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예정 없던 긴급 미팅이 잡혔을 때

오후 3시, 예정 없던 긴급 미팅이 잡혔을 때

오전 10시 30분 출근했다. 슬랙 확인. 지라 티켓 14개. 한숨. 오늘은 집중할 수 있는 날이다. 미팅이 하나도 없다. 캘린더를 세 번 확인했다. 비어있다. 완벽하다. 어제부터 시작한 신규 기능 UI. 버튼 배치, 컬러 톤, 타이포그래피 위계. 머릿속에 다 그려져 있다. 오늘 안에 끝낼 수 있다. 피그마를 켰다. 파일을 열었다. 손이 가벼웠다. 컴포넌트 정리부터. 버튼 사이즈 8px씩 증가. 16, 24, 32, 40. 리듬이 있어야 한다. 패딩은 좌우 16, 상하 12. 아니다. 상하도 16으로 맞추자. 정사각형에 가까운 게 안정적이다. 프라이머리 컬러. #4A90E2. 너무 흔하다. 채도를 10 올렸다. #4A9AFF. 좀 낫다. 명도는 그대로. 접근성 확인. WCAG AA 통과. 좋다.타이포그래피. 헤드라인은 Pretendard Bold 24px. 본문은 Regular 16px. 행간은 1.6. 자간은 -0.02em. 숨쉬는 느낌. 30분이 지났다. 몰입이다. 이때가 제일 좋다. 오후 2시 47분 슬랙 알림. "@최디자 3시에 긴급 미팅 잡았습니다. 대표님이 봐야 한다고 하셔서요." 손이 멈췄다. 캘린더를 봤다. 13분 전에 추가된 이벤트. "신규 기능 방향 논의 (긴급)". 참석자 7명. 한숨이 나왔다. 지금 정리하던 컴포넌트. 레이아웃 그리드. 타이포그래피 스케일. 머릿속에 있던 맥락. 다 날아갈 예정이다. 저장했다. 파일명 끝에 "_진행중_0247" 붙였다. 나중에 돌아왔을 때 어디까지 했는지 알아야 한다. 물 한 잔 마셨다. 화장실 다녀왔다. 10분 남았다. 노션 페이지 열었다. 오늘 했던 작업 정리. 버튼 컴포넌트 4가지 사이즈 정리 프라이머리 컬러 조정 (#4A9AFF) 타이포그래피 스케일 1차 완료 다음: 카드 컴포넌트, 인풋 필드메모 안 해두면 까먹는다. 미팅 끝나고 돌아왔을 때 "내가 뭐 하고 있었지?" 이게 제일 답답하다.오후 3시 2분 회의실 입장했다. 7명 중 4명 도착. 노트북 열었다. 피그마 켜뒀다. 뭘 보여달라고 할지 모른다. 대표님이 들어왔다. 기획자 민수가 화면 공유 시작했다. "이번에 새로 들어간 기능인데요. 대표님이 어제 경쟁사 앱 보시고 우리도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화면에 뜬 건 경쟁사 앱 캡처본. 3개. 다 다른 스타일. "이 느낌으로 가면 좋겠어요. 근데 우리만의 색깔도 있어야 하고." 우리만의 색깔. 이 단어 나오면 회의 30분 추가다. 대표님이 말했다. "디자인적으로 어때요? 최디자님." 준비 안 된 질문이다. 3분 전에 처음 본 화면이다. "일단... 세 개가 다 다른 방향인데, 저희가 가져갈 건 어떤 쪽일까요?" "다 섞어서요. A는 레이아웃이 좋고, B는 컬러가 괜찮고, C는 애니메이션이 마음에 들어서." 다 섞기. 불가능하다. 안 어울린다. 입 밖으로 나온 말. "넵. 한번 작업해보겠습니다." 오후 3시 51분 회의 끝났다. 49분 걸렸다. 결론: 세 가지 스타일 섞은 목업 3개 내일까지. 내일까지. 오늘 하던 작업은 언제 끝내지. 자리 돌아왔다. 노션 메모 봤다. "다음: 카드 컴포넌트, 인풋 필드" 기억이 안 난다. 50분 전 나는 뭘 생각하고 있었나. 피그마 파일 열었다. "_진행중_0247". 버튼이 놓여있다. 4가지 사이즈. 그렇지. 이거 하고 있었다. 근데 왜 하고 있었지. 다음 스텝이 뭐였지. 노션 다시 봤다. "카드 컴포넌트". 아. 버튼 끝나고 카드 할 예정이었다. 버튼은 끝난 건가. 아니다. 호버 상태 아직이다. 디스에이블 상태도. 마우스 올렸다. 손이 안 움직인다.오후 4시 20분 다시 시작했다. 버튼 호버 상태. 배경 어둡게. 10% 더 어둡게. 아니다. 5%. 자연스러워야 한다. 트랜지션 0.2초. 부드럽게. 10분 걸렸다. 오전 같았으면 3분이다. 머리가 회의실에 있다. 경쟁사 A, B, C. 섞어야 한다는 것. 내일까지. 집중이 안 된다. 슬랙 알림. 개발자 준호. "디자님 저번에 주신 버튼 패딩이요. 16px 맞죠?" "네. 상하좌우 다 16이요." "근데 이전 버튼은 좌우 12였는데, 바뀐 건가요?" "아... 오늘 수정한 거예요. 컴포넌트 통일하려고요." "아 그럼 이미 개발 들어간 부분도 다 수정해야 하나요?" 멈췄다. 이미 개발 들어갔다. 모르고 수정했다. "...제가 확인하고 다시 드릴게요." 창 닫았다. 한숨. 오전에 수정한 버튼. 개발 확인 안 하고 했다. 이제 되돌려야 하나. 아니면 개발자한테 수정 부탁해야 하나. 머리 아프다. 오후 5시 15분 컨텍스트 스위칭. 대학 때 배운 용어다. 컴퓨터가 여러 프로세스 동시에 처리할 때. 프로세스 전환하면서 생기는 오버헤드. 사람도 똑같다. 오전에 하던 작업. 머릿속 맥락. 다음에 뭐 할지, 왜 이렇게 만들고 있는지, 어떤 문제를 풀고 있는지. 다 있었다. 미팅 하나로 날아갔다. 돌아와서 복구하는 시간. 30분. 1시간. 그 시간도 생산성이다. 미팅 49분 + 복구 30분 = 79분. 1시간 19분 손해. 오늘 미팅 하나. 어제는 세 개였다. 평균 두 개씩이면 하루 2시간 반. 일주일이면 12시간 반. 한 달이면 50시간. 50시간이면 프로젝트 하나 끝낸다. 계산하니까 더 우울하다. 오후 6시 30분 오늘 한 일 정리. 완료:버튼 컴포넌트 4가지 사이즈 프라이머리 컬러 조정 타이포그래피 스케일 1차미완료:카드 컴포넌트 인풋 필드 호버/디스에이블 상태들추가된 일:경쟁사 벤치마킹 목업 3종 (내일까지) 개발 들어간 버튼 패딩 이슈 해결오전에 생각했던 "오늘 안에 끝낼 수 있다." 틀렸다. 50% 달성. 그나마도 급한 일 생겨서 내일 아침부터 다른 거 해야 한다. 남자친구한테 톡 왔다. "오늘 저녁 약속 7시 맞지?" 잊고 있었다. 완전히. "미안 오늘 야근해야 할 것 같아. 내일은 어때?" "또? 이번주만 벌써 두 번젠데." 할 말이 없다. 오후 7시 45분 경쟁사 앱 3개 열어놨다. 캡처 떴다. 노션에 정리 중. A 스타일: 미니멀, 여백 많음, 폰트 크고 굵음 B 스타일: 컬러풀, 그래디언트, 둥근 모서리 C 스타일: 애니메이션 많음, 인터랙션 풍부, 재미 요소 이걸 섞는다. 미니멀한데 컬러풀하고. 여백 많은데 애니메이션 풍부하고. 모순이다. 하지만 해야 한다. 내일까지. 새 피그마 파일. "긴급_경쟁사벤치_1204". 아트보드 3개. 시안 A: 미니멀 베이스 + 컬러 포인트 시안 B: 컬러풀 베이스 + 여백 확보 시안 C: 절충안 손이 움직인다. 오전만큼 빠르진 않다. 그래도 움직인다. 이게 디자이너다. 갑자기 바뀌는 우선순위. 예상 못한 요구사항. 컨텍스트 잃고 복구하고. 반복. 오후 9시 20분 시안 1개 완성. 2개 남았다. 배고프다. 편의점 갔다. 삼각김밥 2개, 바나나우유. 돌아오는 길에 개발팀 석준이랑 마주쳤다. 야근 중. "디자님도 야근이네요." "응. 내일까지 급한 거 있어서." "저도요. 배포 일정이 당겨져서." 웃었다. 쓴웃음. 우리 둘 다 오전엔 없던 일 하고 있다. 오후 11시 10분 시안 3개 완성. 노션에 업로드. 코멘트 달았다. "시안 A: 미니멀 중심, 컬러는 포인트로만 활용 시안 B: 컬러 적극 활용, 여백으로 밸런스 시안 C: 두 방향의 절충, 가장 무난함 개인 의견: C가 실현 가능성 높아 보입니다." 개인 의견 안 쓰면 "디자이너 생각은?" 이라고 물어본다. 미리 쓴다. 슬랙에 공유. "@대표님 @민수 내일 아침 확인 부탁드립니다." 파일 닫았다. 피그마 끄지 않았다. 내일 아침 수정 요청 올 거다. 오전 1시 30분 집 도착. 씻었다. 침대 누웠다. 핸드폰 봤다. 남자친구 톡. "고생했어. 내일은 일찍 끝나면 좋겠다." 미안하다. 말은 안 했다. 눈 감았다. 머릿속에 버튼이 보인다. 16px 패딩. #4A9AFF. 호버 상태. 경쟁사 시안 A, B, C. 내일 아침 슬랙. 수정 요청. 미팅 또 잡힐 것. 오전 작업 또 멈출 것. 이게 일상이다. 컨텍스트 스위칭. 복구. 반복. 적응한 건지 체념한 건지 모르겠다.오후 3시 미팅. 결국 10시간 일한다. 오전 2시간은 사라졌다. 내일도 똑같겠지.

여백이 좀... 이 말 한마디로 시작된 3시간의 피그마 여정

여백이 좀... 이 말 한마디로 시작된 3시간의 피그마 여정

여백이 좀... 이 말 한마디로 시작된 3시간의 피그마 여전 오후 3시 27분, 그 한마디 "최디자님, 이거 여백이 좀..." 슬랙 메시지 하나가 떴다. 기획자 김과장이다. '좀' 이 단어가 문제다. 얼마나 좀인데. 4px인지 8px인지 말을 해야지. 피그마 켰다. 방금 올린 홈 화면 시안이다. 어제 밤 11시까지 잡은 레이아웃이다. "어느 부분이요?" "전체적으로요. 답답한 느낌?" 전체적으로. 답답한 느낌. 가장 추상적인 피드백 온다. 월요일 오후의 저주다.16px가 아니라 20px였던 거야 일단 측정부터 했다. 헤더 아래 여백: 24px 카드 사이 간격: 16px좌우 마진: 20px 디자인 시스템 기준이다. 8의 배수 원칙 지켰다. 뭐가 문제지. 개발자 이태리한테 물어봤다. "태리야, 이거 여백 이상해?"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도움 안 된다. 태리는 1px 차이 못 본다. 그래도 착하니까 괜찮다. 대표님한테 올린 버전이랑 비교했다. 지난주 금요일 거다. 아. 찾았다. 카드 내부 패딩을 16px에서 12px로 줄였었다. 콘텐츠 많이 보이라고. 그게 문제였다. 12px는 너무 빡빡하다. 숨을 못 쉰다. 16px로 되돌렸다. 근데 이러면 카드 높이가 늘어난다. 그럼 한 화면에 3개밖에 안 보인다. 기획에서 4개 보이길 원했다. 망했다.타협의 기술, 아니 타협의 지옥 4시 15분. 48분 지났다. 카드 높이 줄이려면 내부 요소를 건드려야 한다. 제목 폰트: 18px → 16px 하면? 아니다. 제목은 위계상 타협 못 한다. 썸네일 이미지: 180px → 160px? 이것도 아니다. 썸네일 작아지면 임팩트 없다. 부제목을 한 줄로 제한? 말리는 문제 생긴다. 기획이 반대할 거다. 좌우 패딩만 줄일까. 16px → 12px. 아니다. 그럼 모바일에서 너무 답답하다. 다시 16px. 커피 마시러 갔다. 세 번째다. 정수기 앞에서 생각했다. 카드 상하 간격을 12px로 줄이면? 원래 16px인데. 4px 차이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쌓이면 크다. 12px... 좀 빡빡한데. 근데 해볼 만하다. 돌아와서 적용했다. 오. 괜찮다. 4개 들어간다. 근데 뭔가 억지로 구겨 넣은 느낌이다. 5분 봤다. 익숙해진다. 10분 봤다. 아니다. 이거 아니다. 되돌렸다. 디자인 시스템이 날 가둔다 4시 53분. 문제를 다시 정의했다. 카드 하나의 높이: 240px 화면 높이(헤더 제외): 1080px - 60px = 1020px 여백 포함하면 카드 3.5개 보인다. 기획은 4개 원한다. 그럼 카드 높이를 줄여야 한다. 240px → 220px면? 20px 줄이면 된다. 어디서 줄이지. 내부 패딩: 16px (위아래 32px) 썸네일: 160px 텍스트 영역: 48px 32px 중에 8px 빼면? 위아래 각 4px씩. 12px 패딩. 또 12px다. 12px는 디자인 시스템에 없다. 8, 16, 24, 32 이렇게 간다. 규칙을 깨야 하나. 아니면 규칙을 바꿔야 하나. 슬랙에 디자인팀 채널 있다. 팀장 박실장한테 물어봤다. "실장님, 12px 패딩 써도 될까요?" "왜요?" "카드 높이 때문에요." "8의 배수 원칙 있잖아요." "네. 근데 이러면 4개 안 들어가서요." "4개가 꼭 필요해요?" 모르겠다. 기획이 원한다. 난 3개가 낫다고 본다. "일단 기획이랑 다시 얘기해보세요." 맞다. 기획이랑 얘기해야 한다.기획자는 신이 아니다 김과장한테 허들 잡았다. "과장님, 카드 4개 꼭 보여야 해요?" "네. 사용자가 선택지 많이 보는 게 좋잖아요." "근데 너무 빽빽하면 오히려 안 보지 않을까요?" "음... 그렇게 빽빽해요?" 피그마 공유했다. 4개 버전이랑 3개 버전. "이게 4개고, 이게 3개예요." 10초 침묵. "3개가 낫네요." 뭐야. "처음부터 3개 하면 안 됐어요?" "아니 4개 보여야 할 것 같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3개가 낫네요." 1시간 30분 날렸다. 근데 화는 안 난다. 이게 일이다. 보기 전엔 모른다. "그럼 3개로 할게요. 근데 답답한 느낌은 뭐였어요?" "아, 그거요. 모르겠어요. 그냥 뭔가 꽉 찬 느낌?" 꽉 찬 느낌. 카드가 4개 들어가서 그런 거였다. 억지로 넣으니까. 3개로 하면 해결된다. 근데 확인해봐야 한다. 완벽의 늪 5시 40분. 3개 버전 완성했다. 카드 간격 16px 유지. 카드 높이 240px 유지. 패딩 16px 유지. 디자인 시스템 안 깼다. 기분 좋다. 근데 또 보니까 뭔가 이상하다. 하단 여백이 너무 많다. 카드 3개 끝나고 밑에 공간이 남는다. 저기 CTA 버튼 넣을까? 아니다. 기획서에 없다. 그냥 둘까? 여백도 디자인이다. 꼭 채울 필요 없다. 근데 허전하다. 스크롤 인디케이터 넣을까? 점 3개로. 해봤다. 좀 낫다. 근데 과한가? 뺐다. 다시 넣었다. 또 뺐다. 태리한테 물어봤다. "태리야, 이거 점 있는 게 나아? 없는 게 나아?" "둘 다 괜찮은데요." 이럴 줄 알았다. 남친한테 카톡했다. 남친도 개발자다. "오빠 이거 봐봐. 점 있는 거 vs 없는 거." 3분 뒤. "없는 게 깔끔한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뺐다. 근데 5분 뒤 다시 보니까 있는 게 낫다. 다시 넣었다. 언제 멈춰야 하는가 6시 20분. 점 넣었다 뺐다를 7번 했다. 이제 진짜 모르겠다. 둘 다 괜찮다. 둘 다 이상하다. 이게 디자이너의 저주다. 디테일이 보인다. 1px 차이가 보인다. 그게 강점이다. 근데 그게 약점이다. 멈출 줄 모른다. 80%에서 멈추면 된다. 근데 난 95%를 원한다. 95%에서 100%까지 가는 게 전체 시간의 50%다. 비효율적이다. 알고 있다. 근데 못 멈춘다. 완벽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내일 아침에 보면 또 고치고 싶을 거다. 그럼 언제 끝나나. 대표님 말이 생각났다. 지난달 1on1 때. "디자이너는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거예요." 작품은 완벽을 추구한다. 제품은 타이밍을 지킨다. 맞는 말이다. 근데 제품도 완벽하면 안 되나. 애플 보라고. 1px까지 신경 쓴다. 우린 애플이 아니다. 스타트업이다.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검증하고, 빠르게 바꾼다. 내 완벽주의는 사치다. 알고 있다. 결국 점은 뺐다 6시 35분. 점 뺐다. 최종 결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다. 7시 퇴근이다. 25분 남았다. 개발자한테 핸드오프 해야 한다. 내일 아침 스프린트 시작이다. "태리야, 핸드오프 할게. 5분 줘." "네." 피그마 링크 공유했다. 컴포넌트 설명했다. "카드 간격 16px, 패딩 16px, 이거 토큰으로 이미 있어." "네." "하단 여백은 40px. 이것도 토큰 있어." "스크롤 인디케이터는요?" "없어. 뺐어." "아 네." "애니메이션은 ease-out, 0.3초." "알겠습니다." 끝났다. 3시간 27분 걸렸다. 실제 작업 시간은 30분이다. 나머지는 고민이다. 고민이 나쁜 건 아니다. 고민해야 좋은 디자인 나온다. 근데 과한 고민은 독이다. 디테일 강박증 환자의 자가 진단 퇴근길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나는 디테일에 예민하다. 그게 내 정체성이다. "여백 좀 이상한데요?" 이 말 듣는 게 제일 싫다. 그래서 미리 100번 본다. 혹시 이상한 거 없나. 이게 강점이다. 내 디자인은 완성도 높다. 근데 약점이기도 하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균형을 못 찾겠다. 완벽주의를 버리면 평범한 디자이너가 될까 봐 무섭다. 완벽주의를 유지하면 효율 없는 디자이너가 될까 봐 무섭다. 어디서 타협해야 하나. 선배 디자이너한테 물어본 적 있다. 작년에. "언제 멈춰야 해요?" "마감 1시간 전에." 농담 같았는데 진담이었다. "디자인은 끝이 없어. 시간이 끝낼 뿐이야." 맞다. 시간이 끝낸다. 내가 끝내는 게 아니라. 마감이 없으면 영원히 못 끝낸다. 내일의 나에게 집 도착했다. 8시 10분. 피그마 켰다. 습관이다. 오늘 한 작업 다시 봤다. 점 넣는 게 나았을 것 같다. 넣을까. 아니다. 그만하자. 이미 개발자한테 넘겼다. 끝난 거다. 다음 작업 들어가야 한다. 프로필 페이지 리뉴얼. 근데 오늘 한 거 한 번만 더 보자. 카드 모서리 라운드. 12px인데 16px가 나을까? 해봤다. 16px가 좀 더 부드럽다. 근데 너무 둥글다. 12px가 맞다. 되돌렸다. 아. 또 시작이다. 컴퓨터 껐다. 강제 종료다.디테일은 축복이자 저주다. 오늘도 그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다. 내일은 좀 빨리 나올 수 있을까.

월요일 9시 반, 슬랙 확인하다가 숨이 턱 막히는 순간

월요일 9시 반, 슬랙 확인하다가 숨이 턱 막히는 순간

월요일 9시 반 지하철에서 내렸다. 회사까지 5분. 그 5분 동안 슬랙을 켜지 않았다. 일부러. 주말이 좋았다. 토요일엔 침대에서 유튜브 봤고, 일요일엔 카페에서 책 읽었다. 스타벅스 아니고 동네 조용한 곳. 핸드드립 마시면서 디자인 잡지 넘겼다. 폰트 이야기, 컬러 이야기. 평화로웠다. 금요일 퇴근 전에 완성한 화면이 머릿속에 있었다. 결제 플로우 7개 화면. 사흘 걸렸다. 인풋 필드 간격, 버튼 사이즈, 에러 메시지 위치. 다 맞췄다. 개발팀 채널에 피그마 링크 올렸다. "월요일에 리뷰 부탁드려요" 하고 로그아웃. 엘리베이터 안. 3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슬랙을 켰다. 21개의 알림.숨이 턱 막혔다 첫 번째 메시지. 금요일 밤 11시. 대표님. "최디자님, 결제 플로우 방향 좀 틀어야 할 것 같아요. 투자사 미팅에서 피드백 받았는데요." 두 번째. 토요일 오전 10시. 기획자. "디자님, 죄송한데 결제 단계를 2단계로 줄이는 게 어떨까요? 대표님이랑 얘기했는데..." 세 번째. 토요일 오후 3시. 개발 리드. "결제 플로우 개발 시작하려고 했는데 홀드할게요." 네 번째부터는 안 읽었다. 사무실 문 열었다. 개발자 두 명이 이미 와있었다.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나왔다. 자리 앉았다. 맥북 켰다. 피그마 열었다. 그 7개 화면이 그대로 있었다. 금요일 저녁 6시 43분. 마지막 수정 시간. 사흘이 3초가 됐다. 기획 변경의 메커니즘 스타트업에서 6년 일했다. 회사는 세 번 바뀌었다. 기획 변경은 48번쯤 겪었다. 대충 센 거다. 정확히 세면 더 많다. 변경의 패턴이 있다.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에 온다. "사소한 수정"이라고 시작한다. 실제론 전체 구조가 바뀐다. 일정은 그대로다.이번도 그랬다. 기획자가 왔다. 미안하다는 표정. "디자님, 주말에 연락드려서..." "괜찮아요." 괜찮지 않았다. "대표님이 투자사에서 피드백 받으셨대요. 결제 단계가 너무 많다고. 3단계를 2단계로 줄여야 한데요." "언제까지요?" "이번 주 금요일까지는..." 오늘이 월요일이다. 금요일까지 5일. 아니, 4일 반.변수를 관리한다는 것 대표님한테 갔다. 노크하고 들어갔다. "대표님, 결제 플로우 변경 건 확인했습니다." "아, 최디자님. 죄송해요. 갑자기 바뀌어서." "투자사 피드백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나요?" 대표님이 노트북을 돌렸다. 이메일이 떠 있었다. 영어로 3줄. "Too many steps in payment flow. Consider simplifying. Users drop off at step 2." 3줄. 내가 사흘 동안 만든 7개 화면이 3줄이 됐다. "사실 데이터를 봤는데요." 내가 말했다. "이탈률이 높은 건 2단계에서 주소 입력 때문이에요. 단계 개수 문제가 아니라 인풋 필드 문제예요." "음..." 대표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은 이미 정해진 표정이었다. "그래도 일단 2단계로 줄여서 보여드리면 어떨까요? 투자 유치가 지금 중요해서요." 투자 유치. 이 단어가 나오면 끝이다. "네, 알겠습니다." 자리로 돌아왔다. 피그마를 껐다. 다시 켰다. 새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름: "결제플로우_v2_20250120" v2. 버전 2. v1은 어디 갔나. 휴지통에도 안 간다. 그냥 존재하지 않게 된다. 공허함의 정체 점심시간이 됐다. 밥을 먹으러 나갔다. 개발자 한 명이 따라왔다. "디자님, 결제 플로우 다시 하시는 거예요?" "응." "헐... 금요일에 완성하신 거 엄청 좋았는데." "고마워." "근데 왜 바뀐 거예요?" "투자사 피드백." "아..." 개발자도 알았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김치찌개를 시켰다. 맛이 없었다. 아니, 맛을 모르겠다. 숟가락을 입에 넣고 씹고 삼켰다. 기계처럼. 공허함이 뭔지 알았다. 내가 만든 게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건 원래 자주 있다. 디자인은 계속 바뀐다. 문제는 이유다. 데이터 때문에 바뀐 거면 괜찮다. 사용자 피드백 때문이면 이해된다. A/B 테스트 결과 때문이면 배운다. 근데 이건 아니다. 투자사 이메일 3줄. 데이터도 없고, 사용자 리서치도 없고, 근거도 없다. 그냥 "simplify" 한 단어. 내 사흘이 한 단어에 지워졌다.변수관리라는 환상 오후 2시. 기획자, 개발 리드, 나. 회의실. "변경사항 정리할게요." 기획자가 화이트보드에 썼다.3단계 → 2단계 주소 입력 간소화 결제 수단 선택 앞으로 최종 확인 화면 삭제"최종 확인 화면을 왜 삭제해요?" 내가 물었다. "단계를 줄이려면..." "근데 최종 확인 없이 결제하면 실수 결제 늘어요. 그럼 CS 비용 올라가요." 개발 리드가 끄덕였다. "맞아요. 환불 처리 개발 공수도 만만치 않은데." 기획자가 난감한 얼굴을 했다. "그럼... 대표님께 다시 말씀드려볼게요." 30분 뒤. 기획자가 돌아왔다. "최종 확인 화면은 남기래요. 대신 다른 걸 줄여달래요." "뭘요?" "다시 회의해요." 또 회의. 이게 스타트업의 변수관리다. 변수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변수에 관리당한다. 큰 회사였으면 프로세스가 있다. 기획 문서, 리서치 자료, 검토 단계. 느리지만 방향은 있다. 스타트업은 빠르다. 대신 방향이 매일 바뀐다. 나침반이 고장 난 배. "빠르게 실험하는 거예요." 대표님이 자주 하는 말. 실험은 좋다. 근데 실험엔 가설이 있어야 한다. 가설 없는 실험은 그냥 삽질이다. 오후 4시의 결심 새 버전을 그렸다. 2시간 걸렸다. 2단계. 깔끔하다. 심플하다. 아름답다. 근데 뭔가 부족하다. 정보 위계가 애매하다. 사용자가 헷갈릴 것 같다. 개발자한테 보냈다. "이렇게 바뀌었어요." 답장이 왔다. "오 깔끔한데요? 근데 주소 입력 필드가 여기 있으면 키보드 올라올 때 버튼이 가려지는데..." "아..." 수정했다. 30분 더. 다시 보냈다. "이건 어때요?" "좋아요! 근데 결제 수단 선택이 위로 가면 API 호출 순서를 바꿔야 하는데, 그럼 로딩 시간이..." "..." 또 수정했다. 1시간 더. 오후 4시. 버전 2.3. 개발자가 "이제 됐어요"라고 했다. 기획자가 "좋아요"라고 했다. 근데 나는 모르겠다. 이게 좋은 건지. 이게 맞는 건지. 금요일에 만든 v1이 더 나았다. 확신한다. 근데 v1은 죽었다. 결심했다. 다음부턴 초안을 두 개 만든다. 하나는 내가 생각하는 최선. 하나는 갑자기 바뀔 때를 대비한 플랜B. 시간이 두 배 걸린다. 근데 어쩌겠나. 월요일 아침에 숨 막히는 것보단 낫다. 변수 속에서 살아남기 스타트업에서 변수관리는 환상이다. 변수를 없앨 수 없다. 대신 변수를 예상할 수 있다. 내가 배운 것들:금요일 저녁 배포 금지. 주말에 바뀐다. 투자 관련 미팅 전후는 위험. 방향이 흔들린다. 대표님이 "간단한 질문인데"로 시작하면 간단하지 않다. 기획자가 "사소한 수정"이라고 하면 사소하지 않다. 개발자가 "이거 어려운데요"는 정말 어렵다는 뜻이다.그리고 하나 더. 완벽한 디자인은 없다. 완성된 디자인도 없다. 있는 건 "지금 버전"뿐이다. 내일 바뀔 수도 있고, 다음 주에 바뀔 수도 있고, 아예 폐기될 수도 있다. 이게 스타트업이다. 빠르게 망하거나, 빠르게 배우거나. 나는 후자를 택했다. 아직은. 퇴근길 7시에 나왔다. 야근은 아니래. 지하철에서 피그마를 켰다. 새로 만든 v2를 봤다. 나쁘지 않다. 익숙해지니까 괜찮아 보인다. 집에 도착했다.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다. 남자친구한테 카톡 보냈다. "오늘 힘들었어." "무슨 일?" "주말에 만든 거 다 엎어짐." "헐. 왜?" "투자사 피드백." "..." "내일은 나을까?" "응. 내일은 화요일이니까." 맞다. 내일은 화요일이다. 월요일보단 낫다. 드리블을 켰다. 다른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봤다. 예쁘다. 완성도 높다. 근데 저것들도 엎어졌을까? 기획 변경 몇 번 겪었을까? 모르겠다. 드리블엔 결과만 있다. 과정은 없다. 폰을 내려놨다. 눈을 감았다. 내일은 v2를 개발팀한테 넘긴다. 다음 주엔 개발 시작한다. 그다음 주엔 테스트한다. 그리고 또 바뀐다. 아마.월요일은 항상 온다. 슬랙도 항상 켜진다. 변수는 계속 생긴다. 나는 계속 그린다.

Figma를 켜지 않으면 하루가 시작되지 않는 디자이너의 하루

Figma를 켜지 않으면 하루가 시작되지 않는 디자이너의 하루

오전 9시 30분, 첫 번째 클릭 출근했다. 맥북 열고 제일 먼저 켜는 건 슬랙도 지라도 아니다. Figma다. 로그인 화면도 없다. 어제 퇴근할 때 그냥 켜놓고 나왔으니까. 어제 작업하던 파일이 그대로 떠 있다. 밤새 개발자가 댓글을 3개 달아놨다. "이 간격 8px 맞나요?" "이 컴포넌트 인스턴스 수정했는데 확인 부탁드려요." "다크모드 컬러는요?" 아직 커피도 안 마셨는데. 답글 단다. 8px 맞다고. 인스턴스는 메인 컴포넌트 수정하면 자동 반영된다고. 다크모드는 토큰 시트 확인하라고. 9시 35분. Figma 켠 지 5분 만에 일이 3개 처리됐다. 이게 중독인가 효율인가. 잘 모르겠다.10시, 기획자의 슬랙 메시지 "디자님 Figma 보고 계세요? 빨간 점 떴어요!" 보고 있다. 항상 보고 있다. Figma는 내 두 번째 모니터에 항상 켜져 있다. 왼쪽엔 슬랙, 오른쪽엔 Figma. 이게 내 업무 환경의 전부다. 기획자가 내 파일에 들어와 있다. 커서가 움직인다. 실시간이다. 텍스트를 선택한다. 댓글을 단다. "여기 문구 '시작하기'에서 '지금 시작'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나도 같은 화면을 보고 있다. 기획자 커서 옆에 내 커서를 가져다 댄다. 댓글로 답한다. "버튼 폭이 좁아지는데 괜찮을까요?" 기획자가 바로 답한다. "아 그러네요. 그럼 원안대로요." 3분 만에 끝났다. 회의실 예약도 안 했다. 자리 이동도 안 했다. 그냥 Figma 켜놓고 댓글 3개 주고받았다. 이게 바로 실시간 협업이다. 편하다. 너무 편하다. 그래서 문제다.정오, 점심시간에도 Figma 점심 먹으러 간다. 근처 샐러드 가게. 줄 서서 기다린다. 폰 꺼낸다. Figma 앱 켠다. 아침에 작업하던 버튼 컴포넌트가 신경 쓰인다. 패딩이 12px인데 16px이 나을 것 같다. 폰으로 수정한다. 되긴 된다. 근데 불편하다. 역시 Figma는 데스크탑이다. 샐러드 받아서 회사 돌아온다. 자리 앉자마자 맥북 연다. Figma 확인한다. 아까 폰으로 수정한 게 반영돼 있다. 신기하다. 매번 해도 신기하다. 점심 먹으면서도 Figma 생각했다. 이게 정상인가. 개발자 친구한테 물어봤다. "너도 VS Code 항상 켜놓아?" 그랬더니 "당연하지" 한다. 개발자는 코드 에디터고, 디자이너는 Figma다. 우리 세대의 운명이다. 근데 다르다. VS Code는 혼자 쓴다. Figma는 다 같이 쓴다. 내가 작업하는 걸 다른 사람이 실시간으로 본다. 커서가 움직이는 걸 본다. 댓글을 단다. 이게 압박이다.오후 2시, 핸드오프 미팅 회의실. 개발자 2명. 나. 노트북 3대. 전부 Figma 켜놨다. "일단 제가 화면 공유할게요." 내가 말한다. Figma Dev Mode 켠다. 개발자들이 좋아하는 모드다. 컴포넌트 속성이 전부 보인다. CSS 코드도 나온다. 복사 붙여넣기 하면 된다. "이 버튼이요, padding은 16px이고요, border-radius는 8px이에요. 컬러는 토큰 시트 확인하시면 되고..." 설명한다. 개발자가 끄덕인다. "네, 이건 되는데요..." 또 나온다. "되는데." "이 그라데이션이요, 이거 구현 좀 힘들 것 같은데." 개발자가 말한다. 예상했다. 그라데이션은 항상 문제다. "CSS로 안 돼요?" 물어본다. "되긴 하는데 각도 조절이..." 개발자가 말을 흐린다. 타협한다. 그라데이션 각도 바꾼다. 실시간으로 바꾼다. 회의실에서. Figma 켜놓고. 개발자들이 내 화면 보면서. "이 정도면요?" "오 이건 되겠네요." 20분 만에 해결. 이게 Figma의 힘이다. 예전에는 이랬다. 디자인 완성. 제플린에 업로드. 개발자한테 링크 전달. 개발자가 확인. 질문 생김. 슬랙으로 물어봄. 답변. 또 질문. 회의 잡음. 회의실 이동. 설명. 수정 필요. 다시 작업. 다시 업로드. 반복. 지금은 이렇다. Figma 켜놓고 같이 본다. 실시간 수정. 바로 확인. 끝. 시간이 3분의 1로 줄었다. 근데 피로도는 2배가 됐다. 왜일까. 오후 4시, 디자인 시스템 정리 오늘은 디자인 시스템 정리하는 날이다. 한 달에 한 번 잡아놓은 일정. 안 하면 컴포넌트가 무한 증식한다. Figma 파일 연다. "Design System v3.2". 왼쪽 레이어 패널 본다. 컴포넌트 347개. 지난달보다 47개 늘었다. 이상하다. 새로 만든 건 10개도 안 되는데. 스크롤 내린다. 발견한다. "Button/Primary/Copy", "Button/Primary/Copy 2", "Button/Primary/Final", "Button/Primary/Final-Final". 범인을 찾았다. 나다. 급하게 작업하다 보면 메인 컴포넌트 수정이 무섭다. 다른 곳에 영향 갈까 봐. 그래서 복사한다. 수정한다. 끝나면 지워야 하는데 까먹는다. 그렇게 쌓인다. 2시간 동안 정리한다. 중복 컴포넌트 삭제. 이름 규칙 정리. 토큰 업데이트. 문서화. 347개가 289개가 됐다. 뿌듯하다. 근데 이미 안다. 다음 달에 또 늘어날 거다. 이게 디자인 시스템의 숙명이다.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계속 유지보수해야 한다. 그게 일이다. Figma가 없었으면 이것도 못 했다. 스케치 시절엔 파일이 몇십 개로 쪼개져 있었다. 컴포넌트 수정하면 파일마다 열어서 업데이트했다. 지금은 클라우드다. 한 번 수정하면 어디든 반영된다. 고맙다, Figma. 근데 내 인생을 돌려줘. 오후 6시, 실시간 피드백의 공포 대표님이 Figma 들어왔다. 알람 뜬다. "박대표님이 파일을 보고 있습니다." 심장 뛴다. 대표님은 디자인을 잘 모른다. 그래서 더 무섭다. 뭘 볼까. 뭐라고 할까. 커서가 움직인다. 메인 페이지로 간다. 어제 작업한 신규 기능 화면이다. 아직 완성 아니다. 70%쯤? 댓글 단다. "디자님, 이거 언제 완성돼요?" 답한다. "내일 오전까지 완성 예정입니다." 대표님 커서가 또 움직인다. 버튼을 가리킨다. 댓글 단다. "이 파란색, 좀 더 밝게 할 수 있을까요?" 속으로 생각한다. '브랜드 컬러입니다. 토큰에 정의돼 있습니다. 함부로 못 바꿉니다.' 실제로 쓴다. "브랜드 컬러라 다른 곳에도 영향이 있는데 확인 후 답변드릴게요." 대표님이 나갔다. 한숨 쉰다. 이게 실시간 협업의 양날의 검이다. 빠르다. 너무 빠르다. 피드백이 즉각 온다. 좋다. 근데 너무 즉각 온다. 작업 중인 걸 본다. 미완성을 본다. 퇴근 후에도 볼 수 있다. 주말에도 볼 수 있다. 예전엔 디자인 파일은 내 컴퓨터에 있었다. 보여주고 싶을 때 보여줬다. 지금은 클라우드에 있다. 링크만 있으면 누구나 본다. 언제나 본다. 실시간으로 본다. 자유인가 감시인가. 모르겠다. 저녁 7시, 퇴근 전 마지막 푸시 퇴근 시간이다. 근데 못 간다. 오늘 작업 푸시해야 한다. 마지막 체크한다. 오타 없나. 정렬 맞나. 간격 일관적인가. 컴포넌트 연결 잘 됐나. Auto Layout 제대로 설정했나. 다크모드 확인했나. 체크리스트가 길다. Figma는 자유도가 높다. 그만큼 실수도 많다. 한 픽셀 어긋나도 개발자가 알아챈다. "디자인에는 24px인데 개발하니까 23px인데요?" 그러면 멘붕이다. 30분 더 확인한다. 완벽하다. 댓글 단다. "@개발팀 작업 완료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려요!" 멘션 보낸다. 개발자 3명한테 알람 간다. 1분 후. 개발자가 들어왔다. 벌써. 커서가 움직인다. 확인한다. 댓글 단다. "확인했습니다. 내일 작업 시작할게요." 빠르다. 모든 게 빠르다. Figma는 모든 걸 빠르게 만든다. 협업도. 피드백도. 수정도. 번아웃도. 맥북 닫는다. Figma는 안 닫는다. 어차피 집 가서 또 켤 거다. 밤 11시, 침대에서 Figma 집이다. 씻었다. 침대 누웠다. 폰 꺼냈다. Figma 앱 켰다. 또 켰다. 낮에 작업한 거 다시 본다. 마음에 안 든다. 버튼 위치가 이상하다. 2px 내린다. 폰으로. 침대에서. 밤 11시에. 남자친구가 메시지 보냈다. "아직도 일해?" 답한다. "아니, 그냥 확인만." 거짓말이다. 수정하고 있다. Pinterest 앱으로 넘어간다. UI 디자인 레퍼런스 본다. 좋은 거 있다. 저장한다. Figma로 다시 넘어간다. 방금 본 레퍼런스 적용해 본다. 괜찮다. 근데 내일 보면 별로일 거다. 항상 그렇다. Dribbble 앱 연다. 인기 샷 본다. 다들 잘한다. 부럽다. 나도 포트폴리오 올려야 하는데. 시간 없다. Figma 켜놓고 실무만 하다가 하루 간다. 알람 설정한다. 내일 아침 7시 반. 9시 반 출근인데 왜 7시 반이냐. Figma 확인 시간 필요하다. 출근 전에 댓글 확인하고 답 달아야 한다. 그래야 오전에 일이 막히지 않는다. 폰 내려놓는다. Figma 앱은 안 닫는다. 백그라운드에 켜놓는다. 알람 오면 바로 확인해야 한다. 중독이다. 안다. 근데 끊을 수 없다. Figma 없이 일할 수 없다. Figma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자려고 눈 감는다. 머릿속에 Figma 인터페이스가 보인다. 레이어 패널. 프로퍼티 패널. 컴포넌트. 오토 레이아웃. 잠이 안 온다. 통계를 보는 날 월말이다. Figma 어드민 페널 들어갔다. 팀 사용량 확인한다. 이번 달 내 Figma 사용 시간. 217시간. 하루 평균 10.3시간. 근무 시간이 9시간인데 10시간을 썼다. 집에서도 켰다는 얘기다. 알고 있었다. 팀원들 확인한다. 막내는 140시간. 중간은 165시간. 나만 200시간 넘었다. 리드니까. 당연하다. 위로한다. 파일 수정 횟수. 2,847회. 하루 평균 135회. 10분에 한 번씩 수정했다는 얘기다. 놀랍지 않다. 픽셀 하나 옮기는 것도 수정이다. 컬러 바꾸는 것도 수정이다. 텍스트 고치는 것도 수정이다. 댓글 단 횟수. 423개. 받은 댓글. 687개. 더 많이 받았다. 피드백을 더 많이 받았다는 얘기다. 디자이너의 숙명이다. 협업자 수. 17명. 작은 회사인데 17명이 내 Figma 파일에 들어왔다. 기획자 3명. 개발자 8명. 마케터 2명. 대표 1명. 나머지는 누구지. 확인한다. 인턴이다. 구경 왔나 보다. 통계를 보면 깨닫는다. Figma는 도구가 아니다. 생태계다. 내가 만든 디자인 파일 하나에 17명이 연결돼 있다. 실시간으로. 계속. 무섭다. 근데 이게 현실이다. 대안은 없다 가끔 생각한다. Figma 말고 다른 거 쓸까. Sketch? 옛날이다. 클라우드 안 된다. 맥에서만 된다. 협업 안 된다. Adobe XD? 망했다. Adobe가 업데이트 중단했다. 다들 Figma로 넘어갔다. Framer? 프로토타이핑은 좋다. 근데 디자인 시스템은 Figma만 못하다. 결론. 대안 없다. Figma가 업계 표준이다. 이력서에 "Figma 능숙" 안 쓰면 서류 떨어진다. 면접 가면 "Figma 쓸 줄 아세요?" 묻는다. 당연하다고 답한다. 안 쓰면 일 못 한다. 독점이다. 나쁜 독점은 아니다. Figma는 좋은 툴이다. 계속 업데이트된다. 사용자 말 듣는다. 기능 추가한다. 버그 고친다. 그래서 다들 쓴다. 근데 선택권은 없다. 안 써도 되는 게 아니다. 써야만 한다. 디자이너로 일하려면. Figma를 켜야 한다. 하루 10시간. 매일. 이게 2024년 디자이너의 현실이다. 그래도 불평만 한 것 같다. 아니다. Figma 좋아한다. 진짜다. 없으면 못 산다. 아니, 일 못 한다. 협업이 이렇게 쉬웠던 적 없다. 개발자한테 파일 전달하는 게 링크 하나면 된다. 수정사항 있으면 실시간으로 반영된다. 버전 관리 자동이다. 댓글로 소통된다. 미팅 시간 줄었다. 디자인 시스템 만들기 쉬워졌다. 컴포넌트 한 번 만들면 어디든 쓴다. 수정하면 전부 업데이트된다. 토큰 시스템 있다. 다크모드 자동이다. 반응형 레이아웃 쉽다. 프로토타이핑 빠르다. 클릭 몇 번이면 인터랙션 만든다. 개발자한테 설명 안 해도 된다. 직접 눌러보면 안다. "아 이렇게 되는 거구나." 플러그인 생태계 좋다. 필요한 기능 대부분 있다. AI 툴 연동된다. 아이콘 라이브러리 많다. 이미지 생성 도구 있다. 접근성 체크 툴 있다. 코드 변환 도구 있다. 무료다. 개인은 무료다. 팀 플랜도 한 달 15달러. 어도비보다 싸다. 학생은 완전 무료다. 진입장벽 낮다. Figma가 디자인 민주화했다.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유튜브에 튜토리얼 넘친다. 커뮤니티 활발하다. 질문하면 답 온다. 템플릿 많다. 배우기 쉽다. 좋은 도구다. 정말로. 근데 너무 좋아서 문제다. 안 켜면 불안하다. 그게 문제다. 내일도 켤 거다 내일 아침 9시 반. 출근한다. 맥북 연다. Figma 켠다. 어제 작업 확인한다. 댓글 확인한다. 답글 단다. 새 작업 시작한다. 기획자랑 협업한다. 개발자랑 핸드오프한다. 대표님 피드백 받는다. 수정한다. 또 수정한다. 저녁 7시. 퇴근한다. Figma는 안 닫는다. 집 가서 또 켤 거다. 침대에서 또 켤 거다. 주말에도 켤 거다. 이게 중독인가. 맞다. 중독이다. 끊을 수 있나. 없다. 끊을 필요 있나. 모르겠다. Figma는 내 일이다. 내 일상이다. 내 정체성이다. "Figma 없이 어떻게 일해요?" 누가 물으면 답 못 한다. 상상이 안 된다. 2024년 디자이너의 삶. Figma 켜고 시작한다. Figma 보고 끝난다. 그 사이에 디자인이 있다. 협업이 있다. 피드백이 있다. 수정이 있다. 반복이 있다. 피곤하다. 근데 이게 내 일이다. 좋아하는 일이다. 계속할 거다. 내일도 Figma 켤 거다. 모레도. 글피도. 계속.결국 우리는 도구를 선택한 게 아니라, 도구가 우리를 선택했다.

개발자: '이거 구현 어려운데요' vs 디자이너: '근데 이게 꼭 필요한데...'

개발자: '이거 구현 어려운데요' vs 디자이너: '근데 이게 꼭 필요한데...'

오후 2시, 핸드오프 미팅 회의실에 들어갔다. 개발자 민준씨가 이미 앉아있다. "디자인 공유드립니다." 피그마 화면을 띄웠다. 30초 만에 나왔다. 그 말. "이거 구현 어려운데요." 아직 컴포넌트 설명도 안 했는데. 숨을 참았다. "어떤 부분이요?" "이 인터랙션이요. 스크롤하면서 헤더가 반투명해지면서 블러 들어가고, 동시에 높이도 줄어드는 거. 퍼포먼스 이슈 있어요." 3일 걸렸다. 이 인터랙션 하나에. 레퍼런스 10개 찾고, 프로토타입 5번 만들었다. 대표님 피드백도 3번 반영했다. "근데 이게 꼭 필요한데..." 내 목소리가 작아진다. 매번 그렇다.필요하다는 말의 무게 "왜 필요한데요?" 민준씨가 묻는다. 공격적이지 않다. 진짜 궁금한 거다. 이럴 때 당황한다. "사용자 경험이..." "구체적으로요?" 막힌다. '감각적이니까', '애플도 이렇게 하니까'는 이유가 안 된다. 개발자들한테는. "스크롤할 때 컨텍스트를 유지하면서도 콘텐츠 영역을 확보하려고요. 헤더가 줄어들면 사용자가 어디 있는지 알면서도 더 많은 정보를 볼 수 있잖아요." "그럼 그냥 숨기면 안 돼요? 더 간단한데." 아니지. 그건 아니야. "완전히 숨기면 네비게이션 잃어버려요. 다시 위로 가려고 할 때." "위로 스크롤하면 다시 나타나게 하면 되는데." "그것도 구현 어렵잖아요." 민준씨가 웃는다. "그것도 어렵긴 한데, 블러보단 낫죠."타협의 기술 "블러 빼면 되나요?" "투명도 애니메이션만 남기면 훨씬 가볍죠." 피그마로 돌아갔다. 블러를 뺐다. 30초 만에 끝났다. 3일 걸린 디테일이. "이 정도면?" "이건 할 만해요." 기분이 묘하다. 다 무너진 것 같으면서도, 뭔가 배운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디자이너님." "네." "이 그라데이션은요. 8개 스탑이 꼭 필요해요? 3개면 안 돼요?" 화면을 봤다. 미묘한 그라데이션이다. 레이어 블렌드 모드도 썼다. Overlay에 Multiply 겹쳤다. "육안으로 구분 안 되는데." 민준씨 말이 맞다. "차이 나는데요." "디자이너님 눈에만요." 할 말이 없다. 맞는 말이니까. "3개로 줄일게요." "색상 코드만 주시면 제가 리니어 그라데이션으로 처리할게요." 또 배운다. 리니어 그라데이션이 퍼포먼스에 좋다는 걸. 피그마에서는 몰랐던 거다.꼭 필요한가 회의가 끝났다. 원래 디자인의 60%쯤 남았다. 블러 없어지고, 그라데이션 단순해지고, 애니메이션 타이밍도 조정했다. 내 방으로 돌아왔다. 피그마를 켰다. '핸드오프_최종.fig'를 '핸드오프_최종_최종.fig'로 저장했다. 원본 파일을 열었다. 블러 있는 버전. 예쁘다. 확실히 예쁘다. 근데 민준씨 말대로, 사용자가 알까. 블러가 있고 없고를. 그라데이션이 8스탑이고 3스탑이고를. 모를 거다. 아마. 그럼 이건 뭐지. 내가 3일 동안 한 건. 자기만족? 아니다. 그건 아니야. 디테일이 쌓여야 전체가 좋아지는 거니까. 근데 구현 안 되면 의미 없는 거니까. 다음 날 아침 슬랙이 왔다. 민준씨: "어제 헤더 구현 완료했어요. 스테이징 서버 확인해보세요." 링크를 눌렀다. 개발 서버가 떴다. 스크롤을 내렸다. 헤더가 줄어든다. 투명해진다. 블러는 없다. 그라데이션도 단순하다. 근데.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생각보다 훨씬 좋다. 움직임이 부드럽다. 퍼포먼스 때문에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피그마에서 볼 때는 몰랐던 거다. 실제 디바이스에서, 실제 콘텐츠에서, 실제로 스크롤하면서 보니까. 민준씨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좋은데요." "그죠? ㅎㅎ 블러 없어도 괜찮죠?" 괜찮다. 솔직히. "근데요." "네." "스크롤 속도 빠를 때 애니메이션이 좀 끊겨요." "아 그거요. 쓰로틀 걸어서 그래요. 성능 때문에." "디바운스는요?" "디바운스 쓰면 반응이 늦어져요." 또 배운다. 쓰로틀과 디바운스의 차이. "그럼 easing 커브를 조정하면 어떨까요? ease-out 말고 custom cubic-bezier로." "오. 그거 괜찮을 것 같은데. 값 알려주세요." 피그마로 갔다. 모션 섹션을 열었다. cubic-bezier(0.4, 0.0, 0.2, 1) "이거요." "오케이. 적용해볼게요." 3주 후, 배포 기능이 라이브됐다. 사용자 피드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헤더 애니메이션 부드러워요." "스크롤 경험 좋아졌네요." 블러 얘기는 없다. 그라데이션 스탑 개수도. 당연하다. 애초에 모르니까. 근데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상하게. 민준씨가 slack에 남겼다. "디자이너님, 이번 협업 좋았어요. 다음에도 잘 부탁드려요." "저도요. 많이 배웠어요." 진심이다. 블러 없어도 된다는 걸. 8스탑이 3스탑 돼도 된다는 걸. 완벽한 디자인보다 실제로 작동하는 디자인이 낫다는 걸. 근데. 어제 밤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덕트 리스트 페이지. 카드에 hover하면 이미지가 확대되면서 블러가 들어간다. 손이 멈췄다. 민준씨 목소리가 들린다. "이거 구현 어려운데요." 블러를 뺐다. 그냥 scale만 넣었다. 마우스를 올려봤다. 심심하다. 다시 블러를 넣었다. 값을 줄였다. 8px에서 4px로. duration도 줄였다. 400ms에서 250ms로. 테스트했다. 나쁘지 않다. 이 정도면 민준씨도 할 만하다고 할 거다. 아마. 저장했다. '리스트_v1_개발고려.fig' 파일명이 웃긴다. '개발고려'. 예전엔 없던 접미사다. 근데 이제는 자연스럽다. 결국 디자인과 개발 사이. 완벽과 현실 사이. 이상과 타협 사이. 어디선가 만난다. 매번 다른 지점에서. "이거 구현 어려운데요." "근데 이게 꼭 필요한데..." 이 대화는 계속된다. 앞으로도. 근데 이제는 안다. '꼭 필요한 것'의 정의가 계속 바뀐다는 걸. 타협이 포기가 아니라는 걸. 함께 만드는 게 혼자 만드는 것보다 낫다는 걸. 민준씨가 또 메시지를 보냈다. "디자이너님, 다음 주 새 기능 핸드오프 미팅 잡을까요?" "네. 근데 이번엔 제가 먼저 여쭤볼게요." "뭐요?" "구현 가능한지요." "오. 좋은데요. 그럼 초안 공유해주세요. 미리 볼게요." 피그마 링크를 보냈다. 댓글 권한도 줬다. 1시간 뒤, 댓글이 달렸다. "이 부분 구현 어려울 것 같은데,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 대안 제시였다. 비판이 아니라. 클릭했다. 민준씨가 직접 수정한 버전이다. 나쁘지 않다.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좋은데요. 이걸로 갈게요." "ㅎㅎ 그럼 이번엔 쉽겠네요." 회의실이 아니라 피그마에서 만났다. 싸우기 전에 협력했다. 이게 맞다. 이게. 6개월 전과 지금 6개월 전에는 몰랐다. 개발자가 '어렵다'고 하면 내 디자인을 무시하는 줄 알았다.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고집부리는 걸로 보일까 봐 걱정했다. 핸드오프 미팅이 두려웠다. 내 디자인이 깎여나가는 시간이니까. 지금은 안다. '어렵다'는 '불가능하다'가 아니다. '같이 다른 방법 찾자'는 뜻이다. '필요하다'고 말해도 된다. 근거만 있으면. 핸드오프는 협상이 아니다. 협업이다. 민준씨도 변했다. 요즘은 먼저 물어본다. "이거 왜 이렇게 디자인하셨어요?" 궁금해서 묻는 거다. 트집 잡으려는 게 아니라. 나도 묻는다. "이거 구현하려면 뭐가 필요해요?" 알고 싶어서다. 이해하려고. 어제 점심 민준씨랑 같이 밥 먹었다. "요즘 디자인 공유하실 때 구현 난이도 표시해주시잖아요." "네. 도움 돼요?" "많이요. 우선순위 정하기 쉬워요." 빨강, 노랑, 초록으로 표시한다. 빨강: 구현 어려움, 대안 논의 필요 노랑: 구현 가능하나 시간 필요 초록: 쉬움 "근데요." "네?" "가끔 빨강인데 꼭 필요한 거 있잖아요." "그죠." "그거요. 말씀해주세요. 왜 필요한지만 설명해주시면, 방법을 찾아볼게요." 민준씨가 웃는다. "힘들어도요?" "힘든 건 괜찮아요. 의미 있으면." 의미. 그 단어가 좋다. "저도요. 쓸데없는 디테일은 이제 안 넣어요." "쓸데없는 거 없던데요?" "있었어요. 많이." 둘이 웃었다. 지금 이 순간 피그마를 켰다. 새 프로젝트. 빈 캔버스. 마우스가 멈췄다. 예전엔 이랬다. '일단 최고로 예쁘게. 나중에 조정하면 되지.' 지금은 다르다. '실제로 만들어질 디자인. 처음부터 현실적으로.' 근데 타협이 아니다. 더 나은 디자인이다. 구현될 수 있는 디자인. 사용자가 실제로 경험할 디자인. 개발자와 함께 만들어갈 디자인. 컴포넌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엔 블러를 넣지 않았다. 처음부터. 대신 색상 대비를 높였다. 타이포그래피에 집중했다. 슬랙이 울렸다. 민준씨: "다음 주 핸드오프 기대되네요." 나도 기대된다. "이거 구현 어려운데요." 그 말이 이제는 반갑다. 함께 풀어갈 문제니까. "근데 이게 꼭 필요한데..." 이 말도 이제는 자신 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있으니까.타협은 포기가 아니다. 함께 더 나은 답을 찾는 과정이다. 오늘도 핸드오프 미팅에서 배운다.