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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Dec, 2025
지라 티켓을 열었을 때 처음부터 느껴지는 중력
지라 티켓을 열었을 때 처음부터 느껴지는 중력 아침 9시 40분. 노트북을 켰다. 슬랙 알림 27개. 일단 무시. 피그마 먼저 켜야지... 했는데 손이 지라로 간다. 이게 루틴이다. 매일 아침의 의식. 지라를 열면 무언가 내려앉는 기분이 든다. 중력 같은 거.티켓 숫자가 곧 무게 오늘 내 이름이 붙은 티켓은 14개. In Progress 5개, To Do 7개, Review 2개. 숫자만 봐도 어깨가 무겁다. 티켓 하나하나가 돌멩이 같다. 배낭에 담긴 돌. 하나씩 꺼내야 집에 갈 수 있다. 기획자 민준이가 어제 저녁에 티켓 3개를 더 만들었다. Priority: High. Due date: 이번 주 금요일. 금요일이 3일 남았는데 High가 3개. 이미 High가 5개였는데. High의 인플레이션.지라 없을 때가 더 나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땐 슬랙으로 요청 받고, 노션에 리스트 만들고. 지금? 티켓이 날 찾아온다. Assignee: 최디자. 체계가 주는 압박 지라는 투명하다. 너무 투명해서 문제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다 보인다. 얼마나 안 하고 있는지도 다 보인다. 월요일에 만든 티켓이 아직 In Progress에 있으면 대표님이 스탠드업 미팅에서 물어본다. "디자 씨, 이거 진행 상황이...?" 그럼 나는 말한다. "아, 네. 거의 다 됐어요. 오늘 올릴게요." 거짓말이다. 50%도 안 했다. 근데 티켓 상태는 정직하다. Updated: 3 days ago.개발자 서진이는 티켓을 빠르게 처리한다. 하루에 5개씩 Done으로 옮긴다. 나는 하루에 2개 하면 잘한 날이다. 디자인은 시간이 걸린다고 변명하고 싶다. But 티켓은 물어보지 않는다. Story Point: 3. Due date: 2024-01-25. 그게 전부다. 우선순위의 혼란 High가 8개면 뭐가 먼저인가. 전부 High면 전부 긴급이면 뭐가 긴급인가. 나는 기획자들에게 물었다. "이 중에 진짜 먼저 해야 하는 거 뭐예요?" 민준: "음... 다 중요한데..." PM 수현: "일단 대시보드 개편이 제일 급해요." 대표님: "결제 플로우 먼저 보고 싶은데." 세 개 다 High Priority다. 결국 내가 정해야 한다. 그래서 지라를 닫았다. 우선순위를 정하려면 지라를 보면 안 된다. 지라를 보면 티켓만 보인다. 티켓 너머의 맥락은 안 보인다. 나는 노션을 켰다. 내 개인 페이지에 정리했다.이번 주 목표: 결제 플로우 완성 내일까지: 대시보드 와이어프레임 다음 주: 마이페이지 개편그리고 지라 티켓에 코멘트를 달았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어려울 것 같아요. 다음 주 화요일 가능할까요?" 민준이 답했다. "네, 괜찮아요!" 아니 그럼 왜 Due date를 금요일로 잡았나. 완료의 쾌감, 미완의 죄책감 티켓을 Done으로 옮길 때 기분이 좋다. 드래그해서 Done 컬럼에 떨어뜨리면 뭔가 사라지는 기분. 돌멩이 하나 꺼낸 기분. 근데 그 기쁨은 2초다. To Do 컬럼에 새 티켓이 2개 생겼다. 자동 생성 봇이 만든 반복 작업 티켓. "Weekly Design System Update" 이 티켓은 매주 생긴다. 나는 매주 Skip한다. 누가 디자인 시스템 업데이트를 궁금해하나. 개발자들은 내가 만들어둔 컴포넌트도 안 쓴다. Done 컬럼에 쌓인 티켓을 볼 때는 뿌듯하다. 이번 스프린트에 12개 완료. 지난주보다 2개 많다. 근데 바로 다음 스프린트 티켓이 보인다. 15개. 끝이 없다. 시스템이 사람을 만들 때 지라를 쓰기 전에는 일이 더 자유로웠다. 뭘 할지 내가 정했다. 물론 무질서했다. 놓치는 것도 많았다. 지금은? 티켓이 날 정한다. Assignee로 지정되면 해야 한다. Due date가 지나면 빨갛게 변한다. 체계는 도움이 된다. 맞다. 안 까먹는다. 명확하다. But 체계 때문에 내가 사라진다. 예전엔 아침에 출근해서 생각했다. "오늘은 이 페이지 디자인을 예쁘게 만들어보자." 지금은 생각한다. "오늘은 High Priority 3개를 처리하자." 디자인이 티켓이 됐다. 예쁘게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라 티켓을 닫는 게 목표가 됐다. 개발자 서진이가 말했다. "지라 보면 일한 것 같은데 실제론 별로 안 한 느낌 들지 않아요?" 맞다. 티켓은 완료했는데 성취감은 없다. Done은 늘었는데 작품은 없다. 중력을 견디는 방법 나는 지라를 하루에 세 번만 본다. 아침, 점심, 퇴근 전. 그 외 시간엔 피그마만 켠다. 티켓을 보지 않고 디자인을 본다. 물론 슬랙에서 티켓 링크가 날아온다. "@디자 이 티켓 확인 부탁드려요." 나는 이모지로 답한다. 👍 나중에 본다. 오후 3시부터 6시까지는 딥 워크 시간이다. 슬랙 알림 꺼둔다. 지라 탭 닫는다. 미팅 잡지 말라고 캘린더에 써뒀다. 이 시간에는 티켓이 아니라 결과물을 만든다. Figma 파일을 연다. 색을 고른다. 레이아웃을 잡는다. 이때가 진짜 일하는 시간이다. 6시에 지라를 다시 연다. 완성한 걸 티켓에 업로드한다. 코멘트를 단다. "초안 완성했습니다. 피드백 부탁드려요." 그럼 티켓이 Review로 간다. 내 손을 떠난다. 가벼워진다. 체계성이 도움이 되려면 지라가 나쁜 건 아니다. 체계가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체계에 먹히는 거다. 티켓이 일이 되는 거다. 체계는 도구여야 한다. 내가 일을 정리하는 도구. 일이 나를 정리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나는 이제 이렇게 한다. 월요일 아침, 지라를 연다. 이번 주 티켓을 본다. 그리고 내 노션에 옮긴다. 노션에서 내 언어로 정리한다.결제 플로우 개선: 사용자가 덜 헷갈리게 대시보드 재배치: 정보 위계 명확하게 마이페이지: 개인화 느낌 강화티켓 번호는 안 쓴다. Due date도 안 쓴다. 내가 할 일을 내 언어로. 그리고 일한다. 완성되면 지라에 올린다. 지라는 기록이다. 과정이 아니라. 나는 피그마에서 일한다. 지라에서 일하지 않는다. 중력은 있다, 눌리지 않으면 된다 지라를 열 때마다 중력이 느껴진다. 여전히. 티켓 숫자가 무겁다. 여전히. But 이제는 안다. 중력에 눌려 있을 필요는 없다는 걸. 티켓은 요청이다. 명령이 아니라. Due date는 목표다. 마감이 아니라. Priority는 제안이다. 절대값이 아니라. 나는 디자이너다. 티켓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라는 내가 만든 걸 기록하는 곳이다. 내가 지라를 채우는 거다. 지라가 나를 채우는 게 아니라. 오늘도 티켓 3개를 Done으로 옮겼다. 결제 플로우 개선안 완성. 사용자가 덜 헷갈리는 걸 만들었다. 티켓은 완료됐고 작품도 나왔다.체계는 내가 쓰는 거다. 체계가 날 쓰는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