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From
요구사항이
- 13 Dec, 2025
요구사항이 계속 바뀌는데 일정은 그대로인 이상한 일정표
월요일 아침의 일정표 일정표를 펼쳤다. 2주. 메인 화면 리뉴얼. 가능하다고 했다. 월요일 오전, 대표님이 슬랙에 메시지를 보냈다. "온보딩 플로우도 같이 갈까요?" 물음표가 붙어있지만 질문이 아니다. 일정은 그대로다. 2주. 화요일, 기획자가 왔다. "여기에 튜토리얼 추가하면 어떨까요?" 눈이 반짝인다. 좋은 아이디어인 건 맞다. 일정은? 그대로다. 2주. 수요일, 개발팀장이 말했다. "결제 플로우도 이번에 정리하죠." 어차피 만지는 거. 2주는 여전히 2주다.목요일 오후, 나는 지라 티켓을 세고 있었다. 12개에서 23개가 됐다. 스프린트는 하나다. 스코프 크리프라는 괴물 이게 스코프 크리프다. Scope Creep. 범위가 슬금슬금 기어간다. 처음엔 작았다. "메인 화면만 바꾸자." 깔끔하다. 할 만하다. 그런데 회의를 할 때마다 뭔가 붙는다. "여기 마이크로인터랙션 넣으면 좋겠어요." "이왕이면 다크모드도." "최디자님, 이건 금방이죠?" 금방인 건 없다. 디자인에 금방인 건 없다. 컴포넌트 하나 바꾸면 12개 화면이 영향받는다. 인터랙션 하나 추가하면 프로토타입 다시 만든다. 다크모드는 컬러 토큰 전체를 재정의하는 거다.기획자는 악의가 없다. 대표님도 마찬가지다. 개발팀장도. 다들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은 거다. 이해한다. 하지만 일정표는 그걸 이해하지 않는다. 금요일 아침, 나는 타임라인을 다시 그렸다. 리얼한 걸로. 메인 화면 리뉴얼: 3일 온보딩 플로우: 2일 튜토리얼 디자인: 1.5일 결제 플로우 정리: 2일 마이크로인터랙션: 1일 다크모드: 3일 12.5일. 2주는 10일이다. 나는 이 표를 보여주지 않았다. 어차피 일정은 안 늘어난다. 스타트업에서 일정 지키는 법 6년 하면서 배운 것들이 있다. 첫째, 버퍼를 숨긴다. 2주면 3주로 잡는다. 속으로. 말은 2주라고 한다. 그래야 실제로 2주 반에 끝낸다. 처음엔 정직하게 말했다. "이건 3주 걸립니다." 그러면 "2주 안에 안 될까요?"가 돌아온다. 결국 2주로 잡힌다. 지금은 다르다. "2주요." 하고 3주 일정으로 일한다. 마지막 3일은 숨겨둔 카드다. 둘째, 스코프를 문서화한다. 월요일에 노션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번 스프린트 스코프"라고.메인 화면 리뉴얼 (5개 화면) 기존 디자인 시스템 활용 다크모드 제외 애니메이션 최소화대표님이 "온보딩도?"라고 물었을 때 이 페이지를 공유했다. "네, 가능합니다. 대신 이 중에 뭘 빼드릴까요?" 침묵. 10초. "아, 그럼 다음 스프린트에." 문서의 힘이다. 말로 하면 흐릿하다. 글로 쓰면 명확해진다. 셋째, 단계를 나눈다. 전부 다 한 번에 하려고 하면 망한다. 쪼갠다. v1: 핵심 기능만 v1.5: 인터랙션 추가 v2: 다크모드 이렇게 말하면 거부감이 덜하다. "안 돼요"가 아니라 "나중에요"니까. 기획자가 "튜토리얼은요?"라고 물었다. "좋아요. v1.5에 넣죠. 지금은 v1 집중하고요." 됐다. 다음 스프린트로 밀렸다. 넷째, 개발자를 편으로 만든다. 수요일 오후, 개발자 준혁이랑 커피 마셨다. "형, 결제 플로우도 이번에 하자는데." "에이, 우리 일정도 빡빡한데." "그쵸?" 개발자가 "일정 빡빡해요"라고 하면 무게가 다르다. 디자이너가 말하면 "디자인은 빠르잖아요"라는 말을 듣는다. 개발자가 말하면? 다들 끄덕인다. 준혁이는 회의에서 말해줬다. "결제는 다음 스프린트가 나을 것 같은데요. 이번 건 QA만 2일 걸립니다." 감사합니다 준혁 형. 다섯째, 진짜 중요한 건 양보 안 한다. 목요일, 대표님이 말했다. "메인 컬러 좀 더 밝게 할까요?" "지금 테스트한 거랑 접근성 기준 통과한 건데, 바꾸면 다시 검증해야 해요. 일정 3일 더 필요합니다." 안 바뀌었다. 디자이너는 착하면 안 된다. 전부 다 "네" 하면 일정은 지옥이 되고 결과물은 망한다. 중요한 건 지킨다. 나머지는 협상한다. 금요일 오후의 일정표 금요일 오후, 일정표는 이렇게 정리됐다. 이번 스프린트 (2주):메인 화면 리뉴얼 (5개 화면) 기존 컴포넌트 활용 라이트모드만다음 스프린트 (2주):온보딩 플로우 신규 제작 튜토리얼 추가 마이크로인터랙션3차 스프린트:다크모드 결제 플로우 개선깔끔하다. 현실적이다. 할 수 있다. 대표님이 물었다. "이렇게 나누면 언제 다 끝나요?" "6주요. 한 번에 하면 8주 걸립니다." "왜요?" "일정 밀리고, 다시 하고, 버그 나고, 고치고. 그러면 8주예요." 대표님이 끄덕였다. "오케이, 단계별로 가죠." 승리. 이게 스타트업이다. 완벽한 일정표는 없다. 있는 건 협상 가능한 일정표다. 요구사항은 계속 바뀐다. 그건 못 막는다. 하지만 일정을 지킬 순 있다. 스코프를 관리하면 된다. 월요일 아침, 새 스프린트가 시작됐다. 일정표는 깔끔하다. 화요일에 뭐가 추가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은 디자인이나 하자. 피그마 켰다. 컴포넌트 정리부터.일정은 지키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