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폴리오 업데이트는 언제 할 건가요? 라고 묻는 동기에게
- 09 Dec, 2025
동기의 질문
“포트폴리오 업데이트는 언제 할 건가요?”
카톡이 왔다. 동기 지영이다. 같이 입사했던 애. 지금은 다른 회사에 있다.
나는 답장을 안 했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서.
“바빠서 못 했어” 치려다가 지웠다. 변명 같아서. “곧 할 거야” 치려다가 지웠다. 거짓말 같아서.
그냥 이모티콘 하나 보냈다. 웃는 얼굴.
지영이는 3개월 전에 이직했다. 연봉 2천 올렸다고 했다. 포트폴리오 정리하는 데 한 달 걸렸다고.
나는 2년째 안 만지고 있다.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4월
포트폴리오 파일 이름이 “ChoiDesigner_Portfolio_2022_final_real_final.pdf”다.
열어봤다. 오랜만에.
프로젝트가 4개 있다. 전 회사 거 2개, 지금 회사 거 2개.
지금은 2024년 11월이다.
2년 반 동안 뭐 했나. 프로젝트는 7개 더 했다. 런칭한 것만.
디자인 시스템 만들었다. 컴포넌트 230개. 온보딩 플로우 개편했다. 가입률 23% 올렸다. 어드민 페이지 전체 리뉴얼했다. CS팀이 좋아했다.
근데 포트폴리오엔 없다.
왜냐면 정리할 시간이 없었으니까.
아니, 시간은 있었다. 주말에.
근데 주말엔 피그마를 보고 싶지 않았다.

악순환
포트폴리오가 오래될수록 업데이트가 더 어렵다.
왜냐면 추가할 게 많아지니까.
많아지니까 부담스럽다. 부담스러우니까 미룬다. 미루니까 더 쌓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2년이 지나 있다.
지영이는 3개월마다 업데이트한다고 했다. 프로젝트 끝나면 바로 정리한다고.
“그때 안 하면 나중엔 기억도 안 나더라.”
맞는 말이다.
나는 6개월 전 프로젝트도 디테일이 가물가물하다. 왜 이렇게 디자인했는지, 어떤 의사결정이 있었는지.
슬랙 히스토리를 뒤져야 한다. 그것도 귀찮다.
그래서 또 미룬다.
현실은
회사에서 나는 바쁘다.
오늘도 미팅이 4개였다. 디자인 작업 시간은 3시간.
그 3시간도 온전히 집중한 건 아니다. 슬랙 메시지가 계속 왔다.
“이 버튼 색상 좀 밝게 해주세요.” “여기 여백 좀 줄여주세요.” “이거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수정 가능할까요?”
수정하고, 버전 올리고, 핸드오프하고.
하루가 간다.
퇴근하면 7시 반이다. 집에 오면 8시 반.
씻고, 밥 먹고, 넷플릭스 켜면 10시.
포트폴리오 작업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 내일 9시 반 출근인데.
주말에 하자고 생각한다.
주말이 온다.
토요일 오전엔 밀린 잠을 잔다. 오후엔 남자친구 만난다. 저녁엔 친구들 만난다.
일요일엔 다음 주 준비를 한다. 빨래하고, 청소하고.
포트폴리오는 또 다음 주로.

동기들은
지영이 말고도 물어본 애들이 있다.
“요즘 뭐 해? 포폴 좀 보여줘.”
보여줄 게 없다. 2년 전 파일을 보내기엔 민망하다.
“요즘 너무 바빠서…” 라고 답한다.
사실이다. 근데 변명처럼 들린다.
동기들은 대부분 이직했다. 1~2년 주기로.
나만 6년째 같은 회사 아니면 2개 회사.
이직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연봉도 올리고 싶다.
근데 포트폴리오가 없으니까 지원을 못 한다.
지원을 못 하니까 이직을 못 한다. 이직을 못 하니까 연봉이 안 오른다.
또 악순환이다.
지영이는 말했다. “이직 생각 없어도 포폴은 계속 업데이트해야 해. 그게 곧 커리어 정리거든.”
맞는 말이다. 또.
진짜 이유
사실 시간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완벽하게 만들고 싶어서다.
포트폴리오는 나를 보여주는 거니까. 대충 만들 수 없다.
케이스 스터디 구조도 고민해야 한다. Problem - Solution - Result 순서로 갈까. Context - Process - Outcome이 나을까.
이미지 퀄리티도 신경 써야 한다. 목업은 어떤 걸 쓸까. 화면 캡처는 어느 시점 걸로 할까.
글은 또 어떻게 쓸까. 너무 길면 안 읽을 것 같고. 너무 짧으면 성의 없어 보이고.
생각만 하다가 시작을 못 한다.
시작을 못 하니까 완성을 못 한다.
지영이는 “일단 시작해. 완벽하지 않아도 돼” 라고 했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근데 나는 디자이너다. 디테일이 생명이다.
대충 만든 포트폴리오를 내보내는 건, 나를 부정하는 거 같다.
그래서 또 미룬다.
필요한 순간
지난주에 헤드헌터한테 연락이 왔다.
“관심 있으시면 포트폴리오 좀 보내주세요.”
회사가 괜찮았다. 직원 200명 규모. 시리즈 B 투자 받은 곳.
연봉 레인지도 좋았다. 7천에서 8천.
“이번 주 안에 보내드릴게요” 라고 답했다.
그날 밤에 포트폴리오 파일을 열었다.
2022년 버전.
한숨이 나왔다.
프로젝트 7개를 추가해야 한다. 최소 일주일은 걸린다.
근데 헤드헌터는 이번 주 안에 달라고 했다.
“죄송한데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실 수 있을까요?”
“채용이 급하셔서요. 다음 주 월요일까지 가능하세요?”
결국 2년 전 버전을 보냈다. “최근 진행한 프로젝트는 조만간 추가하겠습니다” 라는 멘트와 함께.
답장이 안 왔다.
당연하다. 2년 전 포트폴리오를 보내는 디자이너를 누가 뽑겠나.
그때 알았다.
포트폴리오가 없으면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다는 걸.
변명들
“요즘 너무 바빠서.” 맞다. 근데 모두가 바쁘다. 지영이도 바빴을 거다.
“NDA 때문에 못 올려서.” 일부는 맞다. 근데 전부는 아니다. 공개 가능한 프로젝트도 있다.
“회사 일이 우선이니까.” 맞다. 근데 내 커리어도 우선이다.
“주말엔 쉬고 싶어서.” 이건 진짜다. 근데 핑계다.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다.
포트폴리오를 진짜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시간을 냈을 거다.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안 옮긴 거다.
그게 2년이 됐다.
지영이의 말
“포폴이 없으면 내가 뭘 했는지 증명할 수 없어.”
지영이가 했던 말이다. 카페에서.
“회사에선 열심히 했잖아. 근데 그게 내 거로 남아있어? 회사만 성장하고 나는?”
찔렸다.
나는 2년 반 동안 프로젝트를 7개 했다.
회사 매출은 늘었다. 사용자는 늘었다. 회사는 성장했다.
근데 내 포트폴리오엔 아무것도 추가되지 않았다.
내 커리어는 그대로다.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건 2년 전까지의 일이다.
“회사는 너의 포트폴리오를 안 만들어줘. 네가 해야 해.”
맞는 말이다. 세 번째로.
오늘 밤
지영이한테 답장을 보냈다.
“이번 달 안에 할게. 진짜로.”
“ㅋㅋㅋ 믿을게. 다 되면 나한테 보여줘. 피드백 줄게.”
고맙다. 근데 부담스럽다.
이번 달은 11월이다. 남은 날이 열흘.
열흘 안에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할 수 있을까.
계산해봤다.
프로젝트 7개. 하나당 이틀이면 14일. 불가능.
그럼 핵심 프로젝트 3개만. 하나당 3일이면 9일. 가능할 수도.
주말 이틀, 평일 저녁 5일. 하루 3시간씩 투자하면.
21시간. 프로젝트 하나당 7시간.
빡빡하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일단 시작하자. 지영이 말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일단 80%만.
80%짜리 최신 포트폴리오가, 100%짜리 2년 전 포트폴리오보다 낫다.
내일부터
내일 퇴근하고 바로 시작할 거다.
넷플릭스는 꺼둔다. 핸드폰은 멀리 둔다.
프로젝트 하나를 고른다. 가장 임팩트 있었던 거.
온보딩 개편 프로젝트. 가입률 23% 올린 거.
슬랙 히스토리를 뒤진다. 기획 문서를 찾는다. 화면 캡처를 다시 한다. 목업을 만든다. 글을 쓴다. Problem부터.
하루에 조금씩.
월요일: Problem, Context 화요일: Process, Design decisions 수요일: Result, Metrics 목요일: 이미지 작업 금요일: 검토, 수정
주말에 나머지 두 프로젝트.
다음 주 월요일에 지영이한테 보낸다.
피드백 받고 수정한다.
그리고 헤드헌터한테 다시 보낸다. “업데이트된 버전입니다.”
늦었지만 보내본다.
이번엔 진짜다.
동기의 질문이 시작이었다. 이번엔 답을 만들어야 한다. 핑계가 아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