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디자이너인데, 왜 나도 모르는 결정을 혼자 해야 할까

리드디자이너인데, 왜 나도 모르는 결정을 혼자 해야 할까

리드인데 왜 나만 모르지

오늘 아침 슬랙 DM이 세 개 떴다.

“최디자님, 이 버튼 색상 어떻게 할까요?” “최디자님, 이 플로우 이대로 진행해도 될까요?” “최디자님, 디자인 시스템 컬러 토큰 수정해도 돼요?”

나도 모르겠는데.

리드 된 지 8개월. 월급은 그대로인데 질문은 두 배로 늘었다. 웃긴 건, 다들 내가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나도 매일 고민하는데.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어제까지만 해도 이 방향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또 아닌 것 같고.

답장은 30분 뒤에 했다. “일단 A안으로 가보자. 테스트해보고 피드백 받으면 수정하면 돼.” 확신 없는 문장. 근데 확신 있는 척 보내야 한다. 그게 리드니까.

회의실에서 혼자 결정하는 시간

오후 3시. 기획자, 개발자, PM이 모였다. 새 기능 디자인 리뷰.

“이 카드 레이아웃, 어떤 게 좋을까요?”

기획자는 A안. 개발자는 B안. PM은 “둘 다 괜찮은데요?” 시선이 나한테 온다. 결정을 기다린다.

A안은 심미적으로 더 낫다. 여백이 좋고, 타이포그래피가 깔끔하다. 근데 개발 공수가 3일 더 걸린다. B안은 기존 컴포넌트 재활용이라 1일이면 된다. 근데 디자인적으로는 타협이다.

“B안으로 가죠. 일정이 더 중요하니까.”

내 입에서 나왔다. 기획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개발자가 좋아한다. 회의는 끝났다.

혼자 남았다. 피그마 파일 앞에서 B안을 다시 본다. 맞는 결정일까. 포트폴리오에 넣고 싶지 않은 디자인을 내가 골랐다. 리드니까. 일정을 지켜야 하니까. 팀을 생각해야 하니까.

근데 이게 맞나.

정답 없는 질문들

리드가 되고 나서 깨달은 것. 정답이 있는 질문은 애초에 나한테 안 온다.

“이 아이콘 사이즈 몇 px이 좋아요?” 같은 건 주니어가 스스로 정한다. 24px, 20px, 결정하고 진행한다. 디자인 시스템에 있으니까.

나한테 오는 건 이런 거다.

“전체 UI 톤앤매너를 바꿔야 할까요? 지금 트렌드는 더 미니멀한데.” “개발 리소스가 없어요. 디자인을 단순화할까요, 일정을 밀까요?” “대표님이 이 컬러가 별로래요. 설득할까요, 바꿀까요?”

정답이 없다. 아니, 정답이 여러 개다. 각자의 관점에서는 다 맞는 말이다. 근데 누군가는 정해야 한다. 그게 나다.

어제는 개발팀 리드한테 DM을 보냈다. “형, 이런 거 고민될 때 어떻게 해요?” 답장이 왔다. “그냥 정해. 틀려도 돼. 안 정하는 게 제일 나쁨.”

맞는 말이다. 근데 쉽지 않다.

혼자 결정하고 혼자 책임지기

지난달에 메인 화면 리뉴얼을 결정했다. 사용자 피드백도 좋았고, 데이터도 긍정적이었다. 팀원들한테도 컨펌 받았다. “좋아요, 최디자님!” 다들 동의했다.

2주 뒤 A/B 테스트 결과. CVR이 1.2% 떨어졌다.

대표님이 물었다. “왜 떨어진 거죠?” 기획자가 말했다. “디자인이 바뀌어서 그런가요?” 개발자가 말했다. “원래 디자인이 더 나았나 봐요.”

그 순간 알았다. 결정은 같이 했어도, 책임은 내가 지는 거구나.

“제가 다시 분석해볼게요.”

회의실을 나왔다. 복도에서 잠깐 멈췄다. 심호흡 세 번. 화장실 가서 물 마셨다. 거울을 봤다. 피곤해 보인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피그마를 켰다. 원래 버전을 다시 봤다. 리뉴얼 버전을 다시 봤다. 히트맵 데이터를 다시 봤다. 혼자 원인을 찾았다.

결국 찾았다. CTA 버튼의 위치가 문제였다. 스크롤 없이 보이는 영역에서 10px 벗어났다. 작은 차이. 근데 모바일에서는 큰 차이.

수정했다. 재배포했다. 1주일 뒤 CVR 회복. 아무도 칭찬 안 한다. 당연한 거니까.

리드인데 누구한테 물어봐

제일 힘든 건 이거다. 내가 모를 때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것.

주니어 때는 좋았다. 막히면 선배한테 물어봤다. “언니, 이거 어떻게 하면 좋아요?” 답을 받았다. 배웠다. 성장했다.

지금은 내가 선배다. 다들 나한테 물어본다. 근데 나도 모르겠을 때는?

외부 커뮤니티에 물어볼까. “저 리드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근데 너무 구체적이면 회사 일 유출이고, 너무 추상적이면 도움이 안 된다.

남자친구한테 물어볼까. 개발자니까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근데 회사가 달라서 맥락을 다 설명해야 한다. 설명하다 보면 “아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하게 된다.

동기한테 물어볼까. 대기업 다니는 친구. 근데 걔네는 시스템이 있다.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있다. 우리 회사랑 다르다.

결국 혼자 생각한다. 침대에 누워서. 샤워하면서. 출근길 지하철에서. 답을 찾는다. 아니, 답을 만든다. 그게 리드구나.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어제 디자이너 모임에 갔다. 친구 넷이서 만났다. 다들 경력 비슷하다.

“요즘 어때?”

한 친구가 말했다. “나 다음 달에 시니어로 올라가. 근데 뭐가 달라지는지 모르겠어.” 다른 친구가 말했다. “나는 아직 주니어 일만 해. 배울 게 많아.”

내가 말했다. “나는… 매일 결정만 하는 것 같아. 근데 뭐가 맞는지 모르겠어.”

다들 공감했다. “리드 힘들지?” “책임만 늘어나지?” “월급은 안 오르는데?”

맞다. 다들 안다. 근데 해결책은 없다.

집에 와서 생각했다. 왜 이렇게 힘들까. 왜 나만 이런 것 같을까.

검색했다. “리드 디자이너 힘든 점” “디자인 리더십 외로움” 영어로도 검색했다. “Lead designer loneliness” “Design leadership stress”

글들이 나왔다. 다 비슷한 얘기였다. 정답 없는 결정. 혼자 떠안는 책임. 물어볼 사람 없는 외로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들 그렇다. 리드는 다 그렇다.

조금 위로가 됐다. 아주 조금.

그래도 정하는 사람

오늘 아침 또 슬랙이 왔다.

“최디자님, 이 인터랙션 어떻게 할까요?”

커피를 마셨다. 피그마를 켰다. 파일을 봤다. 10분 생각했다.

“이렇게 해보자. 프로토타입 만들어서 내일 리뷰하자.”

확신은 70%다. 나머지 30%는 불안이다. 근데 보냈다. 안 정하는 것보다 낫다.

리드라는 게 이런 거구나. 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답을 정하는 사람. 틀릴 수 있어도 정하는 사람. 책임지는 사람.

월급이 안 오른 게 좀 억울하긴 하다. 리드 수당이라도 줬으면 좋겠다. 근데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이거다. 내가 정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 정한다. 프로젝트가 멈춘다. 팀이 헤맨다.

그래서 오늘도 정한다. 확신 없어도. 외로워도. 정답 모르겠어도.

피그마 파일 이름을 바꿨다. “Final_v8” → “Final_v9”

어차피 v10도 나올 거다. 완벽한 건 없으니까.

외로움의 무게

점심 먹고 돌아왔다. 팀원 둘이랑 같이 먹었다. 파스타 맛있었다.

대화 중에 한 명이 물었다. “언니는 고민 없어 보여요. 결정할 때 확신 있어 보이던데.”

웃었다. “그럴 리가. 매일 고민해.”

“진짜요? 전혀 몰랐어요.”

그렇게 보이는구나. 확신 있는 척이 통하는구나.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이게 리드의 일인가. 불안해도 불안한 척 안 하기. 모르겠어도 아는 척 하기. 아니, 아는 척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기.

책상에 앉았다. 모니터를 켰다. 오늘 결정해야 할 게 세 개 더 있다.

하나씩 본다. 하나씩 판단한다. 하나씩 결정한다.

외롭다. 맞다. 근데 이게 내 일이다.


정답은 모르겠지만, 오늘도 정해야 한다. 그게 리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