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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ma를 켜지 않으면 하루가 시작되지 않는 디자이너의 하루

Figma를 켜지 않으면 하루가 시작되지 않는 디자이너의 하루

오전 9시 30분, 첫 번째 클릭 출근했다. 맥북 열고 제일 먼저 켜는 건 슬랙도 지라도 아니다. Figma다. 로그인 화면도 없다. 어제 퇴근할 때 그냥 켜놓고 나왔으니까. 어제 작업하던 파일이 그대로 떠 있다. 밤새 개발자가 댓글을 3개 달아놨다. "이 간격 8px 맞나요?" "이 컴포넌트 인스턴스 수정했는데 확인 부탁드려요." "다크모드 컬러는요?" 아직 커피도 안 마셨는데. 답글 단다. 8px 맞다고. 인스턴스는 메인 컴포넌트 수정하면 자동 반영된다고. 다크모드는 토큰 시트 확인하라고. 9시 35분. Figma 켠 지 5분 만에 일이 3개 처리됐다. 이게 중독인가 효율인가. 잘 모르겠다.10시, 기획자의 슬랙 메시지 "디자님 Figma 보고 계세요? 빨간 점 떴어요!" 보고 있다. 항상 보고 있다. Figma는 내 두 번째 모니터에 항상 켜져 있다. 왼쪽엔 슬랙, 오른쪽엔 Figma. 이게 내 업무 환경의 전부다. 기획자가 내 파일에 들어와 있다. 커서가 움직인다. 실시간이다. 텍스트를 선택한다. 댓글을 단다. "여기 문구 '시작하기'에서 '지금 시작'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나도 같은 화면을 보고 있다. 기획자 커서 옆에 내 커서를 가져다 댄다. 댓글로 답한다. "버튼 폭이 좁아지는데 괜찮을까요?" 기획자가 바로 답한다. "아 그러네요. 그럼 원안대로요." 3분 만에 끝났다. 회의실 예약도 안 했다. 자리 이동도 안 했다. 그냥 Figma 켜놓고 댓글 3개 주고받았다. 이게 바로 실시간 협업이다. 편하다. 너무 편하다. 그래서 문제다.정오, 점심시간에도 Figma 점심 먹으러 간다. 근처 샐러드 가게. 줄 서서 기다린다. 폰 꺼낸다. Figma 앱 켠다. 아침에 작업하던 버튼 컴포넌트가 신경 쓰인다. 패딩이 12px인데 16px이 나을 것 같다. 폰으로 수정한다. 되긴 된다. 근데 불편하다. 역시 Figma는 데스크탑이다. 샐러드 받아서 회사 돌아온다. 자리 앉자마자 맥북 연다. Figma 확인한다. 아까 폰으로 수정한 게 반영돼 있다. 신기하다. 매번 해도 신기하다. 점심 먹으면서도 Figma 생각했다. 이게 정상인가. 개발자 친구한테 물어봤다. "너도 VS Code 항상 켜놓아?" 그랬더니 "당연하지" 한다. 개발자는 코드 에디터고, 디자이너는 Figma다. 우리 세대의 운명이다. 근데 다르다. VS Code는 혼자 쓴다. Figma는 다 같이 쓴다. 내가 작업하는 걸 다른 사람이 실시간으로 본다. 커서가 움직이는 걸 본다. 댓글을 단다. 이게 압박이다.오후 2시, 핸드오프 미팅 회의실. 개발자 2명. 나. 노트북 3대. 전부 Figma 켜놨다. "일단 제가 화면 공유할게요." 내가 말한다. Figma Dev Mode 켠다. 개발자들이 좋아하는 모드다. 컴포넌트 속성이 전부 보인다. CSS 코드도 나온다. 복사 붙여넣기 하면 된다. "이 버튼이요, padding은 16px이고요, border-radius는 8px이에요. 컬러는 토큰 시트 확인하시면 되고..." 설명한다. 개발자가 끄덕인다. "네, 이건 되는데요..." 또 나온다. "되는데." "이 그라데이션이요, 이거 구현 좀 힘들 것 같은데." 개발자가 말한다. 예상했다. 그라데이션은 항상 문제다. "CSS로 안 돼요?" 물어본다. "되긴 하는데 각도 조절이..." 개발자가 말을 흐린다. 타협한다. 그라데이션 각도 바꾼다. 실시간으로 바꾼다. 회의실에서. Figma 켜놓고. 개발자들이 내 화면 보면서. "이 정도면요?" "오 이건 되겠네요." 20분 만에 해결. 이게 Figma의 힘이다. 예전에는 이랬다. 디자인 완성. 제플린에 업로드. 개발자한테 링크 전달. 개발자가 확인. 질문 생김. 슬랙으로 물어봄. 답변. 또 질문. 회의 잡음. 회의실 이동. 설명. 수정 필요. 다시 작업. 다시 업로드. 반복. 지금은 이렇다. Figma 켜놓고 같이 본다. 실시간 수정. 바로 확인. 끝. 시간이 3분의 1로 줄었다. 근데 피로도는 2배가 됐다. 왜일까. 오후 4시, 디자인 시스템 정리 오늘은 디자인 시스템 정리하는 날이다. 한 달에 한 번 잡아놓은 일정. 안 하면 컴포넌트가 무한 증식한다. Figma 파일 연다. "Design System v3.2". 왼쪽 레이어 패널 본다. 컴포넌트 347개. 지난달보다 47개 늘었다. 이상하다. 새로 만든 건 10개도 안 되는데. 스크롤 내린다. 발견한다. "Button/Primary/Copy", "Button/Primary/Copy 2", "Button/Primary/Final", "Button/Primary/Final-Final". 범인을 찾았다. 나다. 급하게 작업하다 보면 메인 컴포넌트 수정이 무섭다. 다른 곳에 영향 갈까 봐. 그래서 복사한다. 수정한다. 끝나면 지워야 하는데 까먹는다. 그렇게 쌓인다. 2시간 동안 정리한다. 중복 컴포넌트 삭제. 이름 규칙 정리. 토큰 업데이트. 문서화. 347개가 289개가 됐다. 뿌듯하다. 근데 이미 안다. 다음 달에 또 늘어날 거다. 이게 디자인 시스템의 숙명이다.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계속 유지보수해야 한다. 그게 일이다. Figma가 없었으면 이것도 못 했다. 스케치 시절엔 파일이 몇십 개로 쪼개져 있었다. 컴포넌트 수정하면 파일마다 열어서 업데이트했다. 지금은 클라우드다. 한 번 수정하면 어디든 반영된다. 고맙다, Figma. 근데 내 인생을 돌려줘. 오후 6시, 실시간 피드백의 공포 대표님이 Figma 들어왔다. 알람 뜬다. "박대표님이 파일을 보고 있습니다." 심장 뛴다. 대표님은 디자인을 잘 모른다. 그래서 더 무섭다. 뭘 볼까. 뭐라고 할까. 커서가 움직인다. 메인 페이지로 간다. 어제 작업한 신규 기능 화면이다. 아직 완성 아니다. 70%쯤? 댓글 단다. "디자님, 이거 언제 완성돼요?" 답한다. "내일 오전까지 완성 예정입니다." 대표님 커서가 또 움직인다. 버튼을 가리킨다. 댓글 단다. "이 파란색, 좀 더 밝게 할 수 있을까요?" 속으로 생각한다. '브랜드 컬러입니다. 토큰에 정의돼 있습니다. 함부로 못 바꿉니다.' 실제로 쓴다. "브랜드 컬러라 다른 곳에도 영향이 있는데 확인 후 답변드릴게요." 대표님이 나갔다. 한숨 쉰다. 이게 실시간 협업의 양날의 검이다. 빠르다. 너무 빠르다. 피드백이 즉각 온다. 좋다. 근데 너무 즉각 온다. 작업 중인 걸 본다. 미완성을 본다. 퇴근 후에도 볼 수 있다. 주말에도 볼 수 있다. 예전엔 디자인 파일은 내 컴퓨터에 있었다. 보여주고 싶을 때 보여줬다. 지금은 클라우드에 있다. 링크만 있으면 누구나 본다. 언제나 본다. 실시간으로 본다. 자유인가 감시인가. 모르겠다. 저녁 7시, 퇴근 전 마지막 푸시 퇴근 시간이다. 근데 못 간다. 오늘 작업 푸시해야 한다. 마지막 체크한다. 오타 없나. 정렬 맞나. 간격 일관적인가. 컴포넌트 연결 잘 됐나. Auto Layout 제대로 설정했나. 다크모드 확인했나. 체크리스트가 길다. Figma는 자유도가 높다. 그만큼 실수도 많다. 한 픽셀 어긋나도 개발자가 알아챈다. "디자인에는 24px인데 개발하니까 23px인데요?" 그러면 멘붕이다. 30분 더 확인한다. 완벽하다. 댓글 단다. "@개발팀 작업 완료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려요!" 멘션 보낸다. 개발자 3명한테 알람 간다. 1분 후. 개발자가 들어왔다. 벌써. 커서가 움직인다. 확인한다. 댓글 단다. "확인했습니다. 내일 작업 시작할게요." 빠르다. 모든 게 빠르다. Figma는 모든 걸 빠르게 만든다. 협업도. 피드백도. 수정도. 번아웃도. 맥북 닫는다. Figma는 안 닫는다. 어차피 집 가서 또 켤 거다. 밤 11시, 침대에서 Figma 집이다. 씻었다. 침대 누웠다. 폰 꺼냈다. Figma 앱 켰다. 또 켰다. 낮에 작업한 거 다시 본다. 마음에 안 든다. 버튼 위치가 이상하다. 2px 내린다. 폰으로. 침대에서. 밤 11시에. 남자친구가 메시지 보냈다. "아직도 일해?" 답한다. "아니, 그냥 확인만." 거짓말이다. 수정하고 있다. Pinterest 앱으로 넘어간다. UI 디자인 레퍼런스 본다. 좋은 거 있다. 저장한다. Figma로 다시 넘어간다. 방금 본 레퍼런스 적용해 본다. 괜찮다. 근데 내일 보면 별로일 거다. 항상 그렇다. Dribbble 앱 연다. 인기 샷 본다. 다들 잘한다. 부럽다. 나도 포트폴리오 올려야 하는데. 시간 없다. Figma 켜놓고 실무만 하다가 하루 간다. 알람 설정한다. 내일 아침 7시 반. 9시 반 출근인데 왜 7시 반이냐. Figma 확인 시간 필요하다. 출근 전에 댓글 확인하고 답 달아야 한다. 그래야 오전에 일이 막히지 않는다. 폰 내려놓는다. Figma 앱은 안 닫는다. 백그라운드에 켜놓는다. 알람 오면 바로 확인해야 한다. 중독이다. 안다. 근데 끊을 수 없다. Figma 없이 일할 수 없다. Figma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자려고 눈 감는다. 머릿속에 Figma 인터페이스가 보인다. 레이어 패널. 프로퍼티 패널. 컴포넌트. 오토 레이아웃. 잠이 안 온다. 통계를 보는 날 월말이다. Figma 어드민 페널 들어갔다. 팀 사용량 확인한다. 이번 달 내 Figma 사용 시간. 217시간. 하루 평균 10.3시간. 근무 시간이 9시간인데 10시간을 썼다. 집에서도 켰다는 얘기다. 알고 있었다. 팀원들 확인한다. 막내는 140시간. 중간은 165시간. 나만 200시간 넘었다. 리드니까. 당연하다. 위로한다. 파일 수정 횟수. 2,847회. 하루 평균 135회. 10분에 한 번씩 수정했다는 얘기다. 놀랍지 않다. 픽셀 하나 옮기는 것도 수정이다. 컬러 바꾸는 것도 수정이다. 텍스트 고치는 것도 수정이다. 댓글 단 횟수. 423개. 받은 댓글. 687개. 더 많이 받았다. 피드백을 더 많이 받았다는 얘기다. 디자이너의 숙명이다. 협업자 수. 17명. 작은 회사인데 17명이 내 Figma 파일에 들어왔다. 기획자 3명. 개발자 8명. 마케터 2명. 대표 1명. 나머지는 누구지. 확인한다. 인턴이다. 구경 왔나 보다. 통계를 보면 깨닫는다. Figma는 도구가 아니다. 생태계다. 내가 만든 디자인 파일 하나에 17명이 연결돼 있다. 실시간으로. 계속. 무섭다. 근데 이게 현실이다. 대안은 없다 가끔 생각한다. Figma 말고 다른 거 쓸까. Sketch? 옛날이다. 클라우드 안 된다. 맥에서만 된다. 협업 안 된다. Adobe XD? 망했다. Adobe가 업데이트 중단했다. 다들 Figma로 넘어갔다. Framer? 프로토타이핑은 좋다. 근데 디자인 시스템은 Figma만 못하다. 결론. 대안 없다. Figma가 업계 표준이다. 이력서에 "Figma 능숙" 안 쓰면 서류 떨어진다. 면접 가면 "Figma 쓸 줄 아세요?" 묻는다. 당연하다고 답한다. 안 쓰면 일 못 한다. 독점이다. 나쁜 독점은 아니다. Figma는 좋은 툴이다. 계속 업데이트된다. 사용자 말 듣는다. 기능 추가한다. 버그 고친다. 그래서 다들 쓴다. 근데 선택권은 없다. 안 써도 되는 게 아니다. 써야만 한다. 디자이너로 일하려면. Figma를 켜야 한다. 하루 10시간. 매일. 이게 2024년 디자이너의 현실이다. 그래도 불평만 한 것 같다. 아니다. Figma 좋아한다. 진짜다. 없으면 못 산다. 아니, 일 못 한다. 협업이 이렇게 쉬웠던 적 없다. 개발자한테 파일 전달하는 게 링크 하나면 된다. 수정사항 있으면 실시간으로 반영된다. 버전 관리 자동이다. 댓글로 소통된다. 미팅 시간 줄었다. 디자인 시스템 만들기 쉬워졌다. 컴포넌트 한 번 만들면 어디든 쓴다. 수정하면 전부 업데이트된다. 토큰 시스템 있다. 다크모드 자동이다. 반응형 레이아웃 쉽다. 프로토타이핑 빠르다. 클릭 몇 번이면 인터랙션 만든다. 개발자한테 설명 안 해도 된다. 직접 눌러보면 안다. "아 이렇게 되는 거구나." 플러그인 생태계 좋다. 필요한 기능 대부분 있다. AI 툴 연동된다. 아이콘 라이브러리 많다. 이미지 생성 도구 있다. 접근성 체크 툴 있다. 코드 변환 도구 있다. 무료다. 개인은 무료다. 팀 플랜도 한 달 15달러. 어도비보다 싸다. 학생은 완전 무료다. 진입장벽 낮다. Figma가 디자인 민주화했다.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유튜브에 튜토리얼 넘친다. 커뮤니티 활발하다. 질문하면 답 온다. 템플릿 많다. 배우기 쉽다. 좋은 도구다. 정말로. 근데 너무 좋아서 문제다. 안 켜면 불안하다. 그게 문제다. 내일도 켤 거다 내일 아침 9시 반. 출근한다. 맥북 연다. Figma 켠다. 어제 작업 확인한다. 댓글 확인한다. 답글 단다. 새 작업 시작한다. 기획자랑 협업한다. 개발자랑 핸드오프한다. 대표님 피드백 받는다. 수정한다. 또 수정한다. 저녁 7시. 퇴근한다. Figma는 안 닫는다. 집 가서 또 켤 거다. 침대에서 또 켤 거다. 주말에도 켤 거다. 이게 중독인가. 맞다. 중독이다. 끊을 수 있나. 없다. 끊을 필요 있나. 모르겠다. Figma는 내 일이다. 내 일상이다. 내 정체성이다. "Figma 없이 어떻게 일해요?" 누가 물으면 답 못 한다. 상상이 안 된다. 2024년 디자이너의 삶. Figma 켜고 시작한다. Figma 보고 끝난다. 그 사이에 디자인이 있다. 협업이 있다. 피드백이 있다. 수정이 있다. 반복이 있다. 피곤하다. 근데 이게 내 일이다. 좋아하는 일이다. 계속할 거다. 내일도 Figma 켤 거다. 모레도. 글피도. 계속.결국 우리는 도구를 선택한 게 아니라, 도구가 우리를 선택했다.

대표님이 말씀하신 '애플처럼 해주세요'를 들었을 때의 심정

대표님이 말씀하신 '애플처럼 해주세요'를 들었을 때의 심정

그 말이 나왔다 회의실에 들어갔다. 대표님, 기획자, 개발팀장, 나. "이번 리뉴얼인데요, 우리 앱을 좀 더... 애플처럼 만들어주세요." 숟가락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손에서."네... 애플처럼요." 대답은 했다. 근데 머릿속은 벌써 난리다. 애플의 뭘 말하는 거지? 미니멀? 여백? 타이포? 애니메이션? 아니면 그냥 '깔끔한 거'? "그죠, 깔끔하고 세련되게요. 애플 보면 정말 심플하잖아요." 나왔다. '심플'. 디자이너가 제일 듣기 싫은 단어 3위 안에 드는 그 단어. 심플의 무게 회의 끝나고 자리 돌아왔다. 피그마 켰다. 심플. 깔끔. 애플처럼. 이 세 단어를 화면에 구현하려면 뭐가 필요한가.타이포 시스템: 웨이트 4단계, 사이즈 8단계, 라인하이트 조정 컬러 시스템: 메인 3색, 서브 5색, 그레이스케일 10단계, 각각 다크모드 대응 스페이싱: 4px 기준, 8px, 12px, 16px, 24px, 32px... 일관성 아이콘: 240개 전부 2px 스트로크로 통일 애니메이션: 이징 커브, 타이밍, 딜레이 다 계산애플은 이걸 100명이 1년 동안 만든다. 우리는 나 혼자 2주. 심플해 보이는 건 복잡함을 숨긴 결과다. 복잡함을 정리하는 시간은 안 숨겨진다. 벤치마킹과 모방의 차이 점심 먹으면서 생각했다. 애플을 레퍼런스 삼는 건 좋다. 당연히 좋다.정보 위계가 명확하다 여백 사용이 과감하다 인터랙션이 의미 있다 일관성이 미친 수준이다근데 '애플처럼'은 다르다. 애플의 결과물을 보고 '저렇게'를 원하는 거다. 과정은 관심 없다. 벤치마킹: "애플은 왜 이 버튼을 여기 배치했을까?" 모방: "이 버튼 저기 있으니까 우리도 저기 놔." 벤치마킹: "저 여백은 어떤 호흡을 만드나?" 모방: "여백 많이 넣으면 되겠네." 벤치마킹은 원리를 배운다. 모방은 껍데기를 따른다.우리는 애플이 아니다 오후 3시. 개발팀장한테 슬랙 왔다. "디자인 언제 나와요? 다음 주 스프린트 들어가는데." 한숨 쉬었다. 애플이 할 수 있는 것:버튼 하나에 10가지 버전 테스트 A/B 테스트 위한 인프라 전담 모션 디자이너 3명 유저 리서치에 한 달 "이거 아닌 것 같은데" 하면 갈아엎기우리가 할 수 있는 것:버튼 2가지 버전 만들어서 사내 투표 구글 애널리틱스 숫자 보면서 추측 모션은 개발자가 CSS로 유저 리서치는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기 "이거 아닌 것 같은데" 하면 "일단 내보내고 수정해요"맥락이 다르다. 리소스가 다르다. 목표가 다르다. 애플은 아이폰을 판다. 우리는 SaaS 구독을 판다. 애플 유저는 프리미엄을 기대한다. 우리 유저는 가성비를 본다. 애플은 통제된 생태계다. 우리는 웹뷰 반응형이다. 4시에 다시 회의 "시안 나온 거 좀 보여주세요." 피그마 화면 공유했다. 대표님이 스크롤을 내렸다. 5초 침묵. "음... 좋긴 한데, 뭔가 좀 밋밋한 것 같지 않아요?" 왔다. 심플하게 하래서 심플하게 했더니 밋밋하다. "애플은 심플한데 임팩트가 있잖아요. 우리 거는 좀..." 참았다. 3초 참았다. "애플의 임팩트는 여백에서 나옵니다. 여백을 살리려면 정보량을 줄여야 하는데, 지금 이 화면에 들어가야 하는 정보가 23개예요. 애플은 3개 넣습니다." "아, 그래도 다 중요한 정보라서..." "그럼 임팩트는 어렵습니다." 5초 침묵. "일단 이대로 가고, 나중에 조정하죠." 회의 끝. 애플처럼의 진짜 의미 퇴근길 지하철. 생각해봤다. 대표님이 나쁜 건 아니다. '애플처럼'은 사실 이런 뜻이다: "우리 서비스가 고급스러워 보였으면 좋겠어요." "유저가 쓰기 편했으면 좋겠어요." "경쟁사보다 나아 보였으면 좋겠어요." 근데 그걸 말로 설명 못 하니까 '애플'이라는 단어로 압축한 거다. 문제는 애플이 너무 크다는 것. 애플은 디자인이 아니라 철학이다. 시스템이다. 문화다. "Think Different"를 외치는 회사가 만든 결과물을 "저거 따라해"로 접근하면 모순이다. 그래서 뭘 하나 집 와서 맥주 땄다. 현실은 이렇다:'애플처럼' 요청은 계속 들어온다 거기 담긴 기대는 정당하다 근데 조건은 안 맞다 그래도 해야 한다그럼 어떻게?번역한다 "애플처럼 = 정보 위계 명확 + 여백 활용 + 일관성"으로 풀어서 설명한다.우선순위를 정한다 전부 애플처럼 못 한다. 핵심 3개 화면만 집중한다.단계를 나눈다 1차: 구조 정리, 2차: 디테일 개선, 3차: 폴리싱. 한 번에 안 된다.레퍼런스를 구체화한다 "애플 앱스토어 상세페이지에서 '스크린샷 캐러셀' 인터랙션"처럼 콕 집어서 이야기한다.기대치를 조정한다 "애플 수준은 어렵지만, 이 정도 개선은 가능합니다" 대안을 제시한다.금요일 오후 일주일 지났다. 수정 7번 거쳤다. 최종 시안 발표했다. "오, 훨씬 나아졌네요. 깔끔하고 좋아요." 대표님이 웃었다. 애플처럼은 아니다. 근데 우리답긴 하다. 정보 위계는 잡혔다. 여백은 전보다 과감하다. 일관성도 생겼다. 완벽하진 않다. 그래도 2주 전보단 훨씬 낫다. 퇴근하면서 아이폰 홈 화면 봤다. 애플 앱들 보다가 우리 앱 눌렀다. 나쁘지 않다. 진짜로. '애플처럼'은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다. 거기서 배운 걸 우리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게 내 일이다. 대표님은 계속 '애플처럼'이라고 말할 거다. 나는 계속 그걸 번역할 거다. 그게 디자이너다.내일 월요일이면 또 '구글처럼'이 나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