "또? 이번주만 벌써 두 번젠데." 할 말이 없다. 오후 7시 45분 경쟁사 앱 3개 열어놨다. 캡처 떴다. 노션에 정리 중. A 스타일: 미니멀, 여백 많음, 폰트 크고 굵음 B 스타일: 컬러풀, 그래디언트, 둥근 모서리 C 스타일: 애니메이션 많음, 인터랙션 풍부, 재미 요소 이걸 섞는다. 미니멀한데 컬러풀하고. 여백 많은데 애니메이션 풍부하고. 모순이다. 하지만 해야 한다. 내일까지. 새 피그마 파일. "긴급_경쟁사벤치_1204". 아트보드 3개. 시안 A: 미니멀 베이스 + 컬러 포인트 시안 B: 컬러풀 베이스 + 여백 확보 시안 C: 절충안 손이 움직인다. 오전만큼 빠르진 않다. 그래도 움직인다. 이게 디자이너다. 갑자기 바뀌는 우선순위. 예상 못한 요구사항. 컨텍스트 잃고 복구하고. 반복. 오후 9시 20분 시안 1개 완성. 2개 남았다. 배고프다. 편의점 갔다. 삼각김밥 2개, 바나나우유. 돌아오는 길에 개발팀 석준이랑 마주쳤다. 야근 중. "디자님도 야근이네요." "응. 내일까지 급한 거 있어서." "저도요. 배포 일정이 당겨져서." 웃었다. 쓴웃음. 우리 둘 다 오전엔 없던 일 하고 있다. 오후 11시 10분 시안 3개 완성. 노션에 업로드. 코멘트 달았다. "시안 A: 미니멀 중심, 컬러는 포인트로만 활용 시안 B: 컬러 적극 활용, 여백으로 밸런스 시안 C: 두 방향의 절충, 가장 무난함 개인 의견: C가 실현 가능성 높아 보입니다." 개인 의견 안 쓰면 "디자이너 생각은?" 이라고 물어본다. 미리 쓴다. 슬랙에 공유. "@대표님 @민수 내일 아침 확인 부탁드립니다." 파일 닫았다. 피그마 끄지 않았다. 내일 아침 수정 요청 올 거다. 오전 1시 30분 집 도착. 씻었다. 침대 누웠다. 핸드폰 봤다. 남자친구 톡. "고생했어. 내일은 일찍 끝나면 좋겠다." 미안하다. 말은 안 했다. 눈 감았다. 머릿속에 버튼이 보인다. 16px 패딩. #4A9AFF. 호버 상태. 경쟁사 시안 A, B, C. 내일 아침 슬랙. 수정 요청. 미팅 또 잡힐 것. 오전 작업 또 멈출 것. 이게 일상이다. 컨텍스트 스위칭. 복구. 반복. 적응한 건지 체념한 건지 모르겠다.오후 3시 미팅. 결국 10시간 일한다. 오전 2시간은 사라졌다. 내일도 똑같겠지.

개발자: '이거 구현 어려운데요' vs 디자이너: '근데 이게 꼭 필요한데...'

개발자: '이거 구현 어려운데요' vs 디자이너: '근데 이게 꼭 필요한데...'

오후 2시, 핸드오프 미팅 회의실에 들어갔다. 개발자 민준씨가 이미 앉아있다. "디자인 공유드립니다." 피그마 화면을 띄웠다. 30초 만에 나왔다. 그 말. "이거 구현 어려운데요." 아직 컴포넌트 설명도 안 했는데. 숨을 참았다. "어떤 부분이요?" "이 인터랙션이요. 스크롤하면서 헤더가 반투명해지면서 블러 들어가고, 동시에 높이도 줄어드는 거. 퍼포먼스 이슈 있어요." 3일 걸렸다. 이 인터랙션 하나에. 레퍼런스 10개 찾고, 프로토타입 5번 만들었다. 대표님 피드백도 3번 반영했다. "근데 이게 꼭 필요한데..." 내 목소리가 작아진다. 매번 그렇다.필요하다는 말의 무게 "왜 필요한데요?" 민준씨가 묻는다. 공격적이지 않다. 진짜 궁금한 거다. 이럴 때 당황한다. "사용자 경험이..." "구체적으로요?" 막힌다. '감각적이니까', '애플도 이렇게 하니까'는 이유가 안 된다. 개발자들한테는. "스크롤할 때 컨텍스트를 유지하면서도 콘텐츠 영역을 확보하려고요. 헤더가 줄어들면 사용자가 어디 있는지 알면서도 더 많은 정보를 볼 수 있잖아요." "그럼 그냥 숨기면 안 돼요? 더 간단한데." 아니지. 그건 아니야. "완전히 숨기면 네비게이션 잃어버려요. 다시 위로 가려고 할 때." "위로 스크롤하면 다시 나타나게 하면 되는데." "그것도 구현 어렵잖아요." 민준씨가 웃는다. "그것도 어렵긴 한데, 블러보단 낫죠."타협의 기술 "블러 빼면 되나요?" "투명도 애니메이션만 남기면 훨씬 가볍죠." 피그마로 돌아갔다. 블러를 뺐다. 30초 만에 끝났다. 3일 걸린 디테일이. "이 정도면?" "이건 할 만해요." 기분이 묘하다. 다 무너진 것 같으면서도, 뭔가 배운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디자이너님." "네." "이 그라데이션은요. 8개 스탑이 꼭 필요해요? 3개면 안 돼요?" 화면을 봤다. 미묘한 그라데이션이다. 레이어 블렌드 모드도 썼다. Overlay에 Multiply 겹쳤다. "육안으로 구분 안 되는데." 민준씨 말이 맞다. "차이 나는데요." "디자이너님 눈에만요." 할 말이 없다. 맞는 말이니까. "3개로 줄일게요." "색상 코드만 주시면 제가 리니어 그라데이션으로 처리할게요." 또 배운다. 리니어 그라데이션이 퍼포먼스에 좋다는 걸. 피그마에서는 몰랐던 거다.꼭 필요한가 회의가 끝났다. 원래 디자인의 60%쯤 남았다. 블러 없어지고, 그라데이션 단순해지고, 애니메이션 타이밍도 조정했다. 내 방으로 돌아왔다. 피그마를 켰다. '핸드오프_최종.fig'를 '핸드오프_최종_최종.fig'로 저장했다. 원본 파일을 열었다. 블러 있는 버전. 예쁘다. 확실히 예쁘다. 근데 민준씨 말대로, 사용자가 알까. 블러가 있고 없고를. 그라데이션이 8스탑이고 3스탑이고를. 모를 거다. 아마. 그럼 이건 뭐지. 내가 3일 동안 한 건. 자기만족? 아니다. 그건 아니야. 디테일이 쌓여야 전체가 좋아지는 거니까. 근데 구현 안 되면 의미 없는 거니까. 다음 날 아침 슬랙이 왔다. 민준씨: "어제 헤더 구현 완료했어요. 스테이징 서버 확인해보세요." 링크를 눌렀다. 개발 서버가 떴다. 스크롤을 내렸다. 헤더가 줄어든다. 투명해진다. 블러는 없다. 그라데이션도 단순하다. 근데.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생각보다 훨씬 좋다. 움직임이 부드럽다. 퍼포먼스 때문에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피그마에서 볼 때는 몰랐던 거다. 실제 디바이스에서, 실제 콘텐츠에서, 실제로 스크롤하면서 보니까. 민준씨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좋은데요." "그죠? ㅎㅎ 블러 없어도 괜찮죠?" 괜찮다. 솔직히. "근데요." "네." "스크롤 속도 빠를 때 애니메이션이 좀 끊겨요." "아 그거요. 쓰로틀 걸어서 그래요. 성능 때문에." "디바운스는요?" "디바운스 쓰면 반응이 늦어져요." 또 배운다. 쓰로틀과 디바운스의 차이. "그럼 easing 커브를 조정하면 어떨까요? ease-out 말고 custom cubic-bezier로." "오. 그거 괜찮을 것 같은데. 값 알려주세요." 피그마로 갔다. 모션 섹션을 열었다. cubic-bezier(0.4, 0.0, 0.2, 1) "이거요." "오케이. 적용해볼게요." 3주 후, 배포 기능이 라이브됐다. 사용자 피드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헤더 애니메이션 부드러워요." "스크롤 경험 좋아졌네요." 블러 얘기는 없다. 그라데이션 스탑 개수도. 당연하다. 애초에 모르니까. 근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상하게. 민준씨가 slack에 남겼다. "디자이너님, 이번 협업 좋았어요. 다음에도 잘 부탁드려요." "저도요. 많이 배웠어요." 진심이다. 블러 없어도 된다는 걸. 8스탑이 3스탑 돼도 된다는 걸. 완벽한 디자인보다 실제로 작동하는 디자인이 낫다는 걸. 근데. 어제 밤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덕트 리스트 페이지. 카드에 hover하면 이미지가 확대되면서 블러가 들어간다. 손이 멈췄다. 민준씨 목소리가 들린다. "이거 구현 어려운데요." 블러를 뺐다. 그냥 scale만 넣었다. 마우스를 올려봤다. 심심하다. 다시 블러를 넣었다. 값을 줄였다. 8px에서 4px로. duration도 줄였다. 400ms에서 250ms로. 테스트했다. 나쁘지 않다. 이 정도면 민준씨도 할 만하다고 할 거다. 아마. 저장했다. '리스트_v1_개발고려.fig' 파일명이 웃긴다. '개발고려'. 예전엔 없던 접미사다. 근데 이제는 자연스럽다. 결국 디자인과 개발 사이. 완벽과 현실 사이. 이상과 타협 사이. 어디선가 만난다. 매번 다른 지점에서. "이거 구현 어려운데요." "근데 이게 꼭 필요한데..." 이 대화는 계속된다. 앞으로도. 근데 이제는 안다. '꼭 필요한 것'의 정의가 계속 바뀐다는 걸. 타협이 포기가 아니라는 걸. 함께 만드는 게 혼자 만드는 것보다 낫다는 걸. 민준씨가 또 메시지를 보냈다. "디자이너님, 다음 주 새 기능 핸드오프 미팅 잡을까요?" "네. 근데 이번엔 제가 먼저 여쭤볼게요." "뭐요?" "구현 가능한지요." "오. 좋은데요. 그럼 초안 공유해주세요. 미리 볼게요." 피그마 링크를 보냈다. 댓글 권한도 줬다. 1시간 뒤, 댓글이 달렸다. "이 부분 구현 어려울 것 같은데,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 대안 제시였다. 비판이 아니라. 클릭했다. 민준씨가 직접 수정한 버전이다. 나쁘지 않다.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좋은데요. 이걸로 갈게요." "ㅎㅎ 그럼 이번엔 쉽겠네요." 회의실이 아니라 피그마에서 만났다. 싸우기 전에 협력했다. 이게 맞다. 이게. 6개월 전과 지금 6개월 전에는 몰랐다. 개발자가 '어렵다'고 하면 내 디자인을 무시하는 줄 알았다.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고집부리는 걸로 보일까 봐 걱정했다. 핸드오프 미팅이 두려웠다. 내 디자인이 깎여나가는 시간이니까. 지금은 안다. '어렵다'는 '불가능하다'가 아니다. '같이 다른 방법 찾자'는 뜻이다. '필요하다'고 말해도 된다. 근거만 있으면. 핸드오프는 협상이 아니다. 협업이다. 민준씨도 변했다. 요즘은 먼저 물어본다. "이거 왜 이렇게 디자인하셨어요?" 궁금해서 묻는 거다. 트집 잡으려는 게 아니라. 나도 묻는다. "이거 구현하려면 뭐가 필요해요?" 알고 싶어서다. 이해하려고. 어제 점심 민준씨랑 같이 밥 먹었다. "요즘 디자인 공유하실 때 구현 난이도 표시해주시잖아요." "네. 도움 돼요?" "많이요. 우선순위 정하기 쉬워요." 빨강, 노랑, 초록으로 표시한다. 빨강: 구현 어려움, 대안 논의 필요 노랑: 구현 가능하나 시간 필요 초록: 쉬움 "근데요." "네?" "가끔 빨강인데 꼭 필요한 거 있잖아요." "그죠." "그거요. 말씀해주세요. 왜 필요한지만 설명해주시면, 방법을 찾아볼게요." 민준씨가 웃는다. "힘들어도요?" "힘든 건 괜찮아요. 의미 있으면." 의미. 그 단어가 좋다. "저도요. 쓸데없는 디테일은 이제 안 넣어요." "쓸데없는 거 없던데요?" "있었어요. 많이." 둘이 웃었다. 지금 이 순간 피그마를 켰다. 새 프로젝트. 빈 캔버스. 마우스가 멈췄다. 예전엔 이랬다. '일단 최고로 예쁘게. 나중에 조정하면 되지.' 지금은 다르다. '실제로 만들어질 디자인. 처음부터 현실적으로.' 근데 타협이 아니다. 더 나은 디자인이다. 구현될 수 있는 디자인. 사용자가 실제로 경험할 디자인. 개발자와 함께 만들어갈 디자인. 컴포넌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엔 블러를 넣지 않았다. 처음부터. 대신 색상 대비를 높였다. 타이포그래피에 집중했다. 슬랙이 울렸다. 민준씨: "다음 주 핸드오프 기대되네요." 나도 기대된다. "이거 구현 어려운데요." 그 말이 이제는 반갑다. 함께 풀어갈 문제니까. "근데 이게 꼭 필요한데..." 이 말도 이제는 자신 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있으니까.타협은 포기가 아니다. 함께 더 나은 답을 찾는 과정이다. 오늘도 핸드오프 미팅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