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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terest에서 2시간을 보내다가 침대에 누운 후 '내일 할 일' 생각하며 잠드는 밤

Pinterest에서 2시간을 보내다가 침대에 누운 후 '내일 할 일' 생각하며 잠드는 밤

영감인지 회피인지 퇴근하고 집에 왔다. 7시 반. 샤워하고 배달음식 시켰다. 8시. 이제 좀 쉬어야 하는데 자동으로 Pinterest를 켰다. "오늘만 30분만 볼게." 거짓말이다. 매일 이런다. 검색창에 'dashboard UI dark mode'를 쳤다. 핀 하나를 저장하면 알고리즘이 비슷한 걸 20개 더 보여준다. 저장, 스크롤, 저장, 스크롤. 손가락이 기계처럼 움직인다. 어느새 'minimalist portfolio design'을 검색하고 있다. 회사 프로젝트랑 관계없다. 그냥 예쁘다. 그냥 보고 싶다.시계를 봤다. 10시 반. 2시간이 사라졌다. 보드에는 핀이 347개 저장되어 있다. '프로젝트 레퍼런스' 폴더다. 이 중에 실제로 써먹은 건 5개도 안 된다. 나머지는 '언젠가'를 위한 수집이다.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래도 저장한다. 수집이라는 안전감 디자이너한테 레퍼런스는 마약이다. 회사에서 기획서를 받으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레퍼런스 찾기다. 백지에서 시작하는 건 무섭다. '비슷한 거' 있으면 일단 마음이 편하다. Pinterest, Dribbble, Behance, Mobbin. 탭을 10개 열어놓고 스크롤한다. "이 톤 괜찮네", "이 레이아웃 참고할까", "이 인터랙션 좋은데". 저장하고, 정리하고, 폴더를 만든다. 이 과정이 실제 디자인보다 더 오래 걸린다. 왜냐면 이건 '일하는 척'이기 때문이다. 레퍼런스를 모으는 동안은 실패하지 않는다. 아직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으니까. 평가받을 것도 없다. 안전하다.문제는 이게 중독이 된다는 거다. 저녁 9시, 내일 회의 자료 만들어야 하는데 레퍼런스를 또 찾는다. "하나만 더." 11시가 된다. 주말, 사이드 프로젝트 시작하려고 했는데 3시간 동안 핀만 저장한다. 정작 Figma는 안 켰다. 수집은 쉽다. 생산은 어렵다. 그래서 수집만 반복한다. 완벽한 레퍼런스는 없다 Pinterest를 2시간 보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세상의 모든 디자이너가 나보다 잘하는 것 같다. 핀마다 완벽하다. 여백 완벽, 컬러 완벽, 타이포 완벽. 내가 만드는 건 왜 이렇게 별로일까. 그런데 알고 있다. 저 핀들도 실제로는 다르다는 걸.클라이언트 피드백 30번 받아서 망가진 버전은 안 올라온다 개발 제약 때문에 타협한 결과는 안 보인다 실제 데이터 들어가면 깨지는 레이아웃은 숨겨져 있다Pinterest에 올라오는 건 '결과물'이 아니라 '포장'이다. 가장 예쁜 화면 하나만 캡처해서 올린다. 실제 서비스는 저것보다 못하다. 근데 새벽에 보면 이걸 잊는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하지." 자괴감만 쌓인다.레퍼런스는 도구다. 목적이 아니다. 근데 나는 종종 목적을 잊는다. '좋은 디자인'을 보는 게 목표가 된다. 정작 '내 디자인'은 안 한다. 이게 회피다. 진짜 일을 피하는 거다. 저장만 하고 안 쓰는 이유 폴더를 열어봤다. '대시보드 레퍼런스' 83개. 작년에 모았다. 프로젝트는 끝났다. 이 중에 5개 정도만 실제로 참고했다. '온보딩 플로우' 62개. 3개월 전 수집. 온보딩은 기획이 바뀌어서 엎어졌다. '컬러 팔레트' 124개. 이건 취미로 모은다. 쓸 일 없다. 저장할 때는 다 필요할 것 같다. "이거 나중에 써먹어야지." 근데 나중은 오지 않는다. 왜냐면 레퍼런스는 '상황'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멋진 대시보드 디자인을 찾았다. 근데 우리 서비스는 데이터가 20배 더 많다. 그 레이아웃은 안 맞는다. 감각적인 컬러 조합을 발견했다. 근데 우리는 기업용 B2B 서비스다. 저 톤은 너무 캐주얼하다. 레퍼런스는 '영감'이지 '답'이 아니다. 근데 수집할 때는 답처럼 느껴진다. 착각이다. 진짜 필요한 건 10개면 된다. 나머지 337개는 안심용이다. 내일 할 일이 머릿속을 채운다 침대에 누웠다. 11시. 내일 회의가 있다. 온보딩 플로우 개선안 발표. 준비는 70% 했다. 근데 마음이 불안하다. "스플래시 화면 애니메이션 디테일 좀 더 만들까." "튜토리얼 단계 4개가 맞나, 3개로 줄일까." "버튼 컬러 테스트 한 번 더 해볼까." 눈을 감았다. 근데 머릿속에서 Figma 화면이 떠오른다. 아트보드가 3개 있고, 컴포넌트가 정리 안 된 채로 있다. 폰을 다시 켰다. Pinterest를 열었다. 'onboarding UI'를 검색했다. 12시가 됐다. 이게 문제다. 영감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불안을 회피하는 거다. '더 좋은 레퍼런스'를 찾으면 내일 발표가 잘될 것 같은 착각. 안 그렇다. 지금 필요한 건 잠이다. 레퍼런스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규칙을 만들었다. 지키려고 노력 중이다. 1. 타이머 20분 레퍼런스 찾을 때 타이머를 켠다. 20분 후 알람. 그때 멈춘다. 더 찾고 싶어도 참는다. 완벽한 레퍼런스는 없다. 20분이면 충분하다. 2시간은 과하다. 2. 저장 개수 제한 10개 프로젝트당 레퍼런스 10개만 저장한다. 11번째부터는 기존 걸 지우고 저장한다. 진짜 좋은 것만 남긴다. 100개 모아봤자 안 본다. 3. 저장 후 바로 정리 핀 저장하면 바로 메모를 단다. "이 그리드 레이아웃 참고", "이 컬러 톤 테스트". 왜 저장했는지 안 쓰면 나중에 기억 안 난다. 쓸모없는 수집이 된다. 4. 주말에는 Pinterest 안 본다 주말은 영감이 아니라 휴식. 레퍼런스 보는 건 일이다. 일은 주중에만. 이거 지키기 제일 어렵다. 습관이 무섭다. 5. 수집보다 생산 레퍼런스 10분 봤으면, 디자인 30분은 한다. 비율을 정했다. 수집이 더 재밌다. 근데 생산해야 성장한다. 이걸 자꾸 상기시킨다. 영감은 도구다 Pinterest가 나쁜 건 아니다. Dribbble도, Behance도. 문제는 내가 거기에 중독된다는 거다. 수집이 목적이 되는 거다. 레퍼런스는 시작점이어야 한다. 도착점이 아니라.좋은 디자인을 보고 내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실제로 만들어본다이 과정이 완성되어야 의미가 있다. 1단계에서 멈추면 소비일 뿐이다. 347개의 핀을 저장했다. 근데 내 포트폴리오에는 3개가 추가됐다. 이 비율이 문제다. 내일부터는 덜 모으고, 더 만들어야겠다.저장은 쉽고, 만드는 건 어렵다. 그래서 오늘도 핀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