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계신 부모님께 일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

부산에 계신 부모님께 일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

부산에 계신 부모님께 일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

전화가 왔다

어제 저녁 부모님한테 전화 왔다.

“요즘 일은 잘하고 있어?”

“네, 잘하고 있어요.”

“근데 정확히 무슨 일 하는 거야? 친척들이 물어보는데 엄마가 잘 모르겠더라.”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UI/UX 디자이너. 6년차. 월급 받는다. 그런데 설명을 못 하겠다.

“음… 앱 화면 디자인하는 거예요.”

“아, 그림 그리는 거?”

“비슷한데 좀 달라요.”

“그럼 뭐가 달라?”

대답하지 못했다.

보여줄 게 없다

명절 때 집에 갔었다.

친척 동생이 물었다. “누나 회사에서 뭐 만들어?”

핸드폰 꺼내서 우리 앱 보여줬다.

“이거.”

“이게 뭔데?”

“이 화면들이랑 버튼들 다 내가 디자인한 거야.”

“아… 그냥 앱이네?”

말문이 막혔다.

건축가 사촌오빠는 건물 사진 보여주면 된다. “저기 내가 설계했어.”

요리하는 고모는 음식 사진 올리면 된다. “오늘 만든 케이크.”

나는? 화면 캡처?

피그마 링크 보여줘봤자 모른다. 컴포넌트 시스템? 디자인 토큰? 반응형 레이아웃?

그냥 “예쁜 거 만드는구나” 로 끝난다.

시간이 보이지 않는다

3주 걸린 작업이 있다.

사용자 플로우 분석. 15번의 수정. 개발자랑 10번 미팅. 접근성 체크. 인터랙션 디테일.

결과물: 버튼 위치 5픽셀 이동.

아빠한테 설명했다.

“이번 달에 이거 작업했어요.”

“겨우 이거? 3주나 걸려?”

할 말이 없었다.

보이는 건 버튼 하나다. 보이지 않는 건 120시간의 고민이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요즘은 컴퓨터로 하니까 편하겠다.”

편하다고?

손으로 그리던 시대가 더 쉬웠을 수도 있다. 최소한 그림은 보였으니까.

지금은 레이어 300개, 컴포넌트 50개, 프로토타입 링크 20개.

화면으로는 똑같아 보인다.

돈이 설명되지 않는다

연봉 5500만원.

부산 기준으로 적지 않다. 서울 원룸에 월세 65만원 내지만.

아빠가 물었다. “그 돈 받으려면 뭘 해야 돼?”

“디자인이요.”

“디자인이 뭔데?”

“화면 만드는 거요.”

“화면 하나에 얼마 받아?”

대답 못 했다.

화면 하나? 단가로 계산하는 게 아니다.

사용자 경험. 비즈니스 목표. 기술적 제약. 브랜드 아이덴티티.

이걸 어떻게 설명해?

엄마는 이렇게 정리했다. “그러니까 그림쟁이구나.”

틀렸는데 맞다.

성취가 번역되지 않는다

지난달에 디자인 시스템 구축했다.

3개월 걸렸다. 컴포넌트 라이브러리, 토큰 정의, 개발자 핸드오프 프로세스.

회사에서 칭찬받았다. CTO가 “생산성 30% 올랐다”고 했다.

엄마한테 말했다.

“이번에 큰 프로젝트 끝냈어요. 칭찬받았어요.”

“잘했네. 그래서 월급 올라?”

“아뇨.”

“보너스는?”

“그것도 아니고…”

“그럼 뭐가 좋아진 거야?”

설명할 수 없었다.

개발 속도 향상. 디자인 일관성. 유지보수 편의성.

이게 내 성취다. 근데 엄마는 모른다.

가시적인 게 없다. 상장도 없다. 작품집도 없다.

그냥 “수고했어” 한마디.

야근이 이해되지 않는다

어젯밤 10시까지 일했다.

개발 일정 밀려서. QA에서 UI 버그 나와서.

밤 11시에 엄마한테 전화했다.

“이제 퇴근했어요.”

“왜 이렇게 늦어? 아파.”

“일이 좀 밀렸어요.”

“무슨 일이 그렇게 밀려? 컴퓨터로 하는 건데.”

컴퓨터로 한다고 빠른 게 아니다.

기획 변경 3번. 디자인 수정 8번. 개발 제약사항 협의 5번.

실제 디자인 작업 시간: 2시간.

나머지: 커뮤니케이션.

이걸 어떻게 말해?

“힘들면 그만둬. 건강이 우선이지.”

그만둘 수도 없다. 이 일이 좋다. 근데 설명은 못 하겠다.

고민이 공유되지 않는다

요즘 고민이 있다.

커리어 방향성. 계속 실무만 할 건가, 매니저로 갈 건가.

대기업 동기는 7천 받는다. 나는 5500.

포트폴리오 업데이트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계속 미룬다.

번아웃 올 것 같다.

엄마한테 말했다.

“요즘 고민이 좀 있어요.”

“무슨 고민?”

“일 얘기인데…”

“회사 그만둬?”

“아니요, 그게 아니라…”

설명하다가 포기했다.

디자이너의 고민. 실무자의 딜레마. 크리에이티브 번아웃.

이게 엄마한테는 “그냥 직장 스트레스” 로 들린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근데 전부는 아니다.

자부심이 전달되지 않는다

나는 이 일이 좋다.

사용자가 내 디자인 쓸 때. 인터랙션이 자연스러울 때. 개발자가 “이거 구현하기 좋네요” 할 때.

그게 좋다.

DAU 10만명. 내 화면을 매일 10만명이 본다.

서비스 리뷰에 “UI 예쁘다” 댓글 달리면 캡처한다.

이게 내 자부심이다.

엄마한테 보여줬다.

“이거 봐요. 사람들이 좋아해요.”

“그래? 잘했네.”

그리고 끝.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건축가는 건물 앞에서 사진 찍는다. “내가 만들었어.”

나는? 앱스토어 리뷰 캡처?

실체가 없다. 만질 수 없다.

거리가 멀어진다

통화할 때마다 느낀다.

우리는 다른 세계에 산다.

엄마는 부산 아파트에서 김치 담근다. 시장 간다. 친구들 만난다.

나는 서울 원룸에서 피그마 켠다. 슬랙 확인한다. 개발자랑 회의한다.

교집합이 없다.

“오늘 뭐 했어?”

“디자인 시스템 컴포넌트 리팩토링했어요.”

”…그래.”

대화가 끊긴다.

억지로 이어간다.

“엄마는 오늘 뭐 했어요?”

“미용실 갔다 왔다. 친구 만났고.”

“아.”

또 끊긴다.

명절 때 친척들이 물어본다.

“요즘 무슨 일 해?”

엄마가 대신 대답한다. “컴퓨터로 뭐 하는데, 잘 모르겠어.”

나도 덧붙일 말이 없다.

죄책감이 생긴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선생님이었으면. 의사였으면. 공무원이었으면.

설명하기 쉬웠을 텐데.

“학생들 가르쳐요.” “환자 치료해요.” “민원 처리해요.”

간단하다. 명확하다.

UI/UX 디자이너?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합니다.”

”…?”

부모님이 이해 못 하는 게 당연하다. 나도 6년 전엔 몰랐다.

근데 왜 죄책감이 들까.

부모님께 자랑하고 싶다. 내 일을. 내 성취를.

근데 방법을 모르겠다.

화면 캡처 보여드리는 게 다다.

그래도 통화한다

어제도 전화했다.

“잘 지내요?”

“응, 너는?”

“저도 잘 지내요.”

“일은?”

“그냥 해요.”

“힘들어?”

“괜찮아요.”

거짓말이다. 요즘 힘들다.

기획 또 바뀌었다. 디자인 엎었다. 야근 3일째다.

근데 말 안 한다.

어차피 설명 못 한다. 이해 못 하신다.

“그래, 건강 챙겨.”

“네. 엄마도.”

끊는다.

매번 이렇다.

표면적인 대화. 깊이 없는 안부.

서로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른다.

엄마는 내 일을 모른다. 나는 엄마의 하루를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멀어진다.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계속 시도한다.

이번 설에는 포트폴리오 출력해 갈까.

아니면 디자인 프로세스 PPT 만들까.

유튜브에 UX 디자인 설명 영상 있다. 같이 볼까.

매번 실패한다.

“나중에 봐.” “바빠.” “괜찮아.”

포기하고 싶다. 근데 포기하고 싶지 않다.

부모님이 내 일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우리 딸 멋진 일 하네.”

한 번만 들어봤으면.

근데 방법을 모르겠다.

디자인은 무형이다. 과정은 보이지 않는다. 성취는 번역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설명이 서툴다.


내일도 부모님께 전화할 것이다. 여전히 설명하지 못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