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동기가 연봉 올랐다는 SNS 게시물을 본 후

대기업 동기가 연봉 올랐다는 SNS 게시물을 본 후

인스타를 보지 말 걸

점심시간에 인스타를 열었다. 실수였다.

대학 동기 은지의 스토리가 떴다. “연봉 협상 끝! 올해도 화이팅💪” 뒤에 선명한 8천만원대 연봉 계약서 일부가 보였다. 물론 숫자는 가려놨지만, 작년에 7천이라고 했으니 계산이 됐다.

나는 5500만원이다. 작년이랑 똑같다.

은지랑 나는 같은 학교, 같은 과, 같은 해에 졸업했다. 둘 다 디자이너로 시작했다. 차이는 은지는 대기업 계열사로, 나는 스타트업으로 갔다는 것뿐이다.

6년 전 선택이었다.

국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생각났다. 8천. 5500. 2500만원 차이. 한 달이면 200만원 넘게 차이 난다. 내 월세 세 달 치다.

“디자, 밥 안 먹어?”

팀원 수현이가 물었다. 나는 숟가락을 들고 있었지만 입으로 가져가질 않았다.

“먹고 있어.”

거짓말이었다.

6년 전으로 돌아가면

2018년 겨울이었다.

은지랑 나는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둘 다 여러 회사에서 오퍼를 받은 상태였다.

“나는 S전자 계열사 갈 것 같아.” 은지가 말했다. “연봉은 좀 낮은데, 안정적이잖아.”

당시 은지 오퍼는 3800만원이었다. 내 스타트업 오퍼는 3500만원.

“나는 스타트업 갈래.” 내가 말했다.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대기업은 프로세스가 너무 많잖아.”

진심이었다. 그때는.

“그래도 넌 능력 있으니까 금방 올라갈 거야.” 은지가 웃었다.

6년이 지났다. 은지는 8천만원이 됐다. 나는 5500만원이다.

더 많이 배웠나? 글쎄.

대기업은 프로세스가 많다고 했는데, 스타트업은 프로세스가 아예 없다. 매번 즉흥이다. 디자인 시스템 만들자고 해도 일정에 밀려서 못 만든다. 개발자들은 바쁘고, 기획자들은 자꾸 바뀌고, 대표님은 애플처럼 하라고만 한다.

은지는 체계적인 디자인 시스템 안에서 일한다. 툴도 최신이고, 교육도 받고, 컨퍼런스도 회사 돈으로 간다.

나는 피그마 프로 요금도 내 돈이다.

오후에 디자인하면서도 계속 생각났다. 선택을 잘못한 건가.

스타트업의 낭만

처음 입사했을 때는 달랐다.

대표님이 직접 나를 면접했다. “우리는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단순히 디자인만 하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거죠.”

멋있었다. 정말로.

첫 달에는 서비스 전체를 다시 디자인했다. 개발자들이랑 밤새 의견 나누고, 프로토타입 만들고, 유저 테스트하고. 회사에서 자고 새벽 라면 먹고. 피곤했지만 재밌었다.

“디자님 덕분에 완전 달라졌어요!”

개발팀장이 그렇게 말했을 때, 진짜 뿌듯했다.

2년 차 때는 리브랜딩을 주도했다. 로고부터 컬러 시스템까지 전부. 대행사도 안 쓰고 내가 다 했다. 포트폴리오에 넣을 만한 프로젝트였다.

3년 차 때 디자인 리드가 됐다. 연봉은 4500만원으로 올랐다. 1000만원 올랐다고 좋아했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4년 차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회사가 커지면서 투자를 받았다.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게 많아졌다. “성장”이라는 단어가 매일 들렸다.

디자인보다 속도가 중요해졌다. “일단 빨리 만들어주세요. 나중에 개선하죠.” 나중은 안 왔다.

5년 차에 5500만원이 됐다. 500만원밖에 안 올랐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요.” 대표님이 미안해했다.

6년 차인 지금도 5500만원이다. “올해는 투자 유치가 중요해서요.”

낭만은 어디로 간 걸까.

숫자로만 보면

계산을 해봤다.

6년간 내가 번 돈: 약 2억 7천만원 6년간 은지가 번 돈: 약 3억 5천만원

8천만원 차이다.

여기에 복리후생을 더하면 더 벌어진다. 은지는 4대 보험 회사가 다 내주고, 점심 식대 지원받고, 교통비 나오고, 연차도 자유롭게 쓴다.

우리는 점심 각자 사 먹는다. 구내식당 같은 건 없다. 연차는 자유롭게 쓴다고 하는데, 팀원이 3명뿐이라 눈치 보인다.

대기업은 스톡옵션도 있다던데, 우리도 있긴 하다. 근데 회사가 상장할 가능성은 솔직히 모르겠다.

은지는 강남에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전세 3억에 대출 1억 받아서. “회사 다니면서 모았어.”

나는 마포 원룸에 월세로 산다. 65만원. 6년째 월세다. 전세 대출받으려고 해도 연봉이 낮아서 한도가 적다.

“그래도 네가 더 자유롭잖아.”

남자친구가 그렇게 말했다. 걔도 개발자인데, 스타트업 다닌다. 연봉은 나보다 좀 높다. 6800만원.

“자유로워서 뭐해. 돈이 없는데.”

쏘아붙였다. 나도 놀랐다. 이렇게까지 예민한 줄 몰랐다.

저녁에 혼자 있으면서 또 계산했다. 만약 내가 대기업 갔으면, 지금쯤 전세 살고, 적금도 더 많이 들고, 부모님한테 용돈도 더 드릴 수 있었을 것이다.

대신 뭘 얻었나.

피그마를 하루 10시간 켜놓는 일상? 기획이 세 번 바뀌는데도 웃으면서 수정하는 인내심? 개발자한테 ‘이거 구현 안 돼요’ 들었을 때 타협하는 기술?

이게 성장인가.

은지를 만났다

주말에 은지를 만났다. 오랜만이었다.

홍대 카페에서 만났다. 은지는 여전히 밝았다. 새로 산 맥북을 자랑했다. 회사 지원금으로 샀다고.

“너는 어때? 요즘 바빠?” 은지가 물었다.

“응. 프로젝트가 많아서.”

“대기업은 프로젝트가 느려. 결재 받는 것만 한 달 걸려.” 은지가 웃었다. “너는 빨리빨리 하니까 좋겠다.”

그 순간 말하고 싶었다. 빠른 게 좋은 게 아니라고. 제대로 못 만든다고. 디자인 시스템도 없고 문서화도 안 되고 매번 처음부터 만든다고.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안정적이니까 좋겠다.” 내가 말했다.

“안정적이긴 한데, 재미는 없어.” 은지가 한숨 쉬었다. “승진 경쟁도 빡세고. 다들 눈치 보면서 일해.”

우리는 서로 부러워하고 있었다.

“너는 자유롭게 디자인하잖아. 대표님이랑 바로 이야기할 수 있고.” 은지가 말했다.

맞다. 나는 대표님이랑 직접 이야기한다. 은지는 팀장-본부장-임원 거쳐야 한다.

“너는 연봉 걱정 없잖아.” 내가 말했다.

맞다. 은지는 매년 연봉이 오른다. 회사 규정이 있으니까.

우리는 각자 다른 것을 포기했다.

카페를 나오면서 은지가 물었다. “후회해?”

“글쎄.”

진짜 모르겠다.

다시 선택하라면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웠다.

만약 다시 2018년으로 돌아간다면, 뭘 선택할까.

대기업을 가면: 지금쯤 8천만원 받고, 전세 살고, 체계적인 프로세스 안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의견이 반영되려면 몇 달 걸리고, 승진 경쟁하면서 눈치 보면서 일할 것이다.

스타트업을 가면: 지금처럼 5500만원 받고, 월세 살고, 자유롭게 의견 내지만 그게 항상 좋은 방향은 아니고, 연봉 걱정하면서 살 것이다.

둘 다 trade-off다.

문제는 나는 이미 스타트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6년을 여기서 보냈다.

지금 대기업으로 이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능은 할까. 6년 차 스타트업 디자이너가 대기업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을까.

포트폴리오를 열어봤다. 마지막 업데이트가 1년 전이다. 정리해야 하는데 계속 미뤘다.

링크드인을 열었다. 대기업 채용 공고들이 보인다. “5년 이상 경력, 체계적인 디자인 시스템 경험.”

우리 회사는 디자인 시스템이 없다. 만들자고 했는데 일정에 밀려서 못 만들었다. 이게 내 경력에 불리하게 작용할까.

새벽 2시까지 생각하다가 잤다.

월요일 아침

출근했다. 피곤했다.

슬랙을 열었다. 대표님 메시지가 떠 있었다. “디자님, 오늘 투자사 미팅 있어요.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부탁드려요.”

또다.

지라를 열었다. 티켓이 17개다. 우선순위가 전부 ‘높음’이다.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개발팀 채널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디자님이 만든 새 컴포넌트 너무 좋아요. 개발하기 편해졌어요👍”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수현이가 출근하면서 커피를 건넸다. “언니, 주말에 뭐 했어요?”

“친구 만났어.”

“재밌었어요?”

“응. 그럭저럭.”

오전 미팅에서 대표님이 말했다. “이번 분기 목표는 MAU 50% 증가입니다. 디자인팀도 힘내주세요.”

연봉 인상은 언제쯤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점심시간에 또 은지 생각이 났다. 8천만원. 2500만원 차이.

그런데 이상한 건, 아침에 받은 개발자 피드백이 계속 생각났다는 거다. “개발하기 편해졌어요.”

내가 만든 게 누군가한테 도움이 됐다.

대기업에서도 이런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내 디자인이 수많은 결재 과정을 거치다가 흐지부지될까.

오후에 디자인하면서 생각했다. 나는 왜 디자이너가 됐을까.

돈 때문은 아니었다. 뭔가를 만드는 게 좋아서였다. 내가 만든 화면을 사람들이 쓰는 게 신기해서였다.

6년 전 선택은 틀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단지 지금이 힘든 거다.


결국 비교는 끝이 없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뭘 배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