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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 15 Dec, 2025
토요일 오전, 사이드 프로젝트 UI를 파다가 결국 포기하는 순간
토요일 10시 알람 없이 일어났다. 9시 50분. 평일보다 늦게 잔 건데 일찍 일어났다. 침대에서 인스타 열었다. 피드에 디자이너들 사이드 프로젝트가 보인다. '30일 UI 챌린지 완성!' '개인 프로젝트 런칭했습니다 🎉' 나도 해야지. 계속 미뤘는데. 일어나서 커피 내렸다. 원두는 회사 근처 카페 거. 노트북 켰다. 피그마 자동 실행된다. 회사 파일 말고 'Personal' 워크스페이스. 지난주에 만들던 독서 앱 UI. 3개월 전 파일이다. 진행률 15%.의욕은 있었다 처음엔 재밌었다. 아무도 간섭 안 하니까. '빨간색 좀 더 빨갛게'도 없고. '애플처럼'도 없고. 개발 제약도 없다. 그래서 시작했다. 5월에. 앱 컨셉: 책 기록하는 앱. 감성 있게. 무드보드부터 만들었다. Pinterest에서 3시간. 컬러 팔레트 정했다. 베이지 베이스에 딥그린 포인트. 타이포 고민했다. Pretendard? Spoqa? 결국 Pretendard. 첫 주는 일주일에 5시간씩 했다. 스플래시 화면 만들고, 온보딩 플로우 짰다. 두 번째 주는 3시간. 홈 화면 레이아웃 고민하다 끝. 세 번째 주는 1시간. 컴포넌트 하나 만들다 말았다. 그 다음은 안 열었다. 다시 열어보니 파일 열었다. 3개월 만에. 아트보드 7개. 완성된 건 2개. 컴포넌트는 버튼 하나. 스크롤 내리며 봤다. '뭐 하려던 거였지?' 플로우가 기억 안 난다. 왜 이 화면에서 이 화면으로 가는지. 메모 확인했다. '여기 인터랙션 추가' '컬러 다시 보기' '아이콘 교체 필요' ...다 기억 안 난다.한 시간 만져봤다 그래도 시작은 했으니까. 홈 화면 레이아웃 다시 잡았다. 카드형? 리스트형? 결정 못 내리고 둘 다 만들었다. 타이포 사이즈 조정했다. 16px? 18px? 0.5px 차이에 30분. 컬러 팔레트 다시 봤다. "베이지가 너무 칙칙한가?" Color Hunt 열었다. 또 1시간. 북마크한 레퍼런스 다시 봤다. "이게 더 나은데?" 레이아웃 다시 갈아엎었다. 시계 봤다. 1시. 배고프다. 점심 먹고 라면 끓여먹었다. 신라면. 유튜브 켜놨다. 디자인 브이로그. 다른 디자이너는 집중 잘한다. 타임랩스 보니까 4시간 연속. 나는 왜 안 되지. 설거지하고 다시 앉았다. 피그마 그대로 켜져 있다. "조금만 더." 아이콘 만들기 시작했다. 직접 그리면 통일감 있을 거야. 북마크 아이콘. 하트 아이콘. 플러스 아이콘. ...Feather Icons 쓸걸.오후 3시 친구한테 톡 왔다. "나와" "작업 중"이라고 답했다. "주말에도 일해? ㅋㅋ" "아니 개인 작업" "그게 그거지" ...맞는 말이다. 창 밖 봤다. 날씨 좋다. 햇빛 쨍하다. 피그마 보니까 진행률 18%. 3시간 해서 3% 늘었다. 이러면 완성까지 100시간. 주말마다 3시간씩 하면 33주. 8개월. "...미쳤나." 왜 이러나 사이드 프로젝트 하고 싶었다. 순수하게 디자인하고 싶었다. 회사에선 제약 투성이. 기획 바뀌고, 개발 안 되고, 피드백 이상하고. 여기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데. 근데 막상 자유니까 막막하다. "이게 맞나?" 물어볼 사람도 없다. 그리고 피곤하다. 평일에 피그마 50시간 봤다. 주말에 또 피그마. 모니터가 지겹다. 단축키가 지겹다. 컴포넌트가 지겹다. "디자인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포기의 순간 마우스 내려놨다. 파일 저장했다. 'Book App UI_v0.3_final_real_final' 저장하면서 알았다. 다시 안 열 거다. 지난번에도 그랬다. '카페 리뷰 앱' '운동 기록 앱' '감정 일기 앱' 전부 15% 진행에서 멈췄다. 노트북 덮었다. 창문 열었다. 밖에서 애들 노는 소리. 누군가 웃는다. "나 뭐 하는 거지." 자기합리화 사이드 프로젝트 안 해도 된다. 포트폴리오 업데이트 안 해도 산다. 회사 일만 잘하면 되지. 연봉 받고 있잖아. 다른 취미 찾으면 되지. 디자인 말고. ...근데 뭐하지? 운동? 작심삼일. 독서? 한 달에 한 권. 요리? 배달이 낫다. 결국 침대에 누워서 Dribbble 봤다. 다른 사람들 작업물. 예쁘다. 부럽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다음 주말에 하자. 저녁 남자친구한테 전화했다. "뭐 해?" "코딩. 너는?" "디자인하다가 관뒀어." "또? ㅋㅋㅋ" 웃긴대. "너는 사이드 프로젝트 잘하잖아." "나도 포기 많이 해. 안 보여줄 뿐." 그 말에 좀 위로됐다. "우리 나가자. 한강?" "좋아. 30분 후." 씻었다. 거울 봤다. 토요일인데 하루 종일 집. "이래서 번아웃 오는 거야." 한강에서 치맥 시켰다. 해 지는 거 봤다. "요즘 힘들어?" 남친이 물었다. "응. 근데 뭐가 힘든지 모르겠어." "번아웃 아냐?" "번아웃은 일 많이 해야 오는 거 아냐?" "일 안 해도 와. 의미 없으면." 맞는 말인가. "사이드 프로젝트 왜 해?" "...포폴 때문에? 성장하려고?" "그거 의무잖아. 취미가 아니라." 또 맞는 말이다. "그럼 어떡해?" "쉬든가. 진짜 하고 싶은 거 하든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데." "모르겠으면 아무것도 안 하면 돼." 집 가는 길 버스에서 생각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의무로 만들었다. '해야 해' '안 하면 뒤처져' 그래서 재미없었다. 회사 일이랑 똑같았다. 디자인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디자인 때문에 지친다. 일과 취미의 경계. 둘이 같으면 취미가 없다. 그럼 나는 뭘 좋아하지? 버스 창밖 봤다. 불 켜진 건물들. 저 안에도 누군가 야근한다. 토요일인데. 일요일 계획 일요일엔 피그마 안 켠다. 노트북 안 연다. 뭐 하지? 산책? 전시? 영화? ...모르겠다. 일단 자자. 집 도착했다. 노트북 가방에서 안 꺼냈다.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 봤다. 습관적으로 Behance. "아 진짜." 껐다. 눈 감았다. 내일은 디자이너 아닌 날로 살아보자.토요일도 일처럼 느껴지면, 그건 쉬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