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라 티켓을 열었을 때 처음부터 느껴지는 중력

지라 티켓을 열었을 때 처음부터 느껴지는 중력

지라 티켓을 열었을 때 처음부터 느껴지는 중력 아침 9시 40분. 노트북을 켰다. 슬랙 알림 27개. 일단 무시. 피그마 먼저 켜야지... 했는데 손이 지라로 간다. 이게 루틴이다. 매일 아침의 의식. 지라를 열면 무언가 내려앉는 기분이 든다. 중력 같은 거.티켓 숫자가 곧 무게 오늘 내 이름이 붙은 티켓은 14개. In Progress 5개, To Do 7개, Review 2개. 숫자만 봐도 어깨가 무겁다. 티켓 하나하나가 돌멩이 같다. 배낭에 담긴 돌. 하나씩 꺼내야 집에 갈 수 있다. 기획자 민준이가 어제 저녁에 티켓 3개를 더 만들었다. Priority: High. Due date: 이번 주 금요일. 금요일이 3일 남았는데 High가 3개. 이미 High가 5개였는데. High의 인플레이션.지라 없을 때가 더 나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땐 슬랙으로 요청 받고, 노션에 리스트 만들고. 지금? 티켓이 날 찾아온다. Assignee: 최디자. 체계가 주는 압박 지라는 투명하다. 너무 투명해서 문제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다 보인다. 얼마나 안 하고 있는지도 다 보인다. 월요일에 만든 티켓이 아직 In Progress에 있으면 대표님이 스탠드업 미팅에서 물어본다. "디자 씨, 이거 진행 상황이...?" 그럼 나는 말한다. "아, 네. 거의 다 됐어요. 오늘 올릴게요." 거짓말이다. 50%도 안 했다. 근데 티켓 상태는 정직하다. Updated: 3 days ago.개발자 서진이는 티켓을 빠르게 처리한다. 하루에 5개씩 Done으로 옮긴다. 나는 하루에 2개 하면 잘한 날이다. 디자인은 시간이 걸린다고 변명하고 싶다. But 티켓은 물어보지 않는다. Story Point: 3. Due date: 2024-01-25. 그게 전부다. 우선순위의 혼란 High가 8개면 뭐가 먼저인가. 전부 High면 전부 긴급이면 뭐가 긴급인가. 나는 기획자들에게 물었다. "이 중에 진짜 먼저 해야 하는 거 뭐예요?" 민준: "음... 다 중요한데..." PM 수현: "일단 대시보드 개편이 제일 급해요." 대표님: "결제 플로우 먼저 보고 싶은데." 세 개 다 High Priority다. 결국 내가 정해야 한다. 그래서 지라를 닫았다. 우선순위를 정하려면 지라를 보면 안 된다. 지라를 보면 티켓만 보인다. 티켓 너머의 맥락은 안 보인다. 나는 노션을 켰다. 내 개인 페이지에 정리했다.이번 주 목표: 결제 플로우 완성 내일까지: 대시보드 와이어프레임 다음 주: 마이페이지 개편그리고 지라 티켓에 코멘트를 달았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어려울 것 같아요. 다음 주 화요일 가능할까요?" 민준이 답했다. "네, 괜찮아요!" 아니 그럼 왜 Due date를 금요일로 잡았나. 완료의 쾌감, 미완의 죄책감 티켓을 Done으로 옮길 때 기분이 좋다. 드래그해서 Done 컬럼에 떨어뜨리면 뭔가 사라지는 기분. 돌멩이 하나 꺼낸 기분. 근데 그 기쁨은 2초다. To Do 컬럼에 새 티켓이 2개 생겼다. 자동 생성 봇이 만든 반복 작업 티켓. "Weekly Design System Update" 이 티켓은 매주 생긴다. 나는 매주 Skip한다. 누가 디자인 시스템 업데이트를 궁금해하나. 개발자들은 내가 만들어둔 컴포넌트도 안 쓴다. Done 컬럼에 쌓인 티켓을 볼 때는 뿌듯하다. 이번 스프린트에 12개 완료. 지난주보다 2개 많다. 근데 바로 다음 스프린트 티켓이 보인다. 15개. 끝이 없다. 시스템이 사람을 만들 때 지라를 쓰기 전에는 일이 더 자유로웠다. 뭘 할지 내가 정했다. 물론 무질서했다. 놓치는 것도 많았다. 지금은? 티켓이 날 정한다. Assignee로 지정되면 해야 한다. Due date가 지나면 빨갛게 변한다. 체계는 도움이 된다. 맞다. 안 까먹는다. 명확하다. But 체계 때문에 내가 사라진다. 예전엔 아침에 출근해서 생각했다. "오늘은 이 페이지 디자인을 예쁘게 만들어보자." 지금은 생각한다. "오늘은 High Priority 3개를 처리하자." 디자인이 티켓이 됐다. 예쁘게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라 티켓을 닫는 게 목표가 됐다. 개발자 서진이가 말했다. "지라 보면 일한 것 같은데 실제론 별로 안 한 느낌 들지 않아요?" 맞다. 티켓은 완료했는데 성취감은 없다. Done은 늘었는데 작품은 없다. 중력을 견디는 방법 나는 지라를 하루에 세 번만 본다. 아침, 점심, 퇴근 전. 그 외 시간엔 피그마만 켠다. 티켓을 보지 않고 디자인을 본다. 물론 슬랙에서 티켓 링크가 날아온다. "@디자 이 티켓 확인 부탁드려요." 나는 이모지로 답한다. 👍 나중에 본다. 오후 3시부터 6시까지는 딥 워크 시간이다. 슬랙 알림 꺼둔다. 지라 탭 닫는다. 미팅 잡지 말라고 캘린더에 써뒀다. 이 시간에는 티켓이 아니라 결과물을 만든다. Figma 파일을 연다. 색을 고른다. 레이아웃을 잡는다. 이때가 진짜 일하는 시간이다. 6시에 지라를 다시 연다. 완성한 걸 티켓에 업로드한다. 코멘트를 단다. "초안 완성했습니다. 피드백 부탁드려요." 그럼 티켓이 Review로 간다. 내 손을 떠난다. 가벼워진다. 체계성이 도움이 되려면 지라가 나쁜 건 아니다. 체계가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체계에 먹히는 거다. 티켓이 일이 되는 거다. 체계는 도구여야 한다. 내가 일을 정리하는 도구. 일이 나를 정리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나는 이제 이렇게 한다. 월요일 아침, 지라를 연다. 이번 주 티켓을 본다. 그리고 내 노션에 옮긴다. 노션에서 내 언어로 정리한다.결제 플로우 개선: 사용자가 덜 헷갈리게 대시보드 재배치: 정보 위계 명확하게 마이페이지: 개인화 느낌 강화티켓 번호는 안 쓴다. Due date도 안 쓴다. 내가 할 일을 내 언어로. 그리고 일한다. 완성되면 지라에 올린다. 지라는 기록이다. 과정이 아니라. 나는 피그마에서 일한다. 지라에서 일하지 않는다. 중력은 있다, 눌리지 않으면 된다 지라를 열 때마다 중력이 느껴진다. 여전히. 티켓 숫자가 무겁다. 여전히. But 이제는 안다. 중력에 눌려 있을 필요는 없다는 걸. 티켓은 요청이다. 명령이 아니라. Due date는 목표다. 마감이 아니라. Priority는 제안이다. 절대값이 아니라. 나는 디자이너다. 티켓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라는 내가 만든 걸 기록하는 곳이다. 내가 지라를 채우는 거다. 지라가 나를 채우는 게 아니라. 오늘도 티켓 3개를 Done으로 옮겼다. 결제 플로우 개선안 완성. 사용자가 덜 헷갈리는 걸 만들었다. 티켓은 완료됐고 작품도 나왔다.체계는 내가 쓰는 거다. 체계가 날 쓰는 게 아니라.

컴포넌트로 만들어둘게요, 를 반복하는 6년차의 미래

컴포넌트로 만들어둘게요, 를 반복하는 6년차의 미래

컴포넌트로 만들어둘게요 "이거 컴포넌트로 만들어둘게요." 입에 붙었다. 회의 때마다 나오는 말. 버튼 하나 디자인해도, 카드 레이아웃 잡아도, 입력 폼 만들어도. 컴포넌트. 6년 차가 되니까 모든 게 컴포넌트로 보인다. 신입 때는 몰랐다. 예쁘게만 만들면 되는 줄 알았다. 페이지마다 새로 그렸다. 버튼 색깔이 조금씩 달라도 신경 안 썼다. #3B82F6이랑 #3B83F6이 뭐가 다르냐고. 지금은 안다. 다르다. 엄청 다르다. 컴포넌트 없이 프로젝트 진행하면 어떻게 되는지. 3개월 뒤에 수정 요청 오면 어떻게 되는지. 30개 페이지에 흩어진 버튼을 하나하나 고치면 어떻게 되는지. 지옥이다. 그래서 만든다. 컴포넌트를.처음엔 재미있었다 시스템을 만드는 게 재미있었다. 디자인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 3년 차 때였다. 팀장이 말했다. "최디자님, 이번에 디자인 시스템 제대로 만들어봅시다." 드디어. 버튼부터 시작했다. Primary, Secondary, Tertiary, Ghost. State는 Default, Hover, Active, Disabled. Size는 Small, Medium, Large. Icon 들어가는 버전, 안 들어가는 버전. 경우의 수를 다 만들었다. 48개 variant. 아름다웠다. Input field도 만들었다. Label, Placeholder, Helper text, Error message. 전부 프로퍼티로 조절 가능하게. 카드 컴포넌트도. 이미지 있는 버전, 없는 버전. CTA 버튼 1개, 2개. 태그 최대 3개까지. 완벽했다. 문서도 썼다. 사용 가이드. 언제 어떤 버튼을 쓰는지. 컬러 토큰 정리. Spacing 규칙. Typography scale. Notion에 20페이지. 뿌듯했다. "이제 모두가 이걸 쓰면 돼. 일관성도 생기고 작업도 빨라질 거야." 순진했다.그리고 현실이 왔다 기획자가 물었다. "이 버튼이요, 조금만 더 크게 할 수 없을까요? 사용자가 더 잘 보게." "Medium과 Large 사이 크기요?" "네, 딱 그 중간이요." 심호흡. "시스템에 정의된 사이즈를 쓰는 게..." "아, 그럼 이 페이지만 예외로 할게요." 예외. 이 단어가 시작이었다. 마케팅팀이 요청했다. "이벤트 페이지인데요, 좀 특별하게 만들고 싶어요. 시스템 컴포넌트 말고 새로 디자인해주세요." "컴포넌트 변형해서 쓰면..." "아니요,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 필요해요. 이건 특별한 프로젝트니까." 모든 프로젝트가 특별하다더라. 개발자가 말했다. "이 컴포넌트요, 구현하기 좀 복잡한데요. 이렇게까지 세분화해야 하나요?" "재사용성 때문에..." "근데 실제로 다 쓰이나요? 지금까지 3개 variant만 썼는데." 할 말이 없었다. 48개 중에 3개.효율성의 역설 컴포넌트는 효율을 위해 만든다. 한 번 만들어두면 계속 쓸 수 있으니까. 수정도 한 번에 반영되니까. 일관성도 유지되니까. 이론상으로는. 실제로는 다르다. 컴포넌트 만드는 데 시간이 든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한다. 확장 가능하게 설계해야 한다. 문서도 써야 한다. 그냥 디자인하는 것보다 3배는 오래 걸린다. "지금은 시간이 좀 걸려도, 나중에 효율적이니까." 그렇게 믿었다. 근데 나중이 온다. 프로젝트 방향이 바뀐다. 요구사항이 달라진다. 예외 케이스가 생긴다. 컴포넌트를 수정한다. 기존 사용처에 영향이 간다. 또 수정한다. 또 영향이 간다. 컴포넌트가 컴포넌트를 부른다. 버튼 수정하면 카드 깨진다. 카드 수정하면 리스트 깨진다. 리스트 수정하면 페이지 깨진다. 연쇄작용. "detach instance"를 누르는 순간의 죄책감. 시스템을 배신하는 기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일정은 내일까지고 이 페이지만 예외니까. 그렇게 예외가 쌓인다. 효율을 위해 만든 시스템이 비효율을 만든다. 유연성이라는 함정 그래서 배웠다.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모든 케이스에 대응 가능하게. 프로퍼티 많이 열어두고. 옵션 다양하게. 버튼 하나에 프로퍼티 12개.Size (4종) Variant (5종) State (4종) Icon position (3종) Full width (Boolean) Loading (Boolean)완벽하다. 이제 어떤 요청이 와도 대응 가능하다. 근데. 너무 복잡해졌다. 신입 디자이너가 물었다. "이 버튼 어떻게 쓰는 거예요?" 설명하는 데 10분. "아... 그냥 새로 만들까요?" 아니. 그러면 안 되는데. 유연성을 높이면 복잡도가 올라간다. 복잡도가 올라가면 사용성이 떨어진다. 사용성이 떨어지면 아무도 안 쓴다. 안 쓰이는 컴포넌트. 공들여 만든 시스템. Figma 파일 구석에서 먼지 쌓인다. 그리고 모두가 새로 만든다. 각자의 방식으로. 일관성은 다시 무너진다. 원점이다. 80%의 법칙 5년 차쯤 깨달았다. 100% 완벽한 컴포넌트는 없다. 모든 케이스를 커버하는 시스템은 없다. 80%면 된다. 80%의 경우에 잘 작동하면. 나머지 20%는 예외로 두면. 그게 현실이다. Primary 버튼 하나. 잘 만들어둔다. 대부분의 경우에 쓸 수 있게. 특별한 이벤트 페이지? 그건 detach 해서 쓴다. 괜찮다. C레벨이 "이 페이지만 특별하게"라고 하면? 시스템 무시하고 만든다. 어차피 일회성이니까. 완벽주의를 내려놓았다. 시스템은 가이드라인이다. 법이 아니다. 컴포넌트는 도구다. 목적이 아니다. 일관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이걸 받아들이니까 편해졌다. "이거 컴포넌트 안 쓰고 해도 돼요?" "네, 괜찮아요. 특수한 케이스니까." 죄책감 없이 말할 수 있다. 핵심만 지킨다 지금은 핵심만 컴포넌트로 만든다. 정말 반복적으로 쓰이는 것. 정말 일관성이 필요한 것. 버튼. Input. 카드. 모달. 네비게이션. 이 정도. 나머지는 페이지별로 자유롭게. 컬러 토큰은 확실히 지킨다. Primary, Secondary, Background, Text. 8개 정도. Typography도. Heading 3개, Body 2개, Caption 1개. Spacing은 4px 기준. 8, 16, 24, 32, 48. 이 정도면 일관성은 유지된다. 세부적인 컴포넌트는? 필요할 때 만든다. "나중을 위해" 미리 만들지 않는다. 나중은 안 온다. 다른 나중이 온다. YAGNI. You Aren't Gonna Need It. 개발 원칙인데 디자인에도 적용된다. 지금 필요한 것만 만든다. 효율적이다. 문서는 짧게 디자인 시스템 문서. 3년 차 때는 20페이지 썼다. 아무도 안 읽었다. 지금은 3페이지. 컬러, 타이포, Spacing. 스크린샷 몇 개. 끝. "자세한 건 Figma 파일 보세요." 컴포넌트 자체가 문서다. 잘 만들어두면 설명 필요 없다. 프로퍼티 이름만 잘 지으면 된다. "showIcon" 말고 "hasIcon". "isLarge" 말고 "size=large". 직관적이면 문서 필요 없다. 업데이트도 쉽다. 20페이지 문서 유지보수? 불가능하다. 일주일 지나면 구버전 된다. 3페이지? 한 달에 한 번 10분이면 업데이트 끝. 지속 가능하다. 완벽한 문서보다 유지되는 문서가 낫다. 개발자와의 간극 디자인 컴포넌트랑 코드 컴포넌트는 다르다. 이걸 이해하는 데 2년 걸렸다. Figma에서는 쉽다. variant 추가하고 프로퍼티 바꾸고. 클릭 몇 번. 코드에서는? 복잡하다. "이 컴포넌트 prop 12개나 되는데요. 테스트 케이스만 50개예요." 개발자의 한숨. "Figma에서는 간단한데..." "구현은 다릅니다." 배웠다. 디자인 컴포넌트를 만들 때 개발 복잡도를 고려해야 한다. 이 프로퍼티가 정말 필요한가. 이 variant가 코드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 개발자랑 같이 본다. Figma 파일 놓고 이야기한다. "이거 구현하려면 조건 분기가 10개 필요한데요." "그럼 이렇게 단순화하면 어때요?" 타협한다. 디자인적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구현 가능한 선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이 완벽한 시스템보다 낫다. 버전 관리의 악몽 컴포넌트 업데이트. 축복이자 저주. Master 컴포넌트 하나 수정하면 모든 instance에 반영된다. 편하다. 근데. 작업 중인 파일에도 반영된다. "어? 내 디자인이 왜 깨졌지?" 다른 디자이너의 비명. 내가 버튼 수정했는데 그 디자이너 작업물에 영향이 간 것. 미안하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컴포넌트 수정할 때. 누가 어디서 쓰고 있는지 확인한다. 슬랙에 공지한다. "버튼 업데이트합니다, 확인해주세요." 그래도 누군가는 놓친다. 그리고 다음 날. "어제 뭐 바꾸셨어요? 제 파일 다 깨졌는데요." 죄책감. 버전 관리가 필요하다. v1, v2, v3. 별도 페이지에. 근데 그러면 어떤 버전을 써야 하는지 헷갈린다. "최신 버전 쓰세요." "v3이요? 근데 v2가 더 안정적이라던데." "아니 v3이 최신이니까..." 혼란. 정답은 없다. 트레이드오프다. 항상. 6년 차의 깨달음 컴포넌트는 만능이 아니다. 시스템은 목적이 아니다. 도구다. 그냥. 좋은 제품 만드는 게 목적이다. 컴포넌트는 그걸 돕는 도구. 도구가 목적을 방해하면? 도구를 버린다. 시스템이 일을 느리게 만들면? 시스템을 무시한다. 일관성이 사용성을 해치면? 일관성을 포기한다. 원칙은 중요하다. 하지만 맹목적이면 안 된다. 깨야 할 때를 아는 게 경험이다. 신입 때는 몰랐다. 규칙을 배우느라 바빴다. 3년 차 때는 규칙을 만들었다. 완벽하게. 6년 차인 지금은 규칙을 깬다. 필요하면. 그게 시니어다. 미래는 어떨까 10년 차가 되면 어떨까. 아마 컴포넌트를 더 적게 만들 것 같다. 정말 필요한 것만. 핵심만. 경험이 쌓일수록 단순해진다. 복잡함이 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까. AI 도구가 발전하면? "이런 느낌으로 버튼 10개 만들어줘." 클릭 한 번에 variant 생성? 그럼 컴포넌트 개념이 바뀔 것 같다. 수작업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규칙을 정의하는 것. "이런 조건일 때 이런 스타일." 코드처럼. 개발자랑 디자이너의 경계가 흐려질지도. "Design Engineer"라는 직무가 늘어나는 것처럼. Figma에서 직접 코드 생성하고. 컴포넌트가 그대로 프로덕션에 들어가고. 그럼 디자이너의 역할은? 시스템 설계자. 아니, 그것보다. 문제 해결자. 도구는 계속 바뀐다. Sketch에서 Figma로. Figma에서 다음 도구로. 컴포넌트 만드는 방식도 바뀐다. 하지만 본질은 안 바뀐다. 사용자 문제를 이해하고. 솔루션을 디자인하고. 팀과 협업하고. 컴포넌트는 그냥 과정일 뿐. 그래도 계속 말한다 "이거 컴포넌트로 만들어둘게요." 여전히. 완벽하지 않아도. 모든 경우를 커버 못 해도. 나중에 깨질 수도 있어도. 만든다. 왜냐면 그래도 낫다. 아예 없는 것보다. 80% 작동하는 시스템이 0% 시스템보다 낫다. 불완전한 일관성이 완전한 무질서보다 낫다. 깨지는 컴포넌트라도 다시 고칠 수 있다. 시스템은 진화한다.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다. 써보면서 개선한다. 실패하면서 배운다. 6년 차의 컴포넌트는 1년 차와 다르다. 더 단순하고. 더 유연하고. 더 현실적이다. 10년 차는 또 다를 것이다. 그게 성장이다. 오늘도 출근했다. 슬랙 메시지. "최디자님, 이 버튼 좀 수정 가능할까요?" Figma 켠다. 컴포넌트 페이지 연다. 버튼을 본다. 3개월 전에 만든. 수정한다. 123개 instance에 반영된다. 누군가의 파일이 깨질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더 나은 시스템을 위해. 저장한다. "수정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려요." 슬랙에 보낸다. 커피 마신다. 네 번째. 다음 컴포넌트를 만들 준비한다. 오늘도.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있는 건 계속 나아지는 시스템뿐이다. 6년 차가 되어서야 알았다. 컴포넌트는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이라는 것을.

다른 앱을 쓸 때도 UI를 뜯어보는 직업병에 대하여

다른 앱을 쓸 때도 UI를 뜯어보는 직업병에 대하여

지하철에서도 일한다 지하철 타고 가다가 토스 켰다. 송금하려고. 근데 손이 멈췄다. 이 버튼 radius가 8px인가 12px인가. 탭바 높이는 몇인가. 상단 여백이 좀 넓어 보이는데. 송금은 까먹었다. 이게 직업병이다. 친구가 카톡으로 "너 왜 답장 안 해"라고 보냈다. 나는 카톡 메시지 말풍선 구석 radius를 보고 있었다. 대답은 10분 뒤에 했다. "미안 지금 봤어." 거짓말이다. 10분 전부터 보고 있었다. 배민 앱 열면 음식 안 본다. 폰트 본다. 이 카테고리 칩 디자인 바꼈네. 전보다 둥글다. 아이콘도 리뉴얼했네. 그사이 치킨은 식었다.카페에서 메뉴판을 본다 스타벅스 갔다. 아메리카노 주문하려고. 근데 메뉴판이 보인다. 이 레이아웃 누가 짰지. 음료 이름이랑 가격 사이 여백이 왜 이래. 위계가 없다. 시선 흐름이 안 나온다. "주문하시겠어요?" "아... 아메리카노요." 받아서 나오는데 컵 홀더를 본다. 이 그린 컬러 코드가 뭘까. #00704A쯤? 집에 가서 확인했다. 맞았다. 기분이 좋았다. 이상했다. 남자친구랑 식당 갔다. 메뉴판을 10분 봤다. 남자친구가 물었다. "뭐 먹을까?" 나는 대답했다. "이 메뉴판 폰트가 너무 작아." 그는 한숨 쉬었다. "그래서 뭐 먹는데." 음식 나왔다. 사진 찍었다. 맛집 인증용 아니다. 접시 위 플레이팅 레이아웃 분석용이다. 이 대칭 구도. 이 컬러 조합. 저장했다. 나중에 쓸 데가 있을 것 같았다.영화관에서 자막을 본다 영화 봤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근데 자막이 눈에 들어왔다. 이 자막 폰트 뭐지. 크기는 적당한데 stroke가 너무 두껍다. 가독성은 좋은데 감정 전달이 약하다. 영화 끝났다. 남자친구가 물었다. "어땠어?" 나는 대답했다. "자막 디자인이 좀 아쉬웠어." 그는 웃었다. "내용은?" 기억 안 났다. 유튜브 본다. 썸네일만 본다. 클릭은 안 한다. 이 썸네일 텍스트 배치가 좋네. 저건 너무 자극적이네. 이건 컬러 선택을 잘했네. 스크롤만 30분 했다. 영상은 하나도 안 봤다. 인스타 피드 넘긴다. 사진 안 본다. 레이아웃 본다. 이 카드형 UI 괜찮은데. 저 프로필 이미지 크기가 이상한데. 하트는 안 누른다. 스크린샷은 한다. 피그마에 정리한다. 길거리 간판도 일감이다 걷다가 멈췄다. 카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서체 조합이 왜 이래. 명조랑 고딕을 섞었다. 어울리지 않는다. 사장님은 모를 것이다. 편의점 들어갔다. 행사 POP가 보인다. 이 빨강이 너무 강하다. #FF0000 쓴 것 같다. 차라리 #FF3B3B 쓰지. 눈이 아프다. 물건 안 사고 나왔다. 버스 정류장 광고판 봤다. 이 레이아웃 누가 짰지. 정보 위계가 엉망이다. CTA 버튼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3초 안에 메시지 전달 못 한다. 광고비 날린다. 남자친구가 말했다. "너 산책하자고 해놓고 왜 맨날 멈춰 서." 미안했다. 근데 저 네온사인 자간이 너무 좁았다.쉬는 날에도 일한다 주말이다. 넷플릭스 켰다. UI 업데이트됐네. 이 카드 hover 효과 바꼈다. 전보다 부드럽다. transition 0.3s에서 0.4s로 늘린 것 같다. 영상은 안 봤다. 피그마 켰다. Pinterest 본다. 영감 찾으려고. 2시간 지났다. 저장만 500개 했다. 적용은 하나도 안 했다. 폴더만 늘었다. "언젠가 쓸 거야." 친구가 보낸 웹사이트 링크 눌렀다. 기사 내용은 안 읽었다. 스크롤 인터랙션만 봤다. 이 패럴랙스 효과 어떻게 구현했지. F12 눌렀다. 코드 봤다. 친구한테 답장 안 했다. 유튜브에서 "UI design trends 2025" 검색했다. 영상 10개 봤다. 다 비슷했다. Glassmorphism, neumorphism, 3D elements. 알고 있었다. 그래도 다 봤다. 불안했다. 밤에는 더 심하다 밤 11시. 침대에 누웠다. 폰 켰다. 설치한 앱 하나씩 열어본다. 오늘 업데이트된 거 있나. UI 바뀐 거 있나. 없다. 그래도 다 확인한다. App Store 새로운 앱 카테고리 들어간다. 앱 하나씩 스크린샷 본다. 다운은 안 한다. 스크린샷만 본다. 이 온보딩 플로우 괜찮네. 저 컬러 시스템 예쁘네. 스크린샷 저장한다. 폴더에 넣는다. 못 쓴다. 남자친구한테 카톡 왔다. "자?" 답장 안 했다. Dribbble 보고 있었다. 이 shot 좋아요 3천 개네. 왜지. 별로인데. 댓글 읽었다. 다들 좋다고 한다. 내 감각이 이상한가. 불안했다. 새벽 1시. 아직도 안 잔다. 피그마 커뮤니티 파일 다운받는다. 다른 디자이너 작업물 뜯어본다. 이 사람은 컴포넌트를 이렇게 만들었네. 나랑 다르네. 내 방식이 틀렸나. 다시 불안했다. 이게 병인지 사랑인지 병원 갔다. 의사가 물었다. "어디 불편하세요?" 나는 대답했다. "저 뒤에 차트 UI가 너무 구식인 것 같은데요." 의사는 당황했다. 나도 당황했다. 디자이너 친구 만났다. 카페에서. 우리는 대화 안 했다. 각자 폰만 봤다. 가끔 폰 화면 보여줬다. "이거 봐. 이 UI." "오 좋은데." 다시 조용했다. 이게 우리 방식이다. 엄마가 전화했다. "요즘 어때?" "좋아요." "일은?" "재밌어요." 거짓말 아니다. 진짜 재밌다. 힘들지만 재밌다. 이상하지만 재밌다. 퇴근길이다. 지하철 탔다. 광고판 본다. 이번 달 신상 광고네. 레이아웃이 지난달보다 좋아졌다. 누가 새로 들어왔나. 궁금하다. 검색한다. 링크드인 뒤진다. 찾았다. 경력 6년차네. 나랑 같다. 집 도착했다. 현관문 열었다. 불 켰다. 냉장고 열었다. 물 마셨다. 침대에 누웠다. 폰 켰다. 피그마 열었다. 내일 할 작업 미리 본다. 이 컴포넌트 수정해야지. 저 컬러 토큰 정리해야지. 잠은 나중에. 이게 내 삶이다 직업병이다. 맞다. 근데 이게 싫지는 않다. 가끔은 힘들다. 쉬고 싶다. 그냥 앱 쓰고 싶다. 분석 말고. 근데 안 된다. 눈이 자동으로 본다. 남자친구가 말했다. "너 일 그만하고 싶지 않아?" 생각해봤다. "글쎄. 잘 모르겠어." 진심이었다. 이게 일인지 취미인지 모르겠다. 디자인 보는 게 좋다. 좋은 UI 보면 기분이 좋다. 나쁜 UI 보면 고치고 싶다. 이게 내 본능이다. 이게 내 저주다. 이게 내 축복이다. 지금도 이 글 쓰면서 노션 UI 본다. 이 텍스트 에디터 UX가 왜 이렇게 좋지. 단축키 조합이 직관적이다. 타이포그래피 시스템이 깔끔하다. 글 내용은 나중에 생각한다. 내일도 출근한다. 피그마 켠다. 디자인한다. 퇴근한다. 다른 앱 켠다. 또 분석한다. 이게 내 루틴이다. 이게 내 삶이다.쉴 수 없는 눈. 디자이너의 숙명이다.

피그마 파일명을 어떻게 정할지로 5분을 고민한 너에게

피그마 파일명을 어떻게 정할지로 5분을 고민한 너에게

파일명 하나에 5분 새 파일 만들었다. 커서가 깜빡인다. "Design_System_v1" 지웠다. "DS_Component_Library" 이것도 아니다. "Component_Library_2024" 연도를 붙이는 게 맞나. "UI_Kit_Final" Final은 거짓말이다. Final_v2가 나온다. 시계를 봤다. 5분 지났다. 파일명 하나에.동료는 "작업파일123" 이런 식으로 저장한다. 부럽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폴더 구조도 마찬가지다. /Project /Design /Archive /Component /Research /Wireframe이렇게 만들어놨다가, /Project /01_Research /02_Wireframe /03_Design /04_Archive번호 매기는 게 낫나 싶어서 다시 만든다. 파일 이동하는 데 10분. 아무도 안 본다. 나만 본다. 회의 시작 5분 전에 이걸 하고 있다. 개발자는 "아무거나 보내주세요" 했는데.레이어명도. "Rectangle 47"을 그냥 둘 수 없다. "Button/Primary/Default/Background"로 바꾼다. 컴포넌트 이름은 더하다. "Button_Primary" "Btn_Primary" "Primary_Button" "btn/primary" 네이밍 컨벤션 문서를 만들었다. 나 혼자 지킨다. 이게 강박인 건 안다 치료가 필요한 건 아니다. 근데 불편하긴 하다. 친구는 말했다. "그냥 대충 해. 나중에 바꾸면 되잖아." 맞다. 근데 못 한다. 처음부터 제대로 하고 싶다. 나중에 바꾸면 시간 두 배 걸린다는 걸 안다. 그래서 지금 5분을 쓴다. 나중의 10분을 아끼려고.근데 진짜로 10분이 아껴지나. 잘 모르겠다. 파일 찾는 시간은 줄었다. 대신 파일명 짓는 시간이 늘었다. 트레이드오프다. 동료의 파일을 열었을 때 "최종최종진짜최종.fig" 웃겼다. 근데 부러웠다. 고민 없이 저장했을 것이다. 3초 걸렸을 것이다. 내 파일명. "Component_Library_Design_System_v2.3_240315_updated.fig" 누가 봐도 병이다. 개발자가 말했다. "파일명 길어서 터미널에서 잘려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못 고친다. 다음 파일명. "Component_Library_DS_v2.4_240316.fig" 0.1 줄었다. 성장했다. 이게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은 것에 신경 쓰는 게. 픽셀 하나에 집착하는 것. 컬러 코드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맞추는 것. 8pt 그리드에서 1px도 안 벗어나려는 것. 이게 디자이너의 미덕 아닌가. 대표는 모른다. 기획자도 모른다. 개발자도 관심 없다. 근데 나는 안다. 그리고 그게 중요하다. 프로젝트 끝나고. 6개월 후에 파일 다시 열었다. "Component_Library_DS_v2.4_240316.fig" 뭐 하던 파일인지 바로 알았다. 버전이 뭔지도 알았다. 날짜도 있었다. 5분이 아깝지 않았다. 동료 파일. "ㅁㄴㅇㄹ.fig" 뭔지 모른다. 열어봐야 안다. 결국 내가 이긴 거다. 승리의 5분이었다. 근데 가끔은 너무 피곤하다. 파일명 하나에 왜 이렇게 고민하나. 컴포넌트명 하나에 왜 이렇게 생각하나. 그냥 "버튼1" 하면 안 되나. 안 된다. 못 한다. 이게 나다. 오늘도 새 파일 만들었다. 커서가 깜박인다. "Design_System_2024" 아니다. "DS_Component_2024" 이것도 아니다. 3분 지났다. 성장했다. 2분 줄었다. 결국 이런 거다 완벽하게 하고 싶은 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파일명도 디자인의 일부다. 레이어 구조도 디자인의 일부다. 폴더 정리도 디자인의 일부다. 보이는 것만 디자인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도 디자인이다. 동료가 내 파일 열어봤다. "와, 정리 진짜 잘했네요." 이 한마디에 5분이 보상된다. 개발자가 말했다. "컴포넌트명이 명확해서 좋아요." 이 한마디에 10분이 보상된다. 대표는 모른다. 기획자도 모른다. 근데 같이 일하는 사람은 안다. 그리고 그게 중요하다. 타협점을 찾았다 5분은 쓴다. 10분은 안 쓴다. 파일명은 고민한다. 레이어명은 적당히 한다. "Rectangle 47"은 놔둔다. 숨겨진 레이어니까. "Button/Primary"는 바꾼다. 자주 쓰는 컴포넌트니까. 완벽함과 효율의 균형. 이게 프로다. 처음엔 못 찾았다. 6년 차가 되니까 보인다. 어떤 건 신경 써야 하고. 어떤 건 놔둬도 된다. 오늘도 새 파일 "Component_Library_v3.fig" 2분 걸렸다. 만족한다. 개발자한테 보냈다. "파일명 괜찮죠?" "네, 좋아요." 이걸로 됐다. 내일도 5분 쓸 것이다. 파일명 고민하는 데. 근데 이제 안 미안하다. 이게 나니까. 작은 것에 정성 들이는 거. 나쁜 습관 아니다. 디자이너의 자존심이다.파일명 하나에 5분 쓰는 너, 이상한 거 아니다. 그게 디테일이다.

토요일 오전, 사이드 프로젝트 UI를 파다가 결국 포기하는 순간

토요일 오전, 사이드 프로젝트 UI를 파다가 결국 포기하는 순간

토요일 10시 알람 없이 일어났다. 9시 50분. 평일보다 늦게 잔 건데 일찍 일어났다. 침대에서 인스타 열었다. 피드에 디자이너들 사이드 프로젝트가 보인다. '30일 UI 챌린지 완성!' '개인 프로젝트 런칭했습니다 🎉' 나도 해야지. 계속 미뤘는데. 일어나서 커피 내렸다. 원두는 회사 근처 카페 거. 노트북 켰다. 피그마 자동 실행된다. 회사 파일 말고 'Personal' 워크스페이스. 지난주에 만들던 독서 앱 UI. 3개월 전 파일이다. 진행률 15%.의욕은 있었다 처음엔 재밌었다. 아무도 간섭 안 하니까. '빨간색 좀 더 빨갛게'도 없고. '애플처럼'도 없고. 개발 제약도 없다. 그래서 시작했다. 5월에. 앱 컨셉: 책 기록하는 앱. 감성 있게. 무드보드부터 만들었다. Pinterest에서 3시간. 컬러 팔레트 정했다. 베이지 베이스에 딥그린 포인트. 타이포 고민했다. Pretendard? Spoqa? 결국 Pretendard. 첫 주는 일주일에 5시간씩 했다. 스플래시 화면 만들고, 온보딩 플로우 짰다. 두 번째 주는 3시간. 홈 화면 레이아웃 고민하다 끝. 세 번째 주는 1시간. 컴포넌트 하나 만들다 말았다. 그 다음은 안 열었다. 다시 열어보니 파일 열었다. 3개월 만에. 아트보드 7개. 완성된 건 2개. 컴포넌트는 버튼 하나. 스크롤 내리며 봤다. '뭐 하려던 거였지?' 플로우가 기억 안 난다. 왜 이 화면에서 이 화면으로 가는지. 메모 확인했다. '여기 인터랙션 추가' '컬러 다시 보기' '아이콘 교체 필요' ...다 기억 안 난다.한 시간 만져봤다 그래도 시작은 했으니까. 홈 화면 레이아웃 다시 잡았다. 카드형? 리스트형? 결정 못 내리고 둘 다 만들었다. 타이포 사이즈 조정했다. 16px? 18px? 0.5px 차이에 30분. 컬러 팔레트 다시 봤다. "베이지가 너무 칙칙한가?" Color Hunt 열었다. 또 1시간. 북마크한 레퍼런스 다시 봤다. "이게 더 나은데?" 레이아웃 다시 갈아엎었다. 시계 봤다. 1시. 배고프다. 점심 먹고 라면 끓여먹었다. 신라면. 유튜브 켜놨다. 디자인 브이로그. 다른 디자이너는 집중 잘한다. 타임랩스 보니까 4시간 연속. 나는 왜 안 되지. 설거지하고 다시 앉았다. 피그마 그대로 켜져 있다. "조금만 더." 아이콘 만들기 시작했다. 직접 그리면 통일감 있을 거야. 북마크 아이콘. 하트 아이콘. 플러스 아이콘. ...Feather Icons 쓸걸.오후 3시 친구한테 톡 왔다. "나와" "작업 중"이라고 답했다. "주말에도 일해? ㅋㅋ" "아니 개인 작업" "그게 그거지" ...맞는 말이다. 창 밖 봤다. 날씨 좋다. 햇빛 쨍하다. 피그마 보니까 진행률 18%. 3시간 해서 3% 늘었다. 이러면 완성까지 100시간. 주말마다 3시간씩 하면 33주. 8개월. "...미쳤나." 왜 이러나 사이드 프로젝트 하고 싶었다. 순수하게 디자인하고 싶었다. 회사에선 제약 투성이. 기획 바뀌고, 개발 안 되고, 피드백 이상하고. 여기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데. 근데 막상 자유니까 막막하다. "이게 맞나?" 물어볼 사람도 없다. 그리고 피곤하다. 평일에 피그마 50시간 봤다. 주말에 또 피그마. 모니터가 지겹다. 단축키가 지겹다. 컴포넌트가 지겹다. "디자인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포기의 순간 마우스 내려놨다. 파일 저장했다. 'Book App UI_v0.3_final_real_final' 저장하면서 알았다. 다시 안 열 거다. 지난번에도 그랬다. '카페 리뷰 앱' '운동 기록 앱' '감정 일기 앱' 전부 15% 진행에서 멈췄다. 노트북 덮었다. 창문 열었다. 밖에서 애들 노는 소리. 누군가 웃는다. "나 뭐 하는 거지." 자기합리화 사이드 프로젝트 안 해도 된다. 포트폴리오 업데이트 안 해도 산다. 회사 일만 잘하면 되지. 연봉 받고 있잖아. 다른 취미 찾으면 되지. 디자인 말고. ...근데 뭐하지? 운동? 작심삼일. 독서? 한 달에 한 권. 요리? 배달이 낫다. 결국 침대에 누워서 Dribbble 봤다. 다른 사람들 작업물. 예쁘다. 부럽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다음 주말에 하자. 저녁 남자친구한테 전화했다. "뭐 해?" "코딩. 너는?" "디자인하다가 관뒀어." "또? ㅋㅋㅋ" 웃긴대. "너는 사이드 프로젝트 잘하잖아." "나도 포기 많이 해. 안 보여줄 뿐." 그 말에 좀 위로됐다. "우리 나가자. 한강?" "좋아. 30분 후." 씻었다. 거울 봤다. 토요일인데 하루 종일 집. "이래서 번아웃 오는 거야." 한강에서 치맥 시켰다. 해 지는 거 봤다. "요즘 힘들어?" 남친이 물었다. "응. 근데 뭐가 힘든지 모르겠어." "번아웃 아냐?" "번아웃은 일 많이 해야 오는 거 아냐?" "일 안 해도 와. 의미 없으면." 맞는 말인가. "사이드 프로젝트 왜 해?" "...포폴 때문에? 성장하려고?" "그거 의무잖아. 취미가 아니라." 또 맞는 말이다. "그럼 어떡해?" "쉬든가. 진짜 하고 싶은 거 하든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데." "모르겠으면 아무것도 안 하면 돼." 집 가는 길 버스에서 생각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의무로 만들었다. '해야 해' '안 하면 뒤처져' 그래서 재미없었다. 회사 일이랑 똑같았다. 디자인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디자인 때문에 지친다. 일과 취미의 경계. 둘이 같으면 취미가 없다. 그럼 나는 뭘 좋아하지? 버스 창밖 봤다. 불 켜진 건물들. 저 안에도 누군가 야근한다. 토요일인데. 일요일 계획 일요일엔 피그마 안 켠다. 노트북 안 연다. 뭐 하지? 산책? 전시? 영화? ...모르겠다. 일단 자자. 집 도착했다. 노트북 가방에서 안 꺼냈다.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 봤다. 습관적으로 Behance. "아 진짜." 껐다. 눈 감았다. 내일은 디자이너 아닌 날로 살아보자.토요일도 일처럼 느껴지면, 그건 쉬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